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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잇단 정치인 테러, 증오·혐오 정치가 낳은 비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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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15세 A군으로부터 피습당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 [사진=배현진 의원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15세 A군으로부터 피습당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 [사진=배현진 의원실]

여야가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극단적인 적개심 만연

정치인 신변 보호 및 모방 범죄 방지 대책 강화해야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발생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15세 중학생인 A군은 배 의원의 신원을 확인한 뒤 갑자기 달려들어 돌로 배 의원의 머리를 17차례나 내리쳤다. 배 의원은 “사건 당시 ‘이러다가 죽겠구나’ 하는 공포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다행히 배 의원은 큰 부상은 모면하고 27일 퇴원했지만, 자칫 치명적인 중상을 입을 수도 있었던 살벌한 테러였다.

A군의 구체적인 범죄 동기나 배후 여부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경찰이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다만 사건의 사법적 실체보다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은 미성년자인 A군이 왜 정치인에게 그토록 극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을까다. 사실 정치권은 이미 그 원인을 알고 있다.

사건 발생 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치가 너무 극단으로 가니까 이런 일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우리 사회가 증오와 혐오로 오염되고 있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선 상대에게 저주와 혐오를 무제한으로 퍼붓는 ‘증오의 정치’가 A군의 손에 돌을 쥐여준 셈이다.

지난 2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테러 때도 범인 김모씨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테러도 불사하겠다는 극단적 정서가 확산되는 현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치인들 스스로에게 있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은 외면한 채 자극·폭력적인 언사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정치의 품격은 무너지고 국회는 피가 넘치는 검투장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다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가 음모론과 마타도어를 살포하고, 강성 팬덤이 장악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분노를 조직화하면서 ‘증오의 정치’는 갈수록 심해지는 실정이다.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국은 선거 현장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신변 보호를 강화하고, 모방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보다 근본적으론 여야가 과격한 언동으로 강성 지지층을 선동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행태를 근절해야 한다. 일시적으론 그런 행태가 선거에 유리할 듯싶어도 장기적으론 여야의 공멸, 정치의 종말을 불러온다는 것을 이번 테러 사건들이 잘 보여주지 않는가. 여야가 상호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도 정치인들을 존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