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 바꾸는 돈이 더 들어요" 소줏값 그대로 둔다는 식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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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국산 증류주에 대한 기준판매비율 도입으로 소주 출고가가 하락하면서 국내 주요 편의점이 2일부터 소주 판매가를 200~300원 인하했다. 뉴스1

정부의 국산 증류주에 대한 기준판매비율 도입으로 소주 출고가가 하락하면서 국내 주요 편의점이 2일부터 소주 판매가를 200~300원 인하했다. 뉴스1

“올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내렸네요?”
2일 서울 마포구 한 편의점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직원 A씨가 참이슬 후레쉬(360㎖)의 바코드를 포스(POS) 기기에 찍은 뒤 한 말이다. 진열대의 참이슬 후레쉬 가격은 2100원이었지만 화면에는 1900원이 찍혔다. A씨는 “본사에서 새 가격표가 아직 안 와서 아직 1900원”이라고 말했다.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들은 이날부터 국산 소주 판매 정가를 200~300원 내렸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와 오리지날 360㎖ 한 병은 2100원에서 1900원으로 200원(9.5%), 640㎖ 페트병은 3600원에서 3300원으로 300원(8.3%) 싸졌다. 개별 점포는 본사가 공지한 정가 이하로 실제 가격을 정할 수 있어 이날 돌아본 일부 편의점은 가격 경쟁력을 위해 소주 한 병을 1800원에 팔기도 했다.

대형마트 3사는 하루 일찍 움직였다. 지난 1일 이마트는 1480원이던 참이슬 후레쉬 한 병 가격을 1330원으로 150원 낮췄고, 롯데마트는 1480원에서 1340원으로 140원 내렸다. 홈플러스 역시 1490원에서 1350원으로 조정했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소주 가격을 인하한 것은 새해부터 도입된 기준판매비율 제도 때문이다. 기준판매비율은 주세를 계산할 때 세금부과 기준인 과세표준을 줄여주는 일종의 할인율이다. 기존에는 소주 반출가격(제조원가에 판매원가와 이윤 등을 포함한 것)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지만 기준판매비율을 적용하면 소주 반출가격에서 22%를 할인해 세금을 부과한다. 세금 부과 기준이 완화됨에 따라 반출가격에 세금을 더한 출고가격도 낮아졌다. 가령 참이슬 후레쉬 360㎖ 한 병의 기존 출고가는 1247원에서 1115원으로 132원 인하됐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그래서 소주값 얼마나 싸졌나요?”
다만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할인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기준판매비율 도입 전에 소주 가격이 이미 한 차례 올랐기 때문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11월 9일 참이슬 후레쉬 360㎖ 1병의 출고가를 6.95% 인상했다. 1166원이었던 참이슬 후레쉬 1병 출고가는 인상 후 1247원이 됐다가 올해 1월 1일부로 1115원으로 조정됐다. 지난해 11월초 가격보다 51원 싸진 셈이다. 이를 반영한 편의점 소주 가격도 인상 전 1950원→2100원→1900원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50원 싸졌다. 마트 가격 역시 기존 1380원→1480원→1330원을 거쳐 50원 내려갔다. 기준판매비율 도입으로 가격 인하 효과를 기대했지만, 제조사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 체감 할인가는 50원 내외에 그치게 됐다.

식당 “소줏값 몇 백원 내리자고 메뉴판 못 바꿔”
일반 식당가에서도 소주 가격 인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일 서울 시내 식당 8곳에 소주값 인하 계획을 물었더니 7곳에서 “없다”고 답했다. 나머지 1곳은 지난해 12월 소주 가격을 올렸다가 다시 내린 경우다. 서울 관악구에서 김치두루치기집을 운영하는 이규엽(66)씨는 “소줏값 몇 백원 내린다고 메뉴판을 다시 바꾸려면 돈이 더 든다”며 기존 가격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이씨 가게는 2022년 말부터 소주 1병에 5000원을 받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B씨는 “대파 한 단이 1400원씩 하다 6000원씩 하는 등 물가가 크게 올랐는데 소줏값마저 내리면 가게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가게 월세와 인건비 상승을 감안하면 소주 가격을 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일부 가게에서는 실제 주류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류창준(55)씨는 지난해 말 5000원에서 5500원으로 올렸던 소주 가격을 1일부터 5000원으로 내렸다. 류씨는 “주변 가게 소주 가격이 5000원대에 형성돼 있고, 입고 가격이 내린다고 하니 우리도 가격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뿐 아니라 국산 약주나 청주 등 발효주류도 가격 변동이 예고돼 있다. 국세청은 1월 중 국산 발효주류에도 기준판매비율 심의회 심의를 거쳐 다음달 1일부터 기준판매비율 제도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주처럼 주세를 일부 인하해 소비자 판매가를 낮추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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