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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오봉도 수놓인 광화문, 눈 깜박하니 달 담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오는 21일까지 서울 광화문과 경복궁 담장을 배경으로 해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 광화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는 21일까지 서울 광화문과 경복궁 담장을 배경으로 해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 광화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복궁 근정전 옥좌 뒤편에 걸린 일월오봉도가 서울 도심 마천루와 어우러지며 광화문 문루를 알록달록 수놓는다. (‘광화산수도’) 달이 차올랐다가 이지러지는 풍경이 긴 담장을 따라 펼쳐지더니 파도 같은 광선이 밀려오고 퍼져간다. (‘Attraction’) 오는 21일까지 경복궁 광화문과 그 옆 담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쇼 ‘서울라이트’의 몇몇 장면이다.

총 400m의 남측 궁장(궁궐 담장)을 캔버스 삼아 프로젝터로 영상을 입히고, 화려한 조명으로 주변을 수놓는다. 금~일요일 저녁 네 차례(오후 6시부터 매시 정각) 35분씩 진행되는 이번 아트 쇼에는 5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한국 이이남(‘광화산수도’), 프랑스 제레미 우리(‘Attraction’), 에콰도르 펠릭스 프랭크(‘Ethereal Flux’) 등이 각각 5분 안팎의 디지털 영상을 선보인다.

2019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배경으로 시작한 미디어아트 쇼가 광화문 광장(세종문화회관 포함)에서 열린 적은 있다. 하지만 문화재(사적)인 광화문과 경복궁 담장을 장식하는 건 처음이다. 건축물 출입구 입면(파사드)에 미디어아트를 덧입힌다고 해서 ‘미디어 파사드’로도 불린다.

미디어 파사드는 건물 외벽을 스크린으로 쓰기 때문에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처럼 네모반듯한 건축물을 선호한다. 최근에는 경복궁 궁장 등 성곽·사찰·유적지도 미디어 파사드 명소로 떠올랐다. “반듯하게 쌓아 올린 화강암 석재가 그 자체로 깨끗한 캔버스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주원 서울예대 교수)는 이유에서다.

2021년부터 수원화성에서 매년 미디어아트 쇼가 개최되고 있다. [사진 문화기술연구소 헤리티지랩]

2021년부터 수원화성에서 매년 미디어아트 쇼가 개최되고 있다. [사진 문화기술연구소 헤리티지랩]

수원 화성은 2021년부터 매년 미디어아트 쇼를 선보여 야간 관람객을 크게 늘렸다. ‘정조의 꿈, 빛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를 형상화한 쇼는 코로나19 기간이던 첫해에 30만 관람객을 모았다. 주변 화서문 일대 상권 매출도 전년보다 60% 늘었다. 세 번째 시즌인 지난해에는 ‘수원화성 행행(行幸)’이란 제목으로 48만 관람객을 동원했다.

수원화성과 익산 미륵사지(백제역사유적지구)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5개소가 2021년에 나란히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코로나19 기간에 야외 문화유산의 접근성을 높이고,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콘텐트를 개발하는 데 각 지자체와 문화재청이 뜻을 함께했다. 올해는 진주성과 고흥 분청사기 요지 등 7개소가 미디어아트를 선보인다.

2021년부터 익산 미륵사지에서 매년 미디어아트 쇼가 개최되고 있다. [사진 문화기술연구소 헤리티지랩]

2021년부터 익산 미륵사지에서 매년 미디어아트 쇼가 개최되고 있다. [사진 문화기술연구소 헤리티지랩]

미디어 파사드는 실내 전용 공간에 풀어내는 일반 미디어아트보다 고려할 요소가 많다. 주변 불빛과 소음을 이겨낼 강력한 광량과 출력이 필요하다. 캔버스 크기도 비교가 안 된다. 2008년 서울시청 구청사에서 국내 첫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인 고주원 교수는 “최첨단 기술로 광활한 화면을 채우면서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전달력도 갖춰야 하는 공공 예술적 쇼”라고 설명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지방의 성곽·사찰 등이 미디어 파사드를 펼치기에 오히려 수월할 수 있다. 주변 불빛과 소음이 간섭할 여지가 적고, 이를 보러 온 관람객의 집중도도 높다. 익산 미륵사지에선 동탑과 서탑 사이 폭 130m 공간에 초대형 이동 스크린 5개를 설치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투사했다. 조명이 꺼지고 순식간에 석탑이 사라지는 장면 등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수원화성과 익산 미륵사지 행사를 기획한 문화기술(CT)연구소 헤리티지랩 이창근 소장은 “문화유산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는 그 유산에 담긴 역사성, 즉 장소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원화성을 정조 행차와, 미륵사지를 백제 무왕의 서동요 설화와 각각 연결한 배경이다. 장소성에 초점을 둔 콘텐트는 문화재청의 행사 사전심의 때도 주요한 고려 요소다.

해외에서도 고건축물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가 활발하다. 2022년 프랑스 리옹에선 미술관으로 쓰는 17세기 수도원 건물 외벽에 미술관 소장 회화들을 인공지능(AI) 영상으로 선보였다. 2012년엔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서 수만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성당 외벽에 스페인의 해양개척사를 장대하게 풀어냈다.

문화재청 활용정책과 최지선 주무관은 “지방 문화유산의 인지도를 높이고 야간 볼거리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각 지자체의 사업이 창의적이고 의미 있으면 밀어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주원 교수는 “젊은 세대 취향에 맞춰 문화유산 미디어아트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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