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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물리학자 장관이 이끈 우루과이의 놀라운 에너지 혁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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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의 정 반대쪽은 어디일까? 남미 대륙 동해안에 있는 우루과이다. 그 나라 수도 몬테비데오에 가면 키가 6m나 되는 하늘색 거인이 땅을 내려다보며 인사하는 모양의 조각품이 있는데, 그 시선을 따라서 지구를 관통해서 반대쪽으로 간다면 대한민국이 나온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필자는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조각품을 보고 신기함과 기쁨을 느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 조각가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 맨’(Greeting Man)이라는 작품이었다. 쌍둥이 조각품이 한국에도 있다. 사실 몬테비데오의 정확한 대척점은 전남 신안 근처인데, 평화를 갈망하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휴전선 근처 강원도 양구군 통일관 앞에 세워졌다고 한다.

한국의 대척점 남미 우루과이
혁신적 대체에너지 정책 성공
편협·독단 배제한 과학적 정책
과학자 장관 열정이 낳은 성과

고유가 위기 맞아 대체 에너지 개발

지난해 7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TED 행사에서 라몬 갈라인 전 우루과이 에너지 담당 장관이 성공적인 대체에너지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국가 전력의 98%를 대체에너지로 감당하고 있다. [TED 화면 캡처]

지난해 7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TED 행사에서 라몬 갈라인 전 우루과이 에너지 담당 장관이 성공적인 대체에너지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루과이는 국가 전력의 98%를 대체에너지로 감당하고 있다. [TED 화면 캡처]

그 머나먼 우루과이는 한국인들에게는 좀 생소한데, 알고 보면 우리와 통하는 점이 있고, 본받을 점도 많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어있는 조그만 나라 우루과이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불 지펴서 고기 구워먹는 것을 정말 즐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남미에서 가장 높으며, 빈부격차도 적고 군사독재도 일찍 퇴격하였다. 20세기의 한국인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강대국들만 쳐다보며 따라가려 했었지만, 벤치마킹은 세계 전역을 둘러보며 골고루 골라서 할 필요가 있다.

근래에 이 우루과이가 지구온난화와 기상변화를 걱정하는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대체 에너지를 강력히 추진하는 정책을 세운 지 불과 10년 만에 온 나라에 필요한 전기를 대체 에너지로 만들게 되었으며, 전기가 남아서 수출까지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도 우리나라처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곳이라 대량의 석유를 수입했는데, 21세기 초반에 이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기로 결단을 내렸다. 수입품에 의존하는 경제와 지구온난화를 가져오는 화석연료, 그 두 문제를 동시에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의지를 굳힌 것이다. 그 문제 의식은 2008년도에 유가가 치솟으면서 맞게 된 에너지 위기를 통하여 더욱 확실해졌다.

풍력·수력·바이오매스 대폭 투자

그때 우루과이 정부는 보기 드문 결단을 내렸다. 물리학자 라몬 멘데스 갈라인을 국가 에너지 정책 책임자로 전격 임명한 것이다. 그는 아무런 정치적 경력도 없었지만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에너지 정책을 내놓았는데, 바스케스 대통령의 눈에 확 들었던 것이다. 멘데스 갈라인은 2015년까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우루과이의 에너지 정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전까지 다들 내놓은 대안은 원자력 발전이었다. 그러나 전문분야가 원자 물리학이었던 멘데스 갈라인은 자신 있고 냉철하게 원자력의 장단점을 분석한 결과 우루과이의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보다는 풍력발전에 중점을 둔 대체에너지 캠페인을 벌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가 주도한 캠페인은 기술과 정치를 겸비한 작업이었다. 적합한 장소 곳곳에 수많은 풍력발전소를 지었고, 이미 상당히 발달하였던 수력발전 시스템을 더 강화하였다. 버려지는 동물성-식물성 자재들을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매스(biomass) 발전도 크게 개발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술적 해결책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메데스갈라인 장관은 대체에너지에 대한 국민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놓는 작업을 벌였다. 방송에 나가서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근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를 같은 정부의 관료들도 속으로는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범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었다. 대체에너지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하는 창의적인 사고를 권장했다.

또한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면서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길들을 모색했다. 예를 들어 수지가 맞지않아 허덕이는 목축업자들은 농장을 풍력발전소로 전환하도록 권유하였다. 기후변화를 믿건 말건 간에 경제적으로 대체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더 실속이 있다고 설득했다. 이를 수 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실제로 보여주었다. 그렇게 국민을 설득해 가며 획기적으로 투자하고 기술을 개발한 결과, 불과 7년 만에 국가 전력의 98%까지 대체에너지로 발전하는 기적적 성과를 이루었다.

기후위기 시대 한국의 역할은

물론 우루과이는 특수한 조건들을 가졌기 때문에 그 정책을 다른 나라에서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다. 우루과이는 인구가 400만도 안 되는 반면 땅은 비교적 넓고, 풍력과 수력발전에 필요한 조건이 좋다. 펄프산업과 목축업이 번성해 있고 거기서 나오는 바이오매스도 풍부하다. 그러나 우루과이가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나 이용할 수 있는 특유한 유리한 조건들이 있을 것이며, 그런 것을 독자적으로 찾아서 개발해야 한다. 우루과이의 에너지 혁명은 과학적 태도가 낳은 성공사례이다. 여기서 과학적 태도란 편협과 독단을 배제하고 유연한 사고력을 발휘하여 해결책을 찾는 진취적 기상을 말한다.

한국은 온 세계에서 기적적으로 여기는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이룰 수 있었는가를 이해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그 이해가 부족하면 앞길을 잘 헤쳐나가기 힘들어질 수 있다. 우루과이의 에너지 정책과 같은 예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다시 잡아나갈 필요가 있다. 세계적 위기인 기후변화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책은 무엇이고, 우리가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모습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