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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99%는 지역병원서 치료 가능, 정치인부터 이용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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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27면

이재명 피습으로 본 의료전달체계

피습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응급치료 후 119 헬기로 서울로 이동, 수술과 입원치료를 받은 서울대병원. [뉴스1]

피습을 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응급치료 후 119 헬기로 서울로 이동, 수술과 입원치료를 받은 서울대병원. [뉴스1]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흉기 피습으로 인한 목의 자상(刺傷, stab wound) 치료 과정은 붕괴된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 대표 수술을 집도한 서울대병원 민승기 교수 설명처럼 목은 “혈관, 신경, 기도, 식도 등 중요한 기관이 몰려 있는 곳”이다. 칼에 찔리면 자칫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환자는 경악하고 주변 사람은 극도로 당황하며 최선책을 떠올린다. 이 대표 상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거대 야당 수장인 공인 중의 공인이다. 환자로서 느꼈을 사적인 감정은 논외의 대상이다. 국민적 관심사는 상처와 관련된 중증도·치료법·치료 과정 등이 외상환자 치료 ‘원칙’과 ‘절차’에 부합했느냐에 집중된다.

천만다행 범인의 칼날은 이 대표 목동맥(경동맥)을 피했다. 손상된 (속)목 정맥도 지혈이 잘돼 과다 출혈 없이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도착했다.

부산대 외상센터 “우리가 맨날 하는 수술”

인체는 피가 나면 혈액 내 혈소판·혈액응고 인자 등이 빠르게 작동해 혈전(피떡)을 만들면서 지혈을 돕는다. 이때 압력 높은 동맥이 손상되면 출혈이 심해 지혈이 어렵다. 흔히 측정하는 혈압은 동맥 압력인데 120/80(수축기/이완기)㎜Hg 이하가 정상일 정도다. 반면 정맥 압력은 동맥보다 수십 배 낮아 지혈이 잘 된다. 목정맥의 압력도 5㎜Hg (4.4~5.9㎜Hg, 6~8㎝H2O)정도다.

(속)목정맥은 직경이 5~35㎜(평균 10㎜)나 되는 큰 혈관이다. 일단 지혈이 돼도 손상 부위는 꿰매야 하고 혈전도 없애야 한다. 혹여 혈전이 떨어져 나가 다른 주요 혈관을 막을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부산대병원에서 이 대표 진료 후 응급수술을 준비했던 이유다.

혈관 수술은 경험 많은 외과 의사가 하는 게 맞다. 다행히 국내에는 여기 해당하는 의료진이 적지 않다. 부산대 외상센터 김재훈 교수도 목정맥 봉합 수술을 “우리가 맨날 하는 수술”이라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이 서울대병원으로 간 이유를 “잘하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서”라고 주장한 건 서울대병원에 대한 ‘신화적 편견’일 뿐이다. 실상은 서울대병원 집도의도, 부산대병원 외상센터 의료진도 모두 목정맥 봉합 수술을 ‘잘’한다.

아시아 최고 외상센터인 부산대병원 의료진조차 못 믿어 헬기로 천 리를 날아 서울대병원을 향한 환자·보호자의 선택은 현존하는 지역 의료 문제의 핵심 요소다.

생로병사의 인생 여정에서 병에 걸리면 누구나 최고 명의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 다른 선진국 국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은 서울의 초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나는 걸까.

한국, 1·2·3차 의료기능 분담 무의미해져

의학적으로 경증 환자는 작은 의료기관이, 중증 환자는 큰 병원에서 치료하는 게 맞다. 선진국은 작은(1차) 의료기관 의사의 객관적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거주지 큰 병원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면서 치료받을 수 있다. 의료전달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물론 환자가 자비로 비싼 일반 수가를 내면 원하는 큰 병원 진료가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하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장제도 도입과 함께 의료기관을 1차, 2차, 3차로 분류하고 기능 분담을 시도했지만 지역 민심을 고려한 정치적 결정으로 1998년 사문화됐다. 이후 1차 의료기관의 진료의뢰서만 있으면 누구나 서울의 초대형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

사실 지역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힘든 질병은 1% 미만이다. 하지만 고혈압·당뇨병 등의 만성 질환이나 흔한 암처럼 지역에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지역의 국립대병원조차 외면하는 환자가 다반사다. 지역 의료기관에 의사가 부족하고 낙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지금이라도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명료한 답과 달리 실천은 난감하다.

만일 용감한 정치인이 의료전달체계를 철저하게 도입하려다가는 지역 주민을 서울의 첨단 의료혜택에서 소외시키려는 악의적 정책으로 몰려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현재 상황은 그간 의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땜질 처방만 반복한 무책임한 정치권과 매사에 최고를 지향하는 ‘일등주의’ 한국 문화의 합작품이다.

인간은 중요한 인물의 언행과 생각을 따라 하면서 자신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싶은 ‘동일시(identification)’ 성향이 강하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정신적 방어기제인데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좋은 점 나쁜 점 가리지 않고 닮는다. 심지어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처럼 자신을 공격하고 해치는 상대의 특징까지 닮는 공격자와 동일시 현상도 흔하다. 따라서 진심으로 지역 의료 부활을 원한다면 정치인부터 자신과 가족에게 발생하는 질병 중 99%는 지역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이 대표가 조속히 회복해서 이번에 불거진 특혜 치료 논란을 극복하고 환자로서의 경험을 담은 현실적인 지역 의료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기를 기대해 본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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