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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해외부동산 사들일때, 정작 도쿄 부동산은 매물로…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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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본이 올 한해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기업이 미국 뉴욕의 초고층 빌딩 매수에 나서는 등 1980년대 말 버블 붕괴 이후 가장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단 평가다.

일본 부동산개발회사 모리 트러스트는 지난 6월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인 ‘245 파크 애비뉴’(사진)의 지분 49.9%를 매입했다. 사진 IWG 화면 캡처

일본 부동산개발회사 모리 트러스트는 지난 6월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인 ‘245 파크 애비뉴’(사진)의 지분 49.9%를 매입했다. 사진 IWG 화면 캡처

대조적으로 일본 국내의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복수의 해외 자본이 도쿄 요지의 빌딩을 매각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하는 등 우울한 연말을 맞고 있다.

공교롭게도 전문가들은 두 현상 모두 일본의 초저금리 기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 측은 자금 조달이 쉬워서 해외 부동산을 사들일 총알이 두둑한데, 반대로 해외 투자자들은 앞으로 일본 금리가 오를 것에 대비해 일본 내 부동산 처분을 서두르고 있단 얘기다.

맨해튼 랜드마크 사는 일본계 

먼저 일본의 해외 부동산 사들이기 붐부터 짚어보자.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부동산개발회사 모리 트러스트는 지난 6월 뉴욕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인 ‘245 파크 애비뉴’의 지분 49.9%를 6억8000만 달러(약 8820억원)에 사들였다.

부동산 업계에서 “일본이 버블 시기 록펠러센터(뉴욕)와 페블비치 골프링크스(캘리포니아)와 같은 미국의 상징적인 부동산을 사들이던 시절을 연상시킨다”는 말이 나돌 정도의 초대형 매수였다. 오피스 공실률이 커지고 금리가 올라 다른 투자자들이 구매를 꺼리는 상황에서 일본 세력이 과감히 투자해 반향은 더 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링크스는 한때 일본계가 사들였다가 버블 붕괴 이후 막대한 손실을 보고 다시 판 곳이다. 사진은 지난 7월 8일 US여자오픈 골프대회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 골프링크스는 한때 일본계가 사들였다가 버블 붕괴 이후 막대한 손실을 보고 다시 판 곳이다. 사진은 지난 7월 8일 US여자오픈 골프대회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뉴욕뿐만 아니다. 일본 최대 부동산개발 업체인 미쓰이부동산은 조인트벤처(합작 투자) 형태로 영국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인근 오피스 빌딩을 3억1500만 파운드(약 5162억원)에 매수했고, 미쓰비시 에스테이트는 펀드를 조성해 호주 시드니의 상업용 건물을 7억7900만 호주달러(약 6780억원)에 샀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도 최근 들어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금리 낮아 경쟁력 강화 기회" 

상업용 부동산시장 분석 업체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리얼에셋에 따르면 올해 일본계 자본이 전 세계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한 금액은 74억 달러(약 9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일본계 자본의 지난 15년간 연평균 투자금의 3배가 넘는 규모다. 거래 비중도 지난해 세계 16위에서 5위로 훌쩍 뛰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이와 관련, “일본계는 선진국 중 유일하게 최저 수준의 대출 금리를 적용받다 보니,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적기로 보고 있다”(알렉스 포셰이 뉴마크그룹 국제자본시장 책임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 부동산 매수를 계속해온 모리 트러스트의 다테 미와코(伊達美和子) 사장은 블룸버그에 “유일무이한 자산이라면 기회가 왔을 때 인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엔화 약세로 구매력 자체는 낮아졌지만, 글로벌 부동산 침체로 싸게 나온 매물이 적지 않다는 점도 일본계의 부동산 매수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또 일본 내에선 수익을 내기 어려워져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변화 전략을 꾀하고 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도쿄 도심 빌딩 잇달아 매물로 

일본 국내 부동산 사정은 정반대다. 해외 자본이 일본 시장에서 잇달아 철수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도쿄의 노른자위 땅인 미나토(港)구 시오도메(汐留)의 초고층 오피스 빌딩 ‘시오도메 시티센터’의 지분 매각을 결정하고, 도쿄의 다른 대형 오피스 빌딩들도 매물로 내놨다. 이 빌딩의 경우, 지난 여름 매각 절차에 들어갔으나 주요 임차인(후지쓰 본사)이 나갈 것이란 소식에 선뜻 나서는 투자자가 없는 실정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중국 최대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는 2015년 사들였던 도쿄의 명소 ‘메구로 가조엔(目黒雅叙園·현 호텔 가조엔 도쿄)’의 매각에 나선 상황이다. 호텔, 연회장, 사무용 시설 등이 혼합된 복합 시설로 1930년대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종합예식장을 보유한 곳이다. 이 외에도 미국·유럽 등의 투자자들도 일본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선 ‘팔자’로 돌아선 상황이다.

실제로 글로벌 부동산서비스 업체 CRBE에 따르면 올해 1~9월 해외 자본의 일본 국내 부동산 매입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감소한 약 8300억 엔(약 7조604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매각액은 2배 이상 증가한 1조500억 엔(약 9조6200억원)으로 뚜렷한 매도 우위세를 보였다.

'금리 상승' 움직임에 불안  

해외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원인을 지적한다. 첫째, 글로벌 부동산 침체에 따른 운용실적 악화가 상대적으로 건실했던 일본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미국·유럽 등에서 빌딩 가격이 급락한 만큼 일본에서 단기적인 차익을 실현해 손실분을 만회한다는 셈법이다.

일본 내 오피스 수요가 대폭 줄어든 것도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 오피스 중개업체 미키상사에 따르면 도쿄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5개 구(지요다·주오·미나토·신주쿠·시부야)의 평균 임대료는 지난 10월까지 39개월 연속 떨어졌다. 설상가상 공실률은 6.1%로 공급과잉 기준인 5%를 33개월 연속 웃돌고 있다. 한마디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단 얘기다.

해외 자본이 일본 도쿄의 상업용 부동산을 올해부터 대거 매물로 내놓기 시작했다. 사진은 도쿄 도심의 마천루. AP=연합뉴스

해외 자본이 일본 도쿄의 상업용 부동산을 올해부터 대거 매물로 내놓기 시작했다. 사진은 도쿄 도심의 마천루. AP=연합뉴스

마지막은 금리 상승 우려다. 그간 일본 부동산 시장이 해외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던 최대 강점은 초저금리에 따른 낮은 차입 비용이었다. 그런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정책 금리(-0.1%)를 유지하던 일본이 최근 들어 금융 정상화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 7일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총재는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게 확실해지면 마이너스 금리 해제 등도 시야에 넣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신호가 해외 투자자 입장에선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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