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컷칼럼

위기의식 없는 여당…‘양남 자민련’ 전락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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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역구 단골 호프집에 갔더니 사장이 ‘큰일 났다’고 하더라. 손님 10명 중 7명이 대통령을 욕한다는 거다. 포장마차에 들렀더니 날 알아본 손님 5명이 입 모아 ‘대통령이 TV에 나오면 채널 돌린다’고 하더라. 녹음해서 의원총회에서 틀어주고 싶더라.” 3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와 혈투 끝에 당선된 국민의힘 수도권 모 의원이 전한 얘기다.

“지역구 돌기가 겁난다. ‘당신은 좋은데, 용산은 싫어’ ‘당신이 야당이면 백 번이라도 뽑았을 텐데’라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궤멸 수준 참패를 당한 3년 전 총선 때로 돌아간 분위기다.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있지 않느냐고? 그건 누구나 안다. 새삼스레 그거 강조한다고 표 오지 않는다. 주민들은 1년반 전 윤 대통령 뽑으면서 기대했던 것들이 여태 이뤄지지 못한 걸 엄중히 보고 있더라.” 서울 도봉갑에서 여당 당협위원장을 맡은 청년 정치인 김재섭의 전언이다.

수도권 민심 빨간불 켜진 지 오래
영남중진 비토로 혁신 지지부진
대통령이 변화 선도해야 돌파구

“회식 문화가 사라져 저녁에 승객이 없다. 2차행 승객들로 붐비던 밤 9시대도 한가하다. 그나마 승객이 있는 데가 강남·홍대와 탑골공원이다. 요즘 탑골공원 뒤편에 포장마차촌이 성황인데, 업주도 손님도 죄다 젊은이다. 돈이 없으니까 청년들이 노인들 밀어내고 들어앉은 거다. 경기가 확실히 안 좋다.” 그제 저녁 필자를 태우고 뻥 뚫린 여의도 대로를 달리던 택시기사의 말이다.

이게 수도권의 현실이요, 민심이다. 그런데 집권당인 국민의힘 의원총회는 딴 세상이다. 총선의 향배를 쥔 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발언 기회조차 없다. 대표·원내대표·사무총장을 비롯해 절대 다수인 영남권 의원들이 마이크를 독점하고 ‘단합’을 강조한다. 내부 총질 말고 원래 가던 대로 가자는 얘기다. 동대문 출마를 준비 중인 허은아 의원은 “개혁성향 영남권 의원조차 ‘서울이 그리 어렵나?’고 물어 놀랐다”고 했다.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의원들도 영남 중진들이다. 이들은 변화가 싫다. 대표나 원내대표 뽑을 때 ‘다음 총선 공천 보장’을 약속받고 표를 준 사람들이니 ‘험지 출마’니, ‘불출마’니 하는 얘기에 펄쩍 뛸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통령이 중도층을 챙기고 실용 행보를 하려 하면 “지지율 떨어집니다. 집토끼부터 챙겨야 합니다”고 말리며 ‘이념’으로 몰아간다. 그 결과 여당이 받아든 성적표가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아닌가.

영남 중진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근거로 들이대는 게 당 지지율 여론조사다. 민주당과 비슷하거나 조금 이기는 거로 나오니 “수도권서 50석, 전국은 과반(151석) 너끈할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착각이다.

집권 3년 차에 치러지는 총선의 잣대는 당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다. 수도권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호감도)은 40%를 넘지 못하는 반면, 비호감도는 60%에 육박한다. 2020년 4·15 총선 닷새 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7%선이었고 비호감도는 35% 선이었다. 이 수치가 총선에 그대로 반영돼 민주당은 179석, 미래통합당(여당 전신)은 102석을 차지했다. 당 지지율만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30%대로 비슷하지만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중도층(40%)가운데 열에 일곱의 속내는 여당을 떠난 징후가 농후하다. “지역구 분위기가 3년 전 총선 때로 돌아갔다”는 김재섭 위원장의 말이 헛말이 아닌 이유다.

이대로라면 국민의힘은 넉 달 뒤 총선에서 3년 전 총선과 같거나 더 안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서 ‘강서(강남·서초)’만 이기는 등 100석도 못 건지고 ‘양남(강남·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는 시나리오가 허언이 아니다.

정치는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윤 대통령 앞에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줄일 건 예산이 아니라 윤의 임기’라는 피켓을 들었다. 대통령이 강 의원에게 다가가 악수하면 어땠을까. 국민은 대통령의 대범함에 박수를 보냈을 거다. 그게 정치 아닌가. 이준석을 비롯한 당내 반대 세력도 마찬가지로 대범하게 품는다면 대통령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다. 국민을 대하는 태도(Attitude)를 바꿀 필요가 있다. 태도가 콘텐트는 아니지만, 국민은 눈에 보이는 대통령의 태도를 통해 대통령의 콘텐트를 가늠하는 법이다.

소통 채널도 바꿔야 한다. 공천만 받으면 되는 영남 중진들 대신 본선에서 초박빙 혈투를 벌일 수도권 후보들의 얘기를 들어야 민심이 보일 것이다. 선거는 이슈도 인물도 중요하지만 구도에서 밀리면 필패다. 내년 총선 구도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호불호가 좌우할 것이다. 그렇다면 답도 분명하지 않을까.

글=강찬호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