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세르주 노박의 겨울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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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프랑스 영화인 데다 감독 이름 낯설지,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출품됐다지. '세르주 노박의 겨울여행'(30일 개봉)은 국내 시장에서 '예술영화'로 취급받기 딱 좋은 조건의 영화다. 아니, 정반대의 대접도 가능하다. 야한 정사 장면을 내세운 포스터만 본다면 정체불명의 유럽산 에로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거두절미하고 이 영화의 실체를 소개한다면 고전적 품격의 대중영화에 가깝다. 중층적 비밀에서 나오는 스릴러의 긴장감과 '훔쳐보기'의 쾌감, 여기에 약간은 철학적인 화두가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출 솜씨로 고루 조화를 이룬다.

주인공 다니엘(다니엘 오테유)은 신분을 감추고 '세르주 노박'이라는 필명으로 활약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가족은 알지만 세상은 모르는 첫 번째 비밀이다. 다니엘은 양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늘씬한 미녀와 하룻밤의 강렬한 정사를 나누는데, 다음날 결혼식장에서 다시 만난 이 여자는 바로 아들의 신부란다. 이것이 다니엘의 두 번째 비밀이 된다. 가족에게 결코 알릴 수 없는 비밀이다.

새 며느리 밀라(안나 무글라리스)는 대담하게도 새로운 밀회를 제안한다.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다니엘은 결국 밀라와 먼젓번보다 한결 농밀한 정사를 갖는다. 이를 훔쳐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관객에 대한 서비스뿐 아니라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

관객의 예상대로 정사 장면을 찍은 사진과 함께 거액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날아온다. 그런데 위기에 처하는 것은 다니엘의 가정사만이 아니다. 실은 그가 작가가 된 과정에도 남모를 사연이 있다. 불륜을 계기로 이 세 번째 비밀이 드러나면서 작가로서 다니엘의 인생 전체가 파국에 직면한다.

이 영화의 프랑스 제목은 '욕망의 대가(Le Prix du Desir)'다. 그 욕망은 포괄적이다. 다니엘의 세 번째 비밀을 통해 성적인 욕망만이 아니라 작가적인 욕망, 실존적인 욕망이 고루 거론된다. 충격적 반전으로 승부수를 노리거나 도덕적 교훈을 안겨주려 하는 대신 욕망을 좇는 자들에게는 치러야할 대가 혹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다니엘 오테유가 프랑스의 이름값하는 배우라는 것은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그와 호흡을 맞춘 신예 안나 무글라리스는 모델 출신답게 훤칠한 몸매로 관객들에게 충분한 눈요깃감을 안겨준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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