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 핵 억제, 반드시 필요한 까닭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에서 한ㆍ미 동맹은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을 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한반도에서의 핵 억제 적용에 관한 연합 교육 및 훈련 활동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15일 올해 두 번째 열린 핵 협의그룹 회의에선 핵 및 재래식 통합, CNI(Conventional Nuclear Integration)가 추진 과업 목록에 그 이름을 올렸다.

W76-2 저위력 핵탄두를 단 트라이던트 SLBM를 발사할 수 있는 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 테네시(SSBN 734). 미 해군

W76-2 저위력 핵탄두를 단 트라이던트 SLBM를 발사할 수 있는 미국 해군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 테네시(SSBN 734). 미 해군

‘핵 재래식 통합’, CNI는 지난해 10월에 발간된 미 핵태세검토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에서 그 개념만 간단히 설명됐을 뿐, 아직 미 국방부의 공식적인 교리나 정의가 구체적으로 확립돼 있지 않다. 미군에서 최초로 핵전력과 재래식 전력을 통합한 작전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소련을 포함한 바르샤바 조약 기구의 재래식 전력보다 수적으로 열세한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전력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미국은 핵 포병, 핵 단거리 로켓 등 저위력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한 작전을 계획했다. 미국은 핵 전쟁 상황에서의 전투를 위해 미 육군의 보병ㆍ공정 사단을 5각 편제 사단(Pentomic Division)으로 전환하려고까지 했으나, 실현 가능성의 문제 등으로 결국 무산됐다.

미국의 재래식 전력과 핵무기를 통합하는 작전 구상과 그 구체적인 노력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핵무기 사용에 의존하는 작전이 주는 부담이 단순한 군사적 이익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었다. 60여 년 넘게 세월이 지난 현재 핵 재래식 통합은 과거 냉전 시대 미국이 전장에서 저위력 핵무기 사용을 전제로 했던 것과 달리 가상 적국의 핵무기 사용 억제를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즉 적이 오판하여 핵을 사용할 가능성을 낮춰 적의 핵 사용 문턱을 높이려는 것이다. 최근 한ㆍ미 간에 합의한 핵 및 재래식 통합의 목표 역시 북한의 어떠한 핵무기 사용도 억제하려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고위력 탄도미사일. 유사시 지하 벙커의 북한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다. 이 같은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의 긴미한 통합이 CNI다. 국방과학연구소

고위력 탄도미사일. 유사시 지하 벙커의 북한 지휘부를 타격할 수 있다. 이 같은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의 긴미한 통합이 CNI다. 국방과학연구소

냉전 이후 미국은 전술핵무기를 폐기했고, 용어도 비전략 핵무기로 했으며, 핵 및 재래식 통합과 관련된 교육 훈련이나 교리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는 지속해서 다양한 전술 핵무기를 현대화하고 있으며 현재 2000여 발로 평가되는 전술 핵무기는 현재 어떠한 핵 군비통제 조약에도 제한받지 않는 상태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구조적인 약점을 파고드는 전략과 교리를 발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선보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와 동시에 자국 핵 부대에 특별 경계 태세를 지시해 서방의 직접적인 파병과 초기 공격무기 지원을 머뭇거리게 했다. 또 올해 6월 러시아는 전술 핵무기를 벨라루스에 전진 배치해 우크라이나를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핵 전문가들은 이를 ‘위기 고조를 통한 위기 완화 전략(Escalate to De-escalate)’ 혹은 ‘위기 고조를 통한 승리 전략(Escalate to Win)’이라고 했다. 이러한 전략의 발전은 그 어느 때보다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이러한 러시아의 행태에 북한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핵탄두를 소형화ㆍ표준화ㆍ경량화했고 올해 3월 전술 핵탄두 화산-31을 공개하며 이를 탑재할 수 있는 투발 수단으로 미사일과 방사포 등 총 8종을 제시했다. 미국의 비전략 핵무기는 우리에게 유럽과 미국의 핵 공유체계로 알려진 약 200기 내외의 B61-12 중력 핵폭탄과 SLBM에 탑재되는 저위력 핵탄두인 W76-2가 주요 전력이다. 미국은 5.0㏏의 저위력 탄두인 W76-2를 전략핵잠수함 1척에 장착된 SLBM인 트라이던트 미사일 총 20기 중 1기 또는 2기에 탑재하여 2019년 배치 완료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북한의 다양한 전술 핵무기보다 미국의 핵 대응 옵션은 제한적이다. 미국은 2018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W76-2 저위력 탄두를 처음으로 공개하며 이를 제한된 지역 분쟁 상황에서 자국 전술핵 사용의 문턱을 낮춘 러시아에 대한 대응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저위력 탄두를 탑재한 트라이던트 미사일은 100㏏ 이상의 핵탄두를 탑재한 기존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외관에서 차이가 없다. W76-2가 탑재된 트라이던트 미사일의 실전 사용은 엄청나게 많은 부담을 미국에 줄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사용에 대하여 정권의 종말을 요구하는 응징적 보복 전략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신뢰성 있는 비례적·균형적 억제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미국의 다양한 저위력 핵 작전 선택지는 물론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 실행 및 기획을 통해 미ㆍ북 간의 저위력 핵무기의 격차에서 초래되는 불균형적 상황을 보완해야 한다.

우리의 재래식 전력은 핵 위기 시 안정화 역할 등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다. 지난 2월 한ㆍ미간의 확장억제 TTX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과 관련된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보도됐다. 억제 실패 시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한 전략 수립과 군의 대비, 관련된 범정부 차원의 한·미 간 논의도 필요하다.

지난 4월 한ㆍ미 양국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발표하던 공동기자회견. 대통령실

지난 4월 한ㆍ미 양국 정상이 워싱턴 선언을 발표하던 공동기자회견. 대통령실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현재 대한민국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다. 지난달 북한 외무성은 북ㆍ러 친선 협조 관계는 흔들림 없이 강화 발전될 것이며, 미국은 새로운 현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북ㆍ러 간 군사협력이 향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촉진 요소임은 분명하다. 한ㆍ미의 억제 전략은 북한의 변화에 맞게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 균형 있고 신뢰성 있는 억제력이 보장돼야 비핵화 대화 논의도 가능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