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택이 소리내다

총선 앞 자영업자 지원, 푼돈 쥐어주기 정책은 한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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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택 건축사·푸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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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일정 금리를 넘는 대출이자 환급 등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선심성 지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정부와 여당이 일정 금리를 넘는 대출이자 환급 등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선심성 지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총선용 인지는 몰라도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를 위해 일정 금리를 넘어서는 대출이자를 지원해준다는 발표를 들었다. 또 한편에서는 소상공인 약 126만 명에게 20만원씩 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주고 전통시장에 대한 소득공제율를 높여 준다고 한다. 한 때는 동네 부동산이나 세탁소 주인도 직원 한 명만 있으면 사장님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자 지원, 전기료 감면한다지만 #구조적 공급 과잉 해결 어려워 #기업이 좋은 일자리 만들어야

 1970년대 자영업자는 산업화 시기에 내수를 받치던 국가 경제의 허리였건만 이제는 구조조정의 대상이자 노동생산성을 갉아먹고 있고,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쓰러지는 그런 존재가 됐다. 어쩌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사장님들은 나라의 지원을 받아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까.

 먼저 지방의 자영업자는 어떻게 부를 얻었는지 역사를 되돌아보자. 일단 자식들이 공부를 어지간히 해서 서울로 대학을 보낸 집은 자식들의 하숙비를 보내주기보다 작은 집을 사서 자취를 시켰는데 교통이 편리한 고속터미널 근처에 얻거나 연탄 난방으로 값이 싸던 잠실에 집을 구해 주었다. 그 선택이 미래에 그 집안의 자식 세대까지 중산층 이상의 부를 이루는 갈림길이 되었다.

 종자 부동산은 계속 오르며 첫째의 결혼 자금이 되고, 둘째가 오른 담보력으로 신혼집을 살 수 있게 되고 그렇게 경제발전에 따른 부동산 가치 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반면 부모의 자영업은 지속하기 어려웠다. 자영업 진입 규제가 풀리고 공급이 늘고 자본이 늘어나며 진입 장벽이 사라져 대부분 망했지만 자식들은 자산 증식 덕에 은수저라도 쥐게 되었다. 성패는 자식이 명문대를 다녔는지, 졸업 후 어떤 기업에 취직했는지가 아니라 아이들 자취 집을 마련했느냐와 그 지역이 서울 어디냐로 갈렸다.

 자식을 서울에 보내지 못한 자영업자 부모들은 지방에서 아무리 노력했어도 그다지 좋은 결과를 갖기 어려웠다. 수도권 부동산 획득의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 탓이었다. 꼭 지방만이 아니라 서울의 자영업자의 40년의 성과를 돌아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변두리에 차고지를 사야 했던 택시운수업 사장님, 불량 주택이라도 창고 자리가 필요했던 주류업체 사장님, 아파트 상가라도 사서 약국을 했던 곳은 사업을 접게 되어도 땅이 남아 결국엔 일정한 부를 얻게 됐다.

 아파트값과 땅값이 뛰어 성공한 경우를 투기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살집을 위한 선택이었고 보다 안정적인 업장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다소 무리한 투자는 결국 국가 경제 성장과 함께 자산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자영업의 성공 사례가 됐다.  즉 지난 40년, 아파트를 사지 못한 개인은 아무것도 쥔 것이 없게 된 것처럼 창고나 가게 자리도 사지 못한 자영업자는 노후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것이 땅만의 문제였을까. 왜 1980년대에 자리 잡았던 자영업은 거의 모두 망하고 대를 물릴 수도 없었을까. 산업 구조의 개편 탓도 있겠지만 급격히 늘어난 인구 붐 세대를 1990년대부터 기업이 고용으로 완전히 품지 못한 탓이다. 취업은 쉬웠지만 기업은 그 모두를 받아들일 만큼 수를 늘리지 못했고 기업이 직고용을 기피하게 만든 노동 정책 탓에 기업은 외주를 늘리고 외주업체는 비정규직을 쓰거나 일용직을 쓰게 되고 프리랜서로 지입차 사장으로 몰리며 원하지도 않는 자영업 사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갈수록 경직된 노조만을 위한 노동 정책은 한번 그만둔 월급쟁이들을 다시 불러들이지 못하고 기업에 도급할 기회도 가지지 못한 퇴직 부장님은 식당 주인으로 대리점 점주로 몰렸다. 하지만 그 사장님들에게 경쟁은 치열했고 부모들과 달리 부동산을 사서 영업을 할 조건도 아니었기에 결과적으로 실패하여 부모 세대와 같은 성적을 받기는 어려웠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장사라고 하게 되면 기업이 되기 위한 창업이 아니기에 자본도 경험도 모자라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과당 경쟁 속에서 몇 년 버티다 쓰러지고 또 다른 장사를 해도 다시 고배를 마시는 악순환에 들게 되었다. 그렇게 뭔가 뜬다고 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시장이 망가지는 것을 수없이 봐 왔다. 탕후루가 뜬다고 1년 사이 수도권에 1000곳이 늘어나 과열되는 상황은 달리 할 수 있는 자영업이 없다는 방증이다.

 일본과 비교해도 인구 대비 식당은 두배 수준이고 편의점은 세배라고 하니 퇴직하면 할 만한 업종이 뭐가 더 있겠는가? 일자리는 민간에서만 만든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라는 말을 하던 국가 지도자를 거치며 이제는 기업도 자영업자도 급여 생활자도 모두 어려워졌다.
사람 쓰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으니 재고용은 어렵고 그렇다고 자영업을 못하게 할 수도 없다면 우리 자식들이 창업 후 5년 내 80%가 망한다는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 답은 자영업 안에 있지 않다. 자영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급 과잉이고 공급을 줄이는 방법은 기업이 고용을 늘려 자영업에 진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기업을 키우는 큰 정책뿐이다. 이 사업 저 사업 전전하다 돌고 돌아 치킨집을 해야 하고 택배를 해야 하고 지입차로 트럭을 몰지 않아도 되도록  기업이 인재들을 널리 품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자영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며 도와주는 길이지 선거에 맞춰 푼돈을 쥐여 주며 연명하게 하는 것은 자영업이라는 만성질환 환자를 중환자실로 모시고 가는 일이다.

남택 건축사·푸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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