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시절 ‘조선제일검’으로 불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손을 댄 주요 사건에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이재용·양승태 무죄…韓 “관여 안 했다” “관여해서 말 안 한다”
대표적인 게 지난 5일 1심에서 불법 승계 의혹 관련 19개 혐의가 모두 무죄로 나온 이재용 삼성 회장 수사다. 2018년 12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수사를 착수할 당시 수사를 지휘한 3차장 검사가 한 위원장이었다. 다만 수사 중 부산고검(2020년 1월)으로 좌천되며 손을 떼야 했다.
지난달 2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는 한 위원장이 수사팀장을 맡아 2019년 2월 기소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을 구속하면서 ‘세기의 재판’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이마저도 47개 혐의가 모두 무죄(1심)로 선고됐다.
한 위원장은 이 회장 무죄에 대해선 “기소(2020년 9월)할 때 제가 관여한 사건은 아니었다”, 양 전 대법원장 무죄에 대해선 “수사에 관여한 사람이 직을 떠난 상황에서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을 아는 검사들은 한 위원장의 수사 스타일에 “큰 프레임을 설정하고, 그 논리를 차곡차곡 쌓아가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작업에 능하다”고 평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 사문화돼있다시피 했던 직권남용죄 법리를 새롭게 갱신한 건 한 위원장의 능력이라고 검사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직권남용죄의 성립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했다는 자성론이 확산하는 등 한 위원장의 법 논리가 수용되지 않는 방향으로 사법부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법원이 한 위원장 등 검찰이 주장한 법리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헐겁게 적용한 건 아닌가 하는 얘기가 법원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또 애초에 한 위원장이 일부 사건에서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평가도 있다. 검사 출신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나는 검사 11년 동안 중요 사건을 수사할 때 무죄가 나면 검사직 사퇴를 늘 염두에 두고 수사했고, 재직기간 내내 중요 사건 무죄는 단 한 건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국·김기춘 등 유죄…이재용·양승태 판결 항소로 2라운드
그렇다고 한 위원장이 어설픈 수사를 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전성기 시절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전군표 국세청장 등을 줄줄이 구속한 실력은 여전하다고 한다. 가령 2019년 대검 반부패부장 시절 지휘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는 지난 8일 2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조 전 장관 측은 줄곧 검찰 수사를 “상상에 기초한 기우제 수사”라고 비판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 혐의를 인정하며 1심과 같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전임 정부 적폐 수사 대상이었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댓글 공작 의혹)도 각각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씩을 선고받고 지난 1일 상고를 포기하면서 유죄가 확정됐다. 1심에서 체면을 구긴 이 회장, 양 전 대법원장 판결에 대해서도 검찰은 항소를 결정, 판결이 달라질 가능성이 없진 않다. 검찰 관계자는 “1심 판결은 검찰 입장에선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고 2심에서 더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