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강간 살인범으로 몰렸다…10살 아들 속인 조작된 연필 [나는 무죄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정원섭씨, 36년간 억울한 누명

나는 무죄입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검사가 물었습니다. “이 하늘색 연필이 네 거니? 이빨 자국도 너니?” 제 연필이 맞길래 “네” 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몰랐죠. 경찰이 제 연필을 바꿔치기했을 줄이야. 아버지는 15년을 복역하고, 36년 만에야 무죄를 받았습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춘천 파출소장 딸 피살사건’ 누명 피해자 고 정원섭씨의 아들 재호씨. 장진영 기자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춘천 파출소장 딸 피살사건’ 누명 피해자 고 정원섭씨의 아들 재호씨. 장진영 기자

1972년 9월 하순 강원도 춘천 역전파출소장의 딸 장모(10세)양이 마을 논길 한구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나체 시신과 현장 상황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격자도, 용의자도 없었다. 동네 남성 모두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첫 번째 단서는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음모였다. 경찰은 마을 남성을 모두 불러 일일이 대조했다. 하지만 DNA 검사가 일반화되지 않은 시기여서 음모의 겉모양만으로는 범인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김현옥 당시 내무부 장관은 “경찰 가족을 건드린 건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또 열흘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인사조치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시한부 검거령이 내려진 지 딱 열흘째 되던 날, 경찰은 정원섭(38세)씨를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정씨는 전국 산골을 찾아 교회를 개척할 정도로 열정적인 예비 목회자였다. 그랬던 그가 10세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살인까지 했다니,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약 6개월 뒤 정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수사팀 일부는 특진했고, 내무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경찰이 제시한 물증은 연필이었다. 현장엔 범인이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되는 하늘색 연필 한 자루가 있었는데, 정씨 아들 것으로 밝혀졌다. 아들 재호 씨는 법정에서 “내 연필이 맞다”고 증언했다.

-“하늘색 연필이 너의 것이니?”(검사) “네 맞아요.”(재호), “이빨 자국도 너의 것이니?”(검사) “네.”(재호) ※1972년 춘천지법 1심 공판

2021년 3월 87세로 별세한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진실화해위]

2021년 3월 87세로 별세한 고인의 생전 모습. [사진 진실화해위]

현장에선 접이식 빗도 발견됐는데 정씨가 생계를 위해 운영하던 만화가게 종업원 김모(17세)양의 것이었다. 김양은 “한동안 쓰다가 잃어버렸는데, 어느 날 정씨가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정씨에게 수년간 성폭행을 당했다”고도 진술했다.

하지만 증거는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 사건 현장을 처음 목격한 동네 주민에 따르면, 그곳에 있던 연필은 하늘색이 아닌 노란색 몽당연필이었다. 목격자는 1심 재판에서 노란 몽당연필이라고 증언했다가 위증죄로 구속됐다. 결국 2심에서 거짓 진술을 했다. 만홧가게 종업원은 “여관방에 불려가 경찰에게서 폭력과 협박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정원섭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유서를 쓰고 약을 먹었는데 죽지 않고 깨어났다”고도 고백했다. 연필은 경찰이 정씨 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정됐다. 경찰은 일부러 재호씨에게 연필을 깨물어 치아 자국을 내게 하기도 했다. 진실은 먼 훗날 재심 재판 과정에서 모두 드러났다.

1972년 보도 신문. 이 사건은 소멸시효 경과로 국가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 진실화해위]

1972년 보도 신문. 이 사건은 소멸시효 경과로 국가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 진실화해위]

1987년 12월 정씨는 15년 7개월여 만에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삶이 바뀐 건 1996년. 과거 변호인이었던 부장판사 출신 이범렬 변호사가 수사와 재판 기록을 건네면서였다. 암 투병 중이었던 이 변호사는 “나중에 재심을 해보라”며 기록을 꼭 보관하라고 했다. 그렇게 1999년 청구한 재심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기각됐다가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사건을 조사한 뒤에야 받아들여졌다. 정씨는 진실화해위에서 과거에 당했던 고문을 자세히 진술했다. “기합 및 구타를 받으며 신문을 당했다. 옷을 다 벗기고 손에 수건을 댄 뒤 소총 멜빵 같은 것으로 양손을 약간 떨어뜨려 묶고, 양팔 사이로 양 무릎을 넣어 무릎 아래로 봉을 통과시키고, 봉을 양 책상 사이에 걸쳐 매달리게 한 뒤 얼굴에 수건을 덮고 찬물을 부었고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잠을 재우지 않았고 음식도 제공하지 않았다.”

2008년 정원섭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36년 만이었다. 괴로움에 시달리다 그제야 오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아들은 목 놓아 서럽게 울었다고 했다. “제 말이 아버지를 범인으로 몰았다는 걸 알았던 게 아버지 첫 재판이 끝난 직후였어요. 어린 나이에 무섭고 또 두려웠죠.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기자와 대화를 나눈 지 2시간 반쯤 흘렀다. 재호씨는 의자를 정리하며 아버지가 감옥에서 보냈던 편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두려웠던 제 마음을 알았나 봐요. 나중에 편지에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그날 법정에서 제 모습이 그렇게 예뻤다고. 자랑스러웠다고. 아빠는 아들의 멋진 모습을 봐서 좋았으니까, 속상해하지 말라고,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