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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엄마 귀신’이 휴가 끝에, ‘싱가포르 엄마’가 덕질 끝에 찾은 것은?

중앙일보

입력

'천만 영화'를 향해 진격하는 '서울의 봄'부터 이순신 3부작의 완결편 '노량'까지, 대작들이 내걸리는 겨울 극장가의 틈새는 작은 영화가 덥힌다. 저승에서 휴가 얻어 이승의 딸 찾아온 '엄마 귀신'을 그린 한국 영화 '3일의 휴가'(감독 육상효), 한국 드라마 속 장소를 따라가는 패키지 여행길에서 자아 찾는 싱가포르 엄마의 '아줌마'(감독 허슈밍)다. 너무도 보편적이라 진부할 '엄마'라는 소재를 영리한 설정과 장치로 살렸다.

겨울 극장가 찾아온 ‘엄마들의 휴가’

강원도의 목가적 풍경 속에 펼쳐지는 모녀 판타지 영화 '3일의 휴가'. 사진 쇼박스

강원도의 목가적 풍경 속에 펼쳐지는 모녀 판타지 영화 '3일의 휴가'. 사진 쇼박스

‘한국 엄마 귀신'의 휴가

사후 3년 만에 3일 휴가를 받은 엄마 복자(김해숙)는 저승 가이드(강기영)를 따라 딸 진주(신민아)를 만나러 온다. 악착같이 공부시켜 미국 명문대 교수가 된 줄 알았는데, 고향 백반집을 이어받은 모습에 복장이 터진다. '만질 수도, 말할 수도 없고,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저승의 여행 규칙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영화 '3일의 휴가'는 죽은 엄마의 시골집에서 엄마의 레시피를 찾아나가는 진주(신민아)와 그런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 복자(김해숙)의 이야기다. 사진 쇼박스

영화 '3일의 휴가'는 죽은 엄마의 시골집에서 엄마의 레시피를 찾아나가는 진주(신민아)와 그런 딸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 복자(김해숙)의 이야기다. 사진 쇼박스

강원도 시골집의 동화 같은 겨울 정경 속에서 진주가 찾아 나가는 엄마의 레시피가 회한과 그리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오감으로 살렸다. 햄을 숭덩숭덩 떠 넣은 스팸 김치찌개, 갓 만든 흰 두부, 가마솥 가득 끓여낸 잔치국수, 입맛 까다로운 딸을 위해 무채 썰어놓고 빚어 쪄낸 특별한 만두까지, 끊임없이 모락모락 보글보글 익어간다. 육상효 감독은 영화 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기억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을 영화에서 어떤 게 시각적으로 보일까. 음식ㆍ음악ㆍ풍경으로 기억을 환기해 내는 데 연출 포인트를 뒀다"며 "영화의 메시지는 '부모님의 전화 잘 받자'"라고 설명했다.

모녀의 사연이 진부한 신파로만 흐르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 것은 유영아 작가의 각본.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인 관객들에게 "내가 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질문하며 저승의 금기로 ‘눈물 속 웃음'을 심었다. 다양한 엄마 연기를 해 왔지만  "서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고, 감정을 통하지 않으면서 따로따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는 배우 김해숙 씨는 "어머니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살아계실 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105분, 12세 관람가.

'싱가포르 엄마'의 휴가  

아들 키우고 남편 간병하다 세월이 갔다. 남편과 사별한 빈집에서 아들 기다리며 한국 드라마 보는 게 일상인 림메이화(홍휘팡). 함께 드라마 속 한국 여행지를 찾아갈 꿈에 부풀어 있건만 아들은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혼자 여행길에 오른다. 아줌마를 돕는 '아저씨' 역할은 아파트 경비원 정수(정동환), 패키지 여행길에 낙오된 림메이화는 덕분에 추운 겨울밤을 길에서 지새지 않아도 됐다.

영화 '아줌마'에는 다비치의 '여성 시대'에 맞춰 에어로빅으로 아침을 여는 싱가포르 아줌마(홍휘팡)가 등장한다. 사진 싸이더스

영화 '아줌마'에는 다비치의 '여성 시대'에 맞춰 에어로빅으로 아침을 여는 싱가포르 아줌마(홍휘팡)가 등장한다. 사진 싸이더스

외롭고 가난해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나"라며 인간의 본분을 잊지 않는 정수, 사채업자들에 쫓기면서도 별거 중인 가족을 찾아 나서는 불안 불안한 가이드 권우(강형석)와 함께 ’아줌마‘는 정해진 관광코스를 벗어나 현지인과 교류하며 길을, 그리고 자신을 찾아 나간다. 싱가포르와 한국의 두 베테랑 배우는 한국 드라마 대사로 배운 몇 마디 한국말로, 또 어설픈 영어로 서로에게 진심을 전한다.

서구식 로드 무비의 배경이 한국인 것, 또 난데없이 사채업자가 등장한다거나, 림메이화가 즐겨 보던 드라마 속 '최애' 여진구와 만나는 장면처럼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심어둔 것이 흥미롭다. 특별 출연한 배우 여진구를, 또 티아라ㆍ다비치ㆍ씨야가 부른 '여성 시대'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길 잃은 관광객 아줌마, 우연히 도움을 주게 된 아파트 경비 아저씨(정동환), 그리고 사고뭉치 가이드(강형석)까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로드무비 '아줌마'. 사진 싸이더스

길 잃은 관광객 아줌마, 우연히 도움을 주게 된 아파트 경비 아저씨(정동환), 그리고 사고뭉치 가이드(강형석)까지,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로드무비 '아줌마'. 사진 싸이더스

장편 데뷔작 '아줌마'를 시작하면서 2015년 난생 처음 한국에 단체 여행으로 온 허슈밍 감독은 “한국 드라마 팬이었던 어머니가 영감을 줬다”며 “미국에서 화상 전화를 하면 주변 사람 근황을 얘기하듯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안부를 전했다”고 돌아봤다. 한국과 싱가포르 첫 합작 영화로 영어 제목도 '아줌마(Ajoomma)'다. 중국어 제목도 마찬가지인데, 중년 여성의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뜻에서 '꽃길 아줌마'로 했다. 감독은 “아줌마라는 호칭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가 영화로 없어지면 좋겠다. 중년 여성들이 '그래, 나 아줌마야'라며 당당히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지난해 중화권 최고 영화상인 금마장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ㆍ각본상ㆍ여우주연상ㆍ남우조연상(정동환) 후보에 올랐다. 90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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