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우크라 드론 1만대 잃는다…러 '보이지 않는 무기' 정체 [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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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의 전자전(電子戰)기 도입 사업이 또 먹구름을 만날까.

1일 국회와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전자전기(R&D)’ 항목이 당초 21억 2900만원에서 전액 삭감됐다. 방사청 관계자는 “사업타당성(사타) 분석이 아직 끝나지 않아 예산 반영이 안 된 것”이라며 “내년 사타 분석 종료 후 2025년도 예산에 태워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군의 F-15 이글 전투기가 무반향실 천장에 매달려 전파측정을 받고 있다. 미 공군

미국 공군의 F-15 이글 전투기가 무반향실 천장에 매달려 전파측정을 받고 있다. 미 공군

앞서 방사청은 지난 4월 13일 제152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고 전자전기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을 의결했다. 전자전기 사업은 유사시 북한 통합방공망과 무선지휘통신체계를 마비시키거나 교란해 아군 공중 전력의 생존성과 합동작전 수행 능력을 높이려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당초 국방과학연구소(ADD) 주관으로 내년부터 2032년까지 1조 8500억원을 투입해 국내에서 기존 항공기를 개조해 각종 항공전자장비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전자전기를 개발하려고 했다. 주변국 위협 신호를 수집ㆍ분석해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 계획도 있었다.

사타 분석은 현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진행 중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KISTEP 연구원들이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기 단계에서 소액 예산이 잘린 것이라 아직 사업이 난항이라고 얘기하기엔 섣부르다.

그러나 국산 전자전기 개발 사업은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2019년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던 사업은 2020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소요검증에서 제동이 걸렸다. 소요검증은 무기체계가 필요한지 따져보는 절차다. 당시 소요검증에서 유사시 한반도 전장에서 전자전기의 효용성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방공망은 낡고 성능도 떨어지는데, 공군은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자전기가 당장 필요한 전력이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후 공군과 방사청은 주변국과 국제 정세를 생각하면 전자전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 논리로 소요검증을 통과했다.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현대 공중전에서 전투기뿐만 아니라 지원기가 필수 요소”라며 “공중급유기인 KC-330 시그너스는 ‘당장 필요 없다’는 이유로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러나 막상 들여오고 나니 재외국민 수송 등 톡톡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유사시 전자전기가 반드시 아군기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전자전은 무엇이고, 전자전기는 왜 필수 전력일까?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전쟁'

지난해 2월 24일 시작한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금 있으면 햇수로 3년이 된다. 지금도 최전선에선 양군이 혈전을 벌이고 있다. 전투는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눈에 안 보이는 싸움도 치열하다. 바로 전자전(Electronic Warfare) 또는 전자기전(Electromagnetic Warfare)이다.

러시아 세바스토폴항에 정박한 선박의 위치가 북쪽 세바스토폴 공항으로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강력한 재머로 GPS 등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벌뉴스

러시아 세바스토폴항에 정박한 선박의 위치가 북쪽 세바스토폴 공항으로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강력한 재머로 GPS 등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이벌뉴스

온라인 군사매체인 네이벌뉴스에 따르면 지난달 초부터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해군 군사기지인 세바스토폴 항구를 드나드는 민간 선박의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이 엉망으로 나타났다. 세바스토폴 항구에 정박한 선박의 위치가 8㎞ 북쪽 세바스토폴 공항으로 표시됐다.

AIS는 항해안전을 위해 선박의 위치를 GPS(미국)ㆍ글로나스(러시아)ㆍ갈릴레오(유럽) 등 범지구 위성 항법 시스템을 통해 자동으로 알리는 장치다. AI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건 러시아가 세바스토폴에 GPS 등의 전파를 방해하는 재머를 가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재머는 우크라이나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에 대한 방어 대책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10월 29일을 시작으로 모두 7차례 세바스토폴을 공격했다. 지난 9월 13일 공격으로 러시아 해군의 강습상륙함과 잠수함이 크게 부서졌다.

네이벌뉴스는 또 러시아가 재머로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의 촬영을 훼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SAR 위성은 렌즈가 아니라 레이더로 촬영하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아도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전파 방해를 받으면 영상 이미지가 왜곡된다.

드론 때문에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전자전

전자전의 전장은 전기ㆍ자기의 흐름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인 전자기파를 파장에 따라 분해한 뒤 배열한 전자기 스펙트럼(Electromagnetic Spectrum)이다. 전자전은 크게 적의 전자파 사용을 무력화하는 전자공격(EA), 적의 전파방해에 대응하는 전자방어(EP), 적의 전파정보를 입수하는 전자지원(ES) 등으로 나뉜다.

F-22와 F-35와 같이 AESA 레이더가 달린 전투기는 자체적으로 적 방공망을 교란할 수 있으며, EA-18G는 더 강력한 재머로 적 방공망을 무력화한다. EC-130H는 적 통신망을 망가뜨린다. 디코이나 드론과 같은 소형기도 재머를 달 수 있다. GAO

F-22와 F-35와 같이 AESA 레이더가 달린 전투기는 자체적으로 적 방공망을 교란할 수 있으며, EA-18G는 더 강력한 재머로 적 방공망을 무력화한다. EC-130H는 적 통신망을 망가뜨린다. 디코이나 드론과 같은 소형기도 재머를 달 수 있다. GAO

무선통신과 레이더가 군사적으로 쓰이면서 전자전이 탄생했다. 걸프전 이후 첨단 스마트 무기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전자전도 주류가 됐다. 이들 무기는 센서와 GPS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론 때문에 최근 전자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자전의 중요성을 잘 알려준다. 양 측은 드론으로 정찰하고, 드론으로 공격한다. 그래서 상대 드론을 격추하는 데 양측 모두 혈안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매달 1만대가량의 드론을 잃는데, 대부분 러시아의 전자전 공격이 원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전쟁에선 전자기파를 지배하는 쪽이 이기게 된다. 그래서 전 세계의 군사 강국들은 전자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군사컬럼니스트 최현호씨는 “전자전은 적의 통신이나 레이더를 방해하는 것에서 더 발전해 우주ㆍ사이버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며 “주변 국가들 모두 상당히 뛰어난 전자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군도 전자전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자전은 육ㆍ해ㆍ공군 모두가 수행하고 있지만, 가장 많이 벌이지는 곳이 하늘이다. 김민석 에비에이션 위크 한국 특파원은 “전파는 직선으로 가기 때문에 전파 방해를 하든, 남의 전파를 감청하든 높은 곳에서 수행하는 것이 가장 넓은 영역을 커버할 수 있다. 그래서 공군의 전자전이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공자는 적의 레이더나 지대공 미사일 포대를 무력화하려는 전자전을 걸고, 방자로선 공자의 전자전에 맞서 전자전으로 맞서는 싸움이 제일 치열하다. 그래서 전투기에 전자전 시스템을 장착하거나, 작전 편대를 보호할 수 있는 전문 전자전기를 대동한다. 전투기 장착 전자전 시스템으론 공군이 운용하는 ALQ-165 ASPJ나 ALQ-200K 전자전 포드가 대표적이다.

F-22 랩터를 두 번이나 격추한 전투기

그러나 전자전 포드는 출력이 작아 한계가 많기 때문에 전투기 자체 방어용에 그친다. 그래서 군사 강국들은 전문 전자전기를 따로 보유하고 있다. 전문 전자전기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전투기를 기반으로 한 에스코트(Escort) 전자전기며, 또 다른 하나는 수송기나 비즈니스 제트기에 전자전 장비를 실은 스탠드오프(Stand-off) 전자전기다.

미국 해군의 에스코트 전자전기 EA-18G 그라울러. 미 해군

미국 해군의 에스코트 전자전기 EA-18G 그라울러. 미 해군

전투기 편대나 공격기 편대와 함께 적진으로 침투해 통신망 교란이나 방공망 무력화 등 임무를 맡는 게 에스코트 전자전기다. 미국 해군의 EA-18G 그라울러가 에스코트 전자전기에선 최강이다.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나오는 항공모함 탑재 전투기인 F/A-18F 슈퍼 호넷(복좌기)을 전자전 공격기로 개조한 게 EA-18G다. AN/APG-79 AESA 레이더, AN/ALQ-99F 재밍 포드, AN/ALQ-218 리시버는 적 레이더를 바로 먹통으로 만든다. AGM-88 HARM 미사일로 적 방공망을 부순다. EA-18G는 공중전 훈련에서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를 ‘가상격추’한 적이 있다.

미국을 군사적으로 맹렬하게 쫓아가려는 중국도 에스코트 전자전기를 갖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의 J-16D와 중국 해군의 항공모함용 J-15D다.

유럽의 방산회사인 에어버스는 2030년까지 독일의 유로파이터 15대를  에스코트 전자전기형인 유로파이터 EK로 개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로파이터 EK는 스웨덴제 아렉시스(Arexis) 통합 전자전 체계와 미국제 대(對) 레이더 유도미사일인 AGM-88E AARGM로 무장한다. AGM-88E AARGM은 요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레이더를 사냥할 때 잘 쓰고 있는 AGM-88 HARM을 개량한 공대지 미사일이다.

"한국도 전자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기체가 더 큰 스탠드오프 전자전기는 높은 고도에서 오랫동안 비행할 수 있어 더 먼 곳에서 더 넓은 영역에서 전자전을 벌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산악지형이 많은 한국에선 음영지역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스탠드오프 전자전기가 필요하다.

미국 공군의 스탠드오프 전자전기 EC-130H와 EA-37B. 최근 배치 중인 EA-37B는 EC-130H의 별명인 '컴패스 콜'을 물려받는다. L3Harris

미국 공군의 스탠드오프 전자전기 EC-130H와 EA-37B. 최근 배치 중인 EA-37B는 EC-130H의 별명인 '컴패스 콜'을 물려받는다. L3Harris

미 공군은 지난달 14일 스탠드오프 전자전기인 EC-37B의 제식명을 EA-37B로 바꿨다. E는 전자전, C는 수송기를, A는 공격기를 각각 뜻한다. 변경 이유에 대해 미 공군은 “지상, 해상의 적을 찾은 뒤 공격해 격파하는 임무를 잘 나타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G550 비즈니스 제트기 기반의 EC-37B는 EC-130H의 임무를 물려받는다. C-130 수송기를 개조한 EC-130H는 2016년 중동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ISIS의 드론을 재머로 격추한 적 있다. EC-130H의 별명은 컴패스 콜(Compass Call)인데, EC-37B가 그대로 물려받는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ㆍ중국ㆍ일본ㆍ프랑스 등 많은 나라가 스탠드오프 전자전기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스탠드오프 전자전기를 바라고 있다. 일각에선 국산 전투기인 KF-21에 전자전 포드와 대 레이더 유도미사일을 단 에스코트 전자전기 KF-21G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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