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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술 건너가 일본 도자기 빚듯…“타국 이해하는 마음이 애국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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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 도자기 명가 ‘심수관 가’의 제15대 심수관(본명 오사코 가즈테루)씨. [연합뉴스]

일본 도자기 명가 ‘심수관 가’의 제15대 심수관(본명 오사코 가즈테루)씨. [연합뉴스]

“내게 한국은 아버지의 나라,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입니다. 한·일 문화 교류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제가 아닌 우리 선조를 위해서요.”

조선 도공의 후예로 400년 넘게 일본에 뿌리내렸으나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고 가업을 이어가는 이가 있다. 일본 심수관(沈壽官)가의 제15대 심수관(본명 오사코 가즈테루·大迫一輝·64)씨다.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북 남원에서 일본 가고시마현으로 포로로 끌려간 조선 도공 심당길(沈當吉)의 15대손이다. 심당길의 후손들은 425년 동안 한국 성을 고집하며 대대손손 가업으로 조선 도자기의 맥을 잇고 있다. 이들이 만든 일본식 도자기 ‘사쓰마야키’는 1873년 12대 심수관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가업을 빛낸 12대 심수관 이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은 전대의 이름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고 본명 대신 ‘심수관’이란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14대 심수관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리’를 발표하면서 유명해졌다.

1999년 가문의 공식 후계자가 된 15대 심수관은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며 한·일 문화교류에 적극적이다. 선조의 고향인 남원의 명예시민, 본관인 경북 청송의 명예 군민으로 활동했으며, 아버지 14대 심수관의 뒤를 이어 2021년 일본 주 가고시마 명예 총영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2025년을 앞두고 최근 한국을 찾은 15대 심수관은 3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60년은 사람으로 따지면 환갑에 해당한다”며 “어느 하나가 끝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여서 내 선에서 가능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어떤 형태를 가졌더라도 일본으로 건너가면 다른 모양이 되는 게 한·일 문화 교류의 재미있는 점”이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 새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굉장히 즐겁다. (양국 국민 모두)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겪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가 올 3월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도자기. [뉴시스]

그가 올 3월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선물한 도자기. [뉴시스]

인터뷰 내내 강직해 보였지만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 ‘경계인’의 삶을 살며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리 가문은 400년 넘게 일본에서 살았지만, 어릴 때 조선인이라고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성장해서 한국으로 유학을 준비할 때는 대학교수로부터 ‘일본의 때를 벗고 한국의 혼을 집어넣으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때 깊이 고민한 게 ‘민족이란 무엇인가’였다. “한국인이라는 종족, 일본인이라는 종족은 없다. 민족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미이지, 종족이 아니”라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타국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진정한 애국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타국을 모른 채 자신의 나라만 사랑한다고 하면 (식견이 좁은) 시골뜨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굴곡 많은 한·일 관계에 관해 묻자 “정치가 문화에 개입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며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일본 가지 마라’ ‘한국 가지 마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양국의 문화 교류가 정치적인 이유로 어려웠던 최근 몇 년간 같은 시기가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를 초청한 것도 민간의 문화 교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일 문화 교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특별전 등 다양한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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