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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판 지연 심각, 여야 정쟁 말고 판사 정원부터 늘려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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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사 370명 증원 법안, 정치권 이해로 1년째 표류

조 대법원장 “신속 재판받을 권리, 법원이 못 지켜”

어제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그 앞에 놓인 첫 번째 과제는 지난 6년간 ‘김명수 코트’(법원)가 야기한 사법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다. 판사들의 정치적 편향과 법원 내에 팽배한 재판 지연이 문제의 핵심이다. 특히 조 대법원장의 말처럼 “국민에겐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가 있는데 법원이 지키지 못해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재판의 평균 처리 기간이 민사 본안의 경우 245일에서 420일, 형사 공판은 158일에서 223일로 증가했다. 형사 단독사건(1심) 접수 후 첫 기일까지의 기간도 41일에서 84일로 늘었다. 민사 1심 판결이 나오는 데 2년이 넘는 경우도 2016년 2142건에서 지난해 7744건으로 급증했다.

헌법에 보장된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27조 3항)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재판 장기화로 범죄 피해자의 회복은 멀어지고, 재산권 같은 개인의 권리도 침해당한다. 뒤늦은 판결로 적기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이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선거사범은 재판이 지연되는 사이 임기를 모두 채우기도 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 폐지로 판사들의 동기부여가 약해졌고, 3주간 3건을 선고하고 한 주는 쉬는 ‘3·3·3’ 룰의 도입 등으로 ‘워라밸’의 목소리가 커졌다.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선발하는 ‘법조 일원화’ 역시 판결 적체에 한몫했다.

그러나 고법 부장 승진제를 부활시키고 ‘법조 일원화’를 폐지한다고 해서 재판 지연 문제가 단박에 해결되진 않는다. 여성 법관이 늘고 사회적으로 야간·주말 근무 등이 줄어든 현실은 법원도 마찬가지다. 사건이 고도화되고 소득 수준이 높아져 여러 변호사를 선임해 방어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법관 정원은 10년째 3214명으로 묶여 있다. 같은 기간 변호사는 2배 이상 늘었다. 내년도 신임 법관은 두 자릿수에 그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전체 법관 대비 결원이 21명뿐이어서다.

지난해 정부가 판사 370명 증원 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여당은 검사 증원 법안의 동시 처리를 고집하고 있고, 야당은 검찰 공화국 저지를 내세우며 맞선다. 재판이 미뤄져 임기를 연장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속내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달라 법관 증원이 미뤄지는 사이 국민의 기본권은 계속 침식당한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시급성이 큰 판사 증원법부터 처리해야 한다. “사법부는 기본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조 대법원장의 말처럼 입법부 역시 국민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이 뜻을 국회가 충분히 알고 있다면 법안 처리를 하루도 지체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