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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트랙터 시위' 확산…놀란 EU, 우크라 농산물 수입 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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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농업 정책에 항의하는 유럽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벨기에 브뤼셀로 집결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 등 유럽 전역에서 주요 항구와 도로 등을 막는 농민 시위가 격화하면서 EU는 농민 달래기에 부랴부랴 나섰다. 전날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제한을 추진하는 등 긴급 대책을 내놨다.

농민 시위에 참가한 프랑스 농민이 지난달 31일 프랑스 파리 남부 칠리-마자랭 고속도로에서 농부 복장을 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인형을 만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농민 시위에 참가한 프랑스 농민이 지난달 31일 프랑스 파리 남부 칠리-마자랭 고속도로에서 농부 복장을 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인형을 만지고 있다. AP=연합뉴스

EU 정상회의에 유럽 농민 트랙터 시위

로이터·AP통신 등은 이날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브뤼셀의 유럽의회·집행위원회 건물 주변에 유럽 농민들이 끌고 온 트랙터가 모였다고 전했다. 온종일 이곳에서 대규모 농민 시위가 열리는 가운데 경찰은 혹시 모를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을 쳐 대비했다.

이 집회에 참여할 예정인 벨기에 농부 루카 무통은 "이제 EU 지도자들이 농부들과 이야기하고 무엇이 가능할지 논의해야 할 시간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상회의 의제에 농업 분야가 공식적으로 포함되지 않았지만, 최근 유럽 곳곳에서 농민 시위가 커지면서 관련 논의도 이뤄질 예정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앞서 지난 30일엔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와 벨기에 서북부 제브뤼헤 항구 진입로를 막았다. 제브뤼헤항은 벨기에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로, 유럽의 주요 무역통로다. 또 주요 고속도로를 트랙터로 막아 놓고, 옆에서 감자튀김을 요리하는 시위를 펼쳤다.

프랑스 농민 자녀들이 지난달 31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미니 트랙터를 타고 농민 지지 시위에 참가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농민 자녀들이 지난달 31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서 미니 트랙터를 타고 농민 지지 시위에 참가했다. AFP=연합뉴스

가장 큰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에선 전날 농민들이 전국 최대 규모의 농산물 도매시장인 파리 남부 외곽에 있는 렁지스 시장을 봉쇄했다. 이 시장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국제 농산물 시장으로, 수도 파리의 식량 허브 역할을 한다. 이에 경찰은 장갑차까지 투입해 봉쇄를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교통방해와 유통업체 창고 침입 시도 혐의 등으로 농민 90여명이 체포됐다.

프랑스 북동부 스트라스부르에선 농민들의 미취학 자녀 약 40명이 미니 트랙터를 타고 30분가량 시위를 벌였다고 BFM TV가 전했다. 이 지역 농민들은 미래 세대 농민이 처한 위기를 상기시키기 위해 아이들도 시위에 동참시켰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프랑스 전역에서 1만명의 농부가 고속도로 등 100여곳을 점유하고 있다"면서 "시장이나 공항 등을 막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북부 피에몬테 알레산드리아와 남부 시칠리아섬의 칼리아리항 등지에서 농민 수백명이 트랙터를 몰고 나와 교통을 차단했다. 헝가리·루마니아·폴란드·리투아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도 지난달 말부터 농민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전례 없는 가뭄·홍수 등으로 농작물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농민들도 곧 시위에 합세할 예정이다.

EU, 우크라 농산물 수입 제한 등 대책 마련 

이탈리아 농민들이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의 고속도로에서 트랙터에 이탈리아 국기를 달고 시위를 벌였다. EPA=연합뉴스

이탈리아 농민들이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의 고속도로에서 트랙터에 이탈리아 국기를 달고 시위를 벌였다. EPA=연합뉴스

유럽 농민들이 분노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최근 2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비료 가격의 폭등, 해외 농산물과 자국 농산물에 대한 이중잣대 등이 대표적인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경작지 최소 4% 휴경 의무화 등 EU의 각종 환경규제가 성난 농심에 기름을 부었다.

농민 시위가 점점 확산하자 EU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마르가리티스 스히나스 EU 부집행위원장은 31일 우크라이나산 수입품 급증에 대비한 조치를 발표했다. EU는 품목 상관없이 특정 회원국의 요청이 있으면 시장 가격 왜곡 여부를 조사해 시정 조처를 제안했다. 또 닭고기·계란·설탕 등 한시적 면세 조처를 받는 품목의 수입량이 지난 2년 치 평균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농부가 지난해 7월 18일 우크라이나 중부 체르카시 지역에서 콤바인으로 유채를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농부가 지난해 7월 18일 우크라이나 중부 체르카시 지역에서 콤바인으로 유채를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U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흑해 수출이 막힌 우크라이나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산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면제해줬다. 이후 우크라이산 저가 농산물에 따른 가격 폭락으로 농민 소득이 감소했다. 프랑스 농부 브누아 라퀘는 "우크라이나는 EU 회원국이 아닌데 면세로 수출해 우리에게 시장을 빼앗는데, 우리와 동일한 (환경) 규제 아래 생산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EU는 또 최소 4% 휴경지 의무화도 올 한해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조치는 EU 전체 27개국의 최종 합의가 있어야 확정된다.

이런 조치들로 유럽 농부의 분노가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프랑스24와 BBC방송 등은 남미의 값싼 농산물이 유입될 수 있는 EU와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보조금 삭감 문제 등이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의 분노가 계속되면 유럽의 극우 정치세력도 더욱 활개를 칠 것으로 보인다.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독일·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농민들의 분노에 편승해 극우 정치세력이 약진하고 있다고 폴리티코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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