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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반대매매로 800억 손실…KB증권, 옵션에 선물 지침 적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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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KB증권이 해외 파생상품 투자를 중개하면서 실제 상품 성격과는 다른 약관과 지침을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중앙일보 취재 결과 위너스자산운용(위너스)은 KB증권의 중개로 일본 오사카거래소에 상장된 니케이225 옵션 상품에 투자했다. 그런데 2020년 2월 29일 니케이225 지수가 계속 하락해 위너스 계좌 위험도가 높아지자 KB증권은 고객의 투자자산 전량을 강제처분(반대매매)했다. 지수 변동에 따른 추가 손실을 사전에 차단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매매한 순간 800억원대의 손실이 확정됐고, 위너스와 KB증권은 법정 공방을 벌이며 책임을 따지고 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재판부 “그대로 뒀다면 수익날 수도 있었다”

서울고등법원은 KB증권이 고객 자산을 그대로 뒀다면 수익을 낼 수도 있었는데, 섣부른 반대매매로 손실이 확정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26일 2심 판결에서 “급변동하던 니케이 옵션 가격은 점차 안정세를 찾았기 때문에 반대매매로 강제 청산되지 않고 유지됐다면, 2020년 3월5일 종가 기준으로는 오히려 평가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옵션·선물은 다른데…금투협 표준약관·업무지침엔 구분없어 

KB증권이 반대매매를 실행한 근거 중 하나는 엉뚱하게도 해외 옵션상품 업무 매뉴얼이 아니라 선물 매뉴얼이었다. 옵션과 선물은 모두 파생상품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도 이를 구분하지 않은 약관과 지침을 근거로 반대매매를 실행한 것이다.

옵션 거래는 원유 등 기초자산 자체를 거래하는 선물 계약과 달리, 미래 특정 시점에 약속한 가격 등의 조건에 따라 기초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 또는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거래한다. 이 때문에 기초자산 가격이 변동해 평가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권리를 행사하기 전까지는 확정된 손실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반대매매(청산)를 할 수 없다. 만약 평가손실이 발생해 투자 위험이 너무 커질 경우, 증권사는 거래를 담보할 수 있는 증거금을 추가로 납입하라고 요구하는 마진콜을 해야 한다.

해외 옵션 별도 매뉴얼은 없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KB증권의 ‘해외 선물 증거금 제도’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해외 선물은 가격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고객의 손실액이 과다할 경우 반대매매로 처분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KB증권의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율촌은 “해외 옵션에 대해선 별도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아 (옵션 상품에도) 해외 선물과 동일한 방식으로 반대매매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외 선물 매뉴얼을 옵션 상품에 적용하다 보니 마진콜 없이 강제로 반대매매를 해 투자자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상품 반영 못하는 표준약관…책임 없다는 금투협·공정위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구체적인 상품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해외 파생상품 표준약관이 증권업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고, 책임자도 관리자도 없다는 점이다. 실제 KB증권은 반대매매 실행의 근거로 금융투자협회(금투협)가 마련한 표준약관(해외 파생상품 시장거래 총괄 계좌설정 약관)을 들었다. 하지만 이 표준약관은 선물과 옵션 상품을 구분하지 않고 ‘해외 파생상품’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한다. 재판부는 이 표준약관의 반대매매 관련 조항(14조2항)이 자본시장법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금투협은 공문에서 “표준약관은 해외 파생상품 특성상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는 부분은 별첨으로 정하거나 공란으로 표시해 개별 회사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금투협은 한 술 더 떠 표준약관 개선 작업도 KB증권 사건의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로 미룰 계획이다. 약관 심사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이 사건과 관련한 공문에서 “적극적으로 계약 당사자의 계약 내용에는 개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시장이 글로벌화하면서 해외 파생상품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지만, 금투협 표준약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금투협이 상품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표준약관을 계속 쓰도록 방치하고, 증권사들이 아무런 수정 없이 사용하는 관행이 계속되면 언제든 대형 투자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B증권은 이번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KB증권 관계자는 “금투협 표준약관을 토대로 한 반대매매의 정당성을 부인한 이번 판결은 업계 전체의 옵션 상품 중개와 반대매매 업무에 중대한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며 “금투협 표준약관에 따르지 않을 경우, 다른 투자자들의 항의도 있을 수 있어 업계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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