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총선, 여도 야도 분열…'87년 체제' 바뀌는 서막될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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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04면

[이준웅의 총선 레이더] ① 여론조사와 민심

제 22대 국회의원선거가 9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진은 국회의사당 모습. [뉴스1]

제 22대 국회의원선거가 9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사진은 국회의사당 모습. [뉴스1]

이번 총선 이후 뭐가 터져도 크게 한 방 터질 것 같다. 선거 자체는 여당과 야당이 모두 분열해서 치르는 선거가 되어 예측난망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어느 편에 속한 누가 이긴다고 해도 그게 새로운 해체의 시작이 될 것만 같다는 데 있다. 제6공화국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트 간 타협에 따른 민주화 이행과 공고화의 힘이 다하고 있다. 이 총선은 이른바 ‘87년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서막이 될 수 있다.

선거철이라니 역시 여론조사가 난무한다. 숫자놀음처럼 보이는 조사결과를 놓고 누가 이기고 지는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런데 애초에 무엇을 위한 선거이고 어쩌자는 조사란 말인가. 정치인이야 어차피 선거에 나와 뽑히거나 말거나 할 운명을 사는 자들이다. 유권자야말로 정치인을 바둑돌로 삼아 대국을 이끄는 주인이다. 바둑돌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유권자가 제22대 총선을 계기로 무엇을 원하는지, 왜 이렇게 행동이 변하는지, 우리 마음과 행동을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론을 보면서 영락하는 정파들의 승패를 점치며 정신줄 놓을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라는 게 어떻게든 돌리면 숫자는 뭐라도 나온다. 숫자라는 게 조사방법에 따라서 품질이 천차만별이지만, 속을 아는 사람만 품질을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승패를 예측한다는 게 지나고 보면 자명해 보이지만, 사정을 모르고 따라가다 보면 왕창 망하는 게 여론조사다. 가깝게는 지난 우리 2016년 ‘신 여소야대’ 총선과 미국 2016년 ‘트럼프 현상’ 대선에서 그렇게 망했다.

이 연재물에서 내가 일관되게 주장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후보의 득표율이 아니라 뒤에서 숫자를 집요하고도 체계적으로 흔들어 대는 민심의 변화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분열로 망한다던 더불어민주당이 여소야대를 만들며 대승했지만 도대체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 민심이 뭘 뜻하는지 당시엔 누구도 몰랐다. 이후 민주당은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총선까지 4연승 했는데 불행하게도 당사자마저 아직 모르는 눈치다. 여론조사를 보려면 선거의 진짜 의미, 즉 유권자의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

투표율이 역시 중요하다
표심을 이해하려면 먼저 투표율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맞는 말이다. 행동을 관찰해서 마음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가 ‘이번에 투표하러 가야지’라고 맘먹고, 실제로 선거일에 투표함에서 기표하는 일 자체가 일상에서 벗어난 일이다. 특히 과거 투표 경험이 없는 젊은 유권자라거나, 있더라도 투표행위가 특별한 추억에 속하는 일 하기 바쁜 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투표율 변화를 주도하는 경우에 왜 그들이 신분증을 꺼내 들고 투표소로 걸어 들어 갔는지 해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림 1〉은 제6공화국 대선과 총선의 투표율 변화를 도시한다. 붉은 선으로 표시한 총선투표율의 변화에 주목해 보면, 2008년 제18대 총선이 투표율 46.1%로 기록적으로 낮은 특이점에 속한다. 이후 총선 투표율은 2012년, 2016년, 2020년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돌이켜 보면, 2008년 총선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 치른 이른바 ‘뉴타운 총선’으로 2004년 ‘탄핵 총선’을 계기로 국회를 장악했던 열린우리당이 통합민주당으로 재창당해서 물갈이 공천 끝에 참패한 선거였다. 앞서 보았듯이 2016년 총선은 ‘신 여소야대’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선거였다. 투표율만 보면, 우리는 선거일에 유권자가 투표소에 몰리면 진보 쪽이 유리하고 투표소에 등장하지 않으면 보수 쪽이 유리하리라 해석해 볼 수 있다.

〈표 1〉은 투표율 변화에 담긴 사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단서를 제공한다. 2008년 ‘뉴타운 총선’에서 전체 투표율은 14.2%포인트 차이를 보이지만,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와 30대 유권자가 특별히 선거에 환멸을 느꼈다고 추론할 수 있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 30대 전반이었던 유권자가 4년 뒤 30대 후반이 되어 대거 투표장으로부터 이탈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할 지경이다. 또한 2016년 ‘신 여소야대 총선’에서는 직전 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3.8%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이 역시 30대 젊은 유권자가 변화를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새로운 기대 또는 개심 때문에 2000년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는 86세대가 아니라 젊은 유권자들이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투표율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러나 절반만 맞는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전 전화여론조사를 통해 얻은 정보가 투표행위를 짚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전화여론조사 면접자를 포함해서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행동하는 유권자도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게 문제
2016년 ‘신 여소야대 총선’은 전화여론조사가 망했던 선거로도 유명하다. 당시 야권분열을 겪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밝히는 유권자보다 집권 9년 차를 넘기는 보수 여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는 유권자가 많았던 것이다. 정확성을 자랑하는 지상파 3사 출구조사마저 제1당 예측에 실패했다. 출구조사 예측오차는 과거 어느 때보다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을 과대평가하는 편향을 범했다.

자신의 표심을 얼마나 드러내느냐는 보수·진보 이념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인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기반이론’을 원용해서 한국 유권자의 정치성향을 검토한 2017년 류원식과 이준웅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은 권위에 충성하고 혼란과 역겨움에 민감한데, 이 중에서 특히 권위에 충성하는 보수 유권자는 자신의 정견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수적이라고 해서 정치적으로 과묵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역시 중요한 점은 표심을 드러내는 행동과 같은 정치적 자세가 당대 정치적 맥락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느냐 여부다. ‘트럼프 현상’이 지배했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고학력 백인이나 여성 유권자와 같이 평소 정견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던 유권자들이 정작 선거에 임박해서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실업률이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노동계층의 유권자가 자신에게 걸려오는 전화여론조사 요청에 일관되게 거절한 까닭을 헤아려야 한다.

2016년 총선 결과를 검토해 보면, 투표율이 높은 지역구일수록 보수 여당인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이 낮았다. 총선 사상 최초로 도입한 사전투표 제도도 미묘하게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전투표율이 높거나 투표자 가운데 사전투표자의 비율이 높았던 지역구일수록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결과다. 흥미로운 사실은 투표자 중 사전투표자 비율이 높았던 지역구일수록 출구조사에서 당선자를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데 있다. 도대체 당시 총선을 기다리며 미리 투표하겠다고 다짐했던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도 출구조사를 포함한 선거여론조사 등에 응해서 말하는 식으로 밝히기보다 직접 투표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2020년 ‘코로나 총선’은 모두가 진보 여당이 무난히 승리할 것을 예상했던 그대로 끝난 선거였다. 예상대로 사전투표율이 높은 지역구일수록 미래통합당 후보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결과를 보였다. 〈그림 2〉가 제시하듯, 사전투표율이 높거나 사전투표자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출구조사의 예측오차가 커지는 상관관계를 이 선거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선거의 정치적 맥락은 다르더라도 유권자의 마음과 행동이 작동하는 방식에는 일관되게 작동하는 그 무엇인가 있을지 모른다. 나는 단지 선거여론조사와 선거통계를 통해 선거에 임한 인민의 마음과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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