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 3단 고음, 우영우 지웠다…그녀가 6개월간 3시간씩 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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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 배우 박은빈은 15년 동안 무인도에서 홀로 생활한 서목하 역할을 맡았다. 사진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 배우 박은빈은 15년 동안 무인도에서 홀로 생활한 서목하 역할을 맡았다. 사진 tvN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무인도. 아수라장이 된 안식처를 절망과 분노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소녀는 이내 긴 머리를 질끈 묶는다. 그리고 묵묵히 정리정돈을 시작한다. 3일 종영한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의 한 장면이다. 15년 동안 무인도에서 홀로 생활한 주인공 서목하의 이러한 다부진 모습에 배우 박은빈(31)은 드라마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지난해 큰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 이하 ‘우영우’)를 끝내고 반년도 안돼 그가 선택한 작품이다. “(‘우영우’를 연기한) 2022년이 좋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소란스럽기도 했는데, 그 마음을 서목하라는 인물이 잘 청소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15년 무인도 갇혔던 서목하 역…보컬·기타 레슨도

4일 서울 강남구의 소속사에서 만난 박은빈은 토끼 캐릭터가 그려진 하늘색 노트를 수줍게 들어보였다. 일명 박은빈의 ‘생각 노트’다. 매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자신이 맡은 배역의 성격·행동·태도 등을 연구해 공책에 정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설정과 함께 배역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공책에 꼼꼼히 적는다. 단순히 대사만 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공책에 담긴 박은빈의 수많은 생각과 고민은 그대로 캐릭터에 체화된다.

‘무인도의 디바’ 서목하와 함께하며 만들어 간 생각 노트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박은빈은 “아무래도 무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적었다”고 했다. “누구나 메아리가 울리는 공허한 마음의 공간이 있지 않냐”면서 “작품을 준비하면서 ‘무인도라는 공간이 내 안에도 있겠구나’ 느꼈고, 모두가 각자 갇혀 있는 무인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목하가 무인도 밖을 나와 여러 사람을 만나고, 가족·연인·친구 등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을 드라마 내내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 서목하 역할을 맡은 배우 박은빈. 사진 나무엑터스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 서목하 역할을 맡은 배우 박은빈. 사진 나무엑터스

서목하는 가수의 꿈을 가진 인물이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피해 서울로 향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박은빈은 “물리적으로 무인도에 갇히며 꿈이 유예됐지만, 목하는 결코 정체되지 않고 본인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말했다. 서목하의 본체인 그 역시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프로 가수의 창법을 따라 하는 것은 저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자칫 느끼해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면서 “‘서목하 느낌의 창법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음색을 가진 사람일까’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도 받았다. 그는 올 1월 중순부터 싱어송라이터 알리아에게 하루에 3시간씩 보컬과 기타 레슨을 받았다. 4월 본격 촬영을 시작한 후에도 꾸준히 이어간 레슨은 총 43번 진행됐다. 발성 등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나니, 8월부터 드라마를 위한 노래 녹음에 들어갔을 땐 음악감독 등 전문가로부터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박은빈은 “평소 노래를 좋아했는데, 듣기는 쉬워도 부르기 정말 어려운 곡들이 많더라. 매 순간 해내기 어렵겠다고 느꼈던 적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극 중 가수 윤란주(김효진)의 최전성기를 넘어서는 가창력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납득할 만한 노래 실력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촬영과 레슨을 병행하는 것이 고됐지만, 또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가수 지망생 서목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박은빈은 올 1월 중순부터 6개월 간 하루에 3시간 씩 보컬과 기타 레슨을 받았다. 사진 tvN

가수 지망생 서목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박은빈은 올 1월 중순부터 6개월 간 하루에 3시간 씩 보컬과 기타 레슨을 받았다. 사진 tvN

이처럼 어렵게 빚어낸 박은빈의 진정성 있는 가창을 발판으로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10.5%(닐슨, 전국)를 찍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또 극 중 그가 부른 노래는 음원으로 발매됐다.
‘3단 고음’으로 화제가 됐던 ‘그날 밤’을 포함해 ‘썸데이(Someday)’, ‘민트(Mint)’,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등 7개 곡이다. 가녀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탄한 보컬에 놀라워하는 반응이 잇따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을 묻자 그는 “‘태릉선수촌의 선수 역할을 맡으면 금메달도 따겠다’는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숨은 노력까지 알아봐 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고 말했다.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어느덧 연기 생활 28년 차인 박은빈. 이제 막 30대의 문을 연 그는 지난 4월 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우영우’로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고의 정점을 찍은 연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에 대해 부담감은 없을까. “큰 상을 받고 나니 (오히려) 연기에서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상을 받고 나니, 앞으로는 즐기면서 마음 편하게 재밌는 연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영우’처럼 예상치 못한 초대박 행운이 언제 또 올 수 있을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그때그때 하고 싶은 연기를 잘 해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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