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100만원보다 몽당연필 간절했던 DJ, 감옥은 대학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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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대중 탄생 100주년 도서전과 다큐 ‘길위에 김대중’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지난 6일은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지난 주말 전후에 전국적으로 열렸다. 5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2층에서 전시 중인 김대중도서전을 찾았다. DJ의 애독서와 감옥에서 읽은 책, 친필자료 등이 전시됐다. 동교동은 DJ가 1963년부터 95년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할 때까지 32년 넘게 지낸 곳이다. 2003년 대통령에서 퇴임 후 서거할 때까지도 이곳에서 살았다. 동교동 집 옆에 가택연금 중이던 DJ를 감시하던 기관원들이 드나들던 건물 자리가 지금의 김대중도서관이다.

감시 건물이 김대중도서관 변신

전시 안내글은 이렇게 적었다. “김대중은 수감 생활의 고통을 독서를 통해서 이겨내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옥중에서 1000여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헨리 키신저의 『White House Years』, 박경리의 소설 『토지』 등 감옥에서 그가 읽은 책과 주요 목록을 볼 수 있었다.

투옥 6년간 1000여권 독서…“책 읽으러 다시 감옥행 충동도”
영화 ‘서울의 봄’ 전후 역사 다룬 다큐 ‘길위에 김대중’ 곧 개봉
“정치가는 성직자도 도덕운동가도 아니다, 사회 변화 시켜야”

김대중도서관 1층 상설 전시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10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인용한 DJ 어록이 보인다. 서경호 기자

김대중도서관 1층 상설 전시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10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인용한 DJ 어록이 보인다. 서경호 기자

DJ는 6년의 수감 생활을 대학생활에 비유할 정도로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기록을 남길 정도였다. “일이 바빠 책을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정말이지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기도 했다. 감옥에 다시 가고 싶다니, 누구도 잘 믿기지 않겠지만, 그곳에서 체험한 보석같이 찬란한 인생의 진리를 생각하면 감옥 가는 것 정도의 역경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1993년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유신 치하에서 3·1 민주 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됐다 2년10개월여 만에 출옥한 1978년 12월 말엔 감옥 안에서 느꼈던 ‘연필 한 자루’의 간절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연필 차입을 수차 당부했으나 당국은 거부했다. 성경에 있는 사도 바울의 편지도 옥중에서 쓴 것이며, 인도의 간디도 옥중에서 집필했다. 새끼손가락만 한 연필조각과 100만원 중의 어느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연필을 택했을 것이다.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 없다.”

“전체·부분 같이 보고 경중 판단을”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전경. 서경호 기자

서울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 전경. 서경호 기자

감옥에서 쓴 DJ의 편지는 훗날 『옥중서신』으로 출간됐다. 전시된 인용문에는 세상을 읽는 DJ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우리는 삶의 자세를 갖추는 데 언제나 사물을 근원적인 것과 표면적인 것을 합쳐서 파악하고 부분적인 것과 전체적인 면을 아울러 보아야 합니다. 전체와 부분을 같이 보고 경중, 완급을 종합 판단해야 합니다.”

그의 유명한 어록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설명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우리가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려면 서생과 같이 양발을 원칙 위에 확고하게 딛고, 상인과 같이 양손은 자유자재로 방법을 구사하는 두 가지의 조화 있는 발전을 기해야 합니다.”(1981년 6월 23일 서신)

도서관 1층 상설 전시관에선 1980년 신군부에 연행돼 사형선고를 받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항상 인내하고 우리가 우리의 적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자. 그래서 사랑하는 승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

서거 전 마지막 독서는 『조선왕조실록』

도서관 5층의 DJ 집무실. 서경호 기자

도서관 5층의 DJ 집무실. 서경호 기자

전시 기간에 건물 5층의 집무실이 특별 개방됐다. 퇴임 후 쓰던 곳이다. 집무실 책상 옆에 그의 지팡이가 있었다. 안내를 맡은 김대중평화센터 직원은 “대통령 책상 위에 마지막까지 놓여있던 책은 『조선왕조실록』이었다”고 했다. 2층 전시 공간에선 DJ의 마지막 독서가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와 『조선왕조실록』(세종·문종실록)이었다고 보여줬다. 김대중도서전과 집무실 개방은 12일까지 이어진다.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 포스터.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 포스터.

10일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도 빼놓을 수 없는 100주년 행사다. ‘노회찬 6411’을 찍은 민환기 감독 영화다.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시사회에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화제가 됐다. 정치인 DJ의 성장사를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DJ의 청주교도소 영상은 이 영화에서 처음 공개된다. 미국 망명을 끝내고 1985년 2·12 총선 나흘 전에 귀국하는 장면에선 DJ의 주도면밀함을 느낄 수 있다. 귀국 길에 암살당한 ‘제2의 아키노 사태’를 우려하는 국제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 정치인 등 고위 인사 20여 명을 ‘인간 방패’처럼 대동하고 귀국했다. 영화는 DJ가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는 장면에서 다음 편을 예고하며 끝난다. 다큐 앞부분은 영화 ‘서울의 봄’을 분노하며 봤던 젊은이들에겐 프리퀄(Prequel)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반기문 “지도자는 세상을 넓게 봐야”

1964년 동료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DJ는 5시간19분 간 원고 없이 필리버스터를 했다. 가장 긴 한국의 국회 연설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서경호 기자

1964년 동료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DJ는 5시간19분 간 원고 없이 필리버스터를 했다. 가장 긴 한국의 국회 연설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서경호 기자

6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식도 지켜봤다. “정치지도자는 세상을 넓게 보고 10년, 20년 뒤 미래를 개척하는 정치를 하고, 편견과 차별을 관용과 용서로 녹여내는 것이 김대중 정신”이라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축사와 “야당일 때는 정부·여당과 초당적 협력을 하고, 집권했을 때는 국회와 야당을 존중했던 DJ는 진정한 의회주의자”라며 지금 우리 정치가 실패하고 있는 대화와 타협을 촉구한 김진표 국회의장의 축사가 기억에 남는다. 행사 마지막에 AI 기술로 구현한 DJ의 당부도 인상적이었다. “과거에 매여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DJ는 한일회담에 무조건 반대하지 않았다. 조건부 지지를 표명한 그는 ‘왕사꾸라’라는 비난을 받았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정치가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김종필과 연합하고 박정희를 용서하고 한일 관계개선에 나선 DJ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견 배신 같고 정치적 술수로 이해되고 적에게 양보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결과로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다. 정치가는 성직자도, 도덕 운동가도 아니다. 마땅히 DJ처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DJ는 현실적이고 실체적 의제에 집중…요즘 정치인이 더 일방적이고 독단적

정치학자 박상훈이 보는 DJ

박상훈

박상훈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에는 정치학자 박상훈(국회 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사진)의 인터뷰가 나온다. DJ가 돌풍을 일으켰던 1971년 대선에 대해 박상훈은 “DJ가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를 둔 공약과 주장을 내놓았기에 권위주의 체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신뢰를 줬다”고 평가했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71년 대선에서 DJ는 94만여 표 차로 졌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당시 집권세력은 DJ를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몰아붙였지만 고전했다. DJ가 경제와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정책 대안을 말했기 때문이다.”
DJ에게 무엇을 배워야 하나.
“정치가 김대중의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든 독단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반체제 운동가라기보다는 정치가로 살았다. 늘 체제 내에서 변화를 도모했고, 상대를 존중했기 때문에 자신의 옳음만 강변하지 않고 공존의 길을 찾았다. 그렇기에 군사정권에 가장 큰 위협이 됐다. 낭만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었고, 실체적 의제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 때도 김대중은 오늘의 정치가들처럼 독단적 반대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았다, 그런데, 민주주의하에서 오늘의 정치인들이 군사독재 때보다 더 일방적이고 독단적이다. 그러니 실체적 변화는 이끌지 못하고 시민사회를 분열과 적대로 고통받게 한다. 정치가는 정치가다워야 한다는 것, 지사적 외침만 앞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는 것, 정치는 사회를 통합하고 실체적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운동가의 역할도 살고 지식인의 존재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듯한 정치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DJ를 의회주의자라고 많이들 평가한다. 의회주의자는 어떻게 정의하나.
“의회는 ‘말하다’라는 어원을 갖는다. 평화적으로 말다툼하는 곳이다. 그러려면 얼굴 붉히지 않고 반대 토론하고 이견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도 야당을 인정하고 대화할 때만 의회주의자가 될 수 있다. 번갈아 집권하게 될 야당도 집권당과 대통령에 야유를 보내는 대신 존중해야 다음 번에 의회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며 정부를 이끌 수 있다.”
다큐 ‘길위에 김대중’에서 광주의 비극이 DJ를 단단한 내면의 정치인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했던데.
“정치가의 소명감과 책임감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가 대표해야 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애환과 고통을 공유할 수 있을 때 정치가는 성장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가의 말과 행동에는 자신의 야심과 영광만 있을 뿐 사회적 내용이 없다. 민중의 대표로서 호민관의 느낌을 주는 정치가는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정치를 지켜보기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