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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공직 떠나는 우수 공무원 붙들어두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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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공직 사회의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젊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힘들게 입직한 공직사회를 제 발로 떠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지난 2022년에만 1만1067명이 공직을 떠났다. 2018년에 20·30세대 공무원 5761명이 퇴직했던 것과 비교하면 4년 만에 이직자가 2배가 됐다. 1년 미만 재직자의 퇴직도 같은 기간 951명에서 3123명으로 3배 넘게 늘었다.

공무원 사회의 꽃이나 다름없는 5급 공채(옛 행정고시) 출신 사무관의 퇴직도 늘고 있다. 바늘구멍같이 어려운 행시를 통과하면 출세가 보장받은 것과 다름없다고 여겼는데 행시 출신 사무관들조차 공직을 떠난다는 것은 유능한 인재들이 더는 공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철밥통·자부심·안정감을 뒤로 하고 이제는 시스템 혁신이 필요한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행시 출신 인재들도 퇴직 잇따라
순환보직제 수술해 전문성 강화
정치 예속 벗어난 인사 독립 필요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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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이든 그 업에 자기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공무원들에게 가장 큰 보상 중 하나는 국민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이 맡은 업무에 정진하는 만큼 국민 삶이 나아지고 국가가 성장하는 데 따른 보람일 것이다.

급여를 올리고 ‘워라밸’ 근무 분위기를 강화하는 등의 처우 개선 조치만으로는 공무원 퇴직 열풍의 원인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떠나는 공무원을 붙잡아둘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더욱이 공무원의 평균 급여는 민간 기업보다 낮지도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국가의 미래에 맞게 공무원으로 일하려고 하는 인재만 공무원으로 양성·선발하는 시스템이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처우 개선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 권력의 부침과 상관없이 국가 전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공무원 인사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다.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 정부의 주요 정책을 다뤘던 공무원들이 줄줄이 한직으로 밀려나고 감사와 조사 대상으로 내몰린다. 이 와중에 쓸쓸히 공직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유능하다는 이유로 청와대(현 대통령실)에 파견 가고 부처의 핵심 부서에서 정책을 추진했던 선배들이 하루아침에 물러난 정권의 하수인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는 모습을 보고 과연 어떤 후배 공무원들이 열과 성을 다해 복무하겠는가. 공무원 인사가 정권에 종속돼서 일 잘하는 공무원들이 자기 실력과 소신을 감춰야 하는 후진적 인사 관행이 더는 없어야 한다.

인사의 독립성과 함께 반드시 이뤄야 하는 것이 공무원의 전문직화다. 1, 2년마다 부서를 옮겨 다니는 ‘순환 보직제’에서는 공무원이 어떤 업무도 깊이 있게 자기 것으로 만들기 힘들다. 어떤 일을 하는지 파악할 때쯤 되면 새로운 부서의 새 업무로 전출 갈 준비를 해야 하는 현행 시스템으로는 민간 사회가 주도하는 변화와 혁신을 따라가기도 벅차고 자기만의 실력과 강점을 갈고닦을 여유도 없다.

더욱이 대국민 서비스와 생산성은 늘 뒷걸음질의 악순환이다. 고질적인 순환보직제를 하루속히 없애 한 우물을 팔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업무의 난이도와 노동 환경, 성과의 크기를 고려해 급여와 승진 등 처우를 괄목할 수준으로 차등화해야 한다.

전문직화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납세자인 국민 입장에선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가 정부의 실력 향상으로 이어져 국리민복 증진에 기여한다. 공무원 입장에선 퇴직 후 현직에서 갈고 닦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인생을 자기 손으로 꾸려갈 수 있어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자기만의 전문성이 있다면 낙하산으로 퇴임 후를 대비하지 않아도 되고 자연히 현직에 있을 때도 정치권력의 향배에 눈을 두지 않고 국민의 이익에만 몰두할 수 있다.

공무원은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움직이는 선원과 같다. 선원들이 동요하는 배가 목적지까지 제대로 항행할 수 있을 리 없다. 공무원 사회의 안정이 곧 국가 발전의 필수 요건이다. 국가의 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5년 정권의 부침으로부터 공무원의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10년이고 20년이고 한 분야를 깊이 판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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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