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실손 있죠?" 병원·환자 도수치료 1조 야합…건보까지 휘청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도수치료 장면. [중앙포토]

도수치료 장면. [중앙포토]

한국 의료의 아킬레스건은 비급여 진료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非) 보험'의 일본식 표기가 비급여인데, 자주 쓰이다 보니 이제 낯설지 않다. 비급여는 마르지 않는 샘 같다. 끊임없이 새로 생긴다. 비급여는 두더지 잡기 같다. 여길 치면 저기서 나온다. 한국은 돈이 없어 의료보험 도입에 엄두를 못 내다 1989년에서야 전 국민 의료보험을 완성했다. 쌓은 돈이 없어 얕고 좁게 보장했다. '저부담-저수가-저급여'였다. 이게 오래 갔다. 2000년대 들어 '얕고 넓게'로 바뀌었지만 얕은 보장성은 난공불락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에, 문재인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에 매달렸다. 일부 성과를 거뒀다. 암·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 보장률이 2013년 총진료비의 77.5%에서 2021년 84%로 소폭 올랐다.

비급여 탓에 건보보장 제자리 

 그러나 전체 보장률은 2013년 62%, 2021년 64.5%로 제자리걸음 했다. 건보 지출이 41조원에서 78조원으로 급증했는데도 그랬다. 2021년 진료비의 35.5%는 환자가 부담했다. 19.9%는 법정 본인부담금, 15.6%는 비급여 진료비이다. 건보가 되는 외래 진료비의 30~60%를 환자가 내는데, 이게 법정 본인부담금이다. 나라마다 거의 다 있다. 골칫덩이가 비급여이다. 다만 과거에 수가가 그리 높지 않아 비급여가 의료기관의 적자를 보전하는 순기능을 했다. 정부도 이를 용인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완재에서 주재료가 됐다. 실손보험이 불을 붙였다.

비급여 급팽창 17조원 실태
급여할 자본 없어 용인해 와
실손보험 가세 통제불능 상태
"혼합진료 부분 금지 바람직"

 "실비 있으세요?"
 병원에 가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실비(실손보험) 가입자이면 비급여 진료가 따라간다. 실손 가입자는 2010년 2080만명에서 2022년 3997만명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4일 제2차 건보종합계획에서 "환자의 지불 능력 상승과 의료기관의 수익 추구가 맞물려 비급여 진료가 팽창했고, 건보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손보험이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커버하면서 환자의 비용 의식이 약해졌다. 지난 정부 '문 케어'의 급격한 보장성 확대도 문턱을 낮췄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하이푸시술 가격 83배 차이 

 정부 잘못도 크다. 복지부는 비급여를 '필요악'으로 보고 손대지 않았다. 실손보험·비급여의 '쌍끌이 쓰나미'를 보면서도 복지부(건보 담당)와 금융위원회(실손보험 담당)는 머리를 맞대지 않았다. 민간보험회사도 '의료비 100% 보장' 상품으로 경쟁할 정도로 수익 추구에 매달렸다. 백내장 다초점렌즈 가격이 최소 30만원, 최대 900만원으로 30배 차이 난다. 도수치료는 최소 10만원, 최대 60만원이다. 하이푸시술은 30만원, 2500만원이다.

 쌍끌이의 예를 보자. 실손보험 가입자가 정형외과 의원에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같이 받는 경우가 많다. 진찰료(재진) 1만1000원, 간섭파 전류치료(ICT) 등의 물리치료 8000원, 도수치료 10만원이 나온다. 환자는 진찰료와 물리치료의 법정 본인부담금(30%) 6000원, 도수치료 10만원을 낸다. 이 둘을 실손보험이 커버한다. 도수치료가 목적인데 건보 재정(1만3000원)까지 축난다. 2021년 비급여 진료비는 17조 3000억원이다. 2010년 8조1000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대부분 실손보험이 커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손 지출 '톱 10'만 따지면 3조원(2021년)이다. 도수치료만 1조원(2022년)이 넘는다(보험연구원 자료).

 정부가 인제야 혼합진료를 금지한단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이 첫 대상이다. 내년 중 시행한다. 건강보험공단 실태조사에 응한 1800여개 의료기관의 도수치료의 89.4%가 급여·비급여 혼합진료를 했다. 백내장 수술·비밸브재건술·하이푸시술은 100%이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일본과 우리의 의료제도가 거의 같은데, 일본은 혼합진료를 전면 금지하고 일부만 허용한다. 우리도 금지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백내장 시술료가 107만원이고, 렌즈값(비급여)이 500만원이란 게 난센스"라고 말했다.

일본은 비급여 초과이득 없어 

 하지만 실효성은 "글쎄"이다. 크고 작은 수술, 각종 검사, 치료 재료, 심지어 약까지 비급여가 없는 게 없다. 원래 급여해야 하나 돈이 부족해서, 안전하고 효과는 있으나 너무 비싸서 비급여를 허용한 것들이다. 전자는 MRI 촬영 횟수 제한, 후자는 로봇수술이 대표적이다. 이런 부류의 혼합진료를 금지했다가는 의료 현장이 올스톱 된다. 그래서 정부가 도수치료·백내장 수술 같은 '비(非) 중증 과잉 비급여'를 우선 목표로 잡았다. 여기서 확대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

 올해부터 모든 의료기관이 비급여 가격뿐 아니라 진료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면 처음으로 비급여 실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비급여 명칭을 표준화하고 권장가격을 제시할 방침이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일본은 비급여에서 초과 이득을 얻지 못한다. 의료기관이 원가를 제출하면 정부가 비급여 수가를 정해준다. 우리는 가격을 맘대로 책정해 병원마다 다르다"고 지적한다. 다만 일본의 건보 보장률이 84%로 높아 한국과 차이 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도 "정부가 비급여를 방치해 병원이 과도하게 초과 이윤을 취하고, 대학병원 의사가 개업하고, 의료시스템이 붕괴한다"며 "외국처럼 비급여 가격을 통제해 병원 간 차이가 최대 2배 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