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가 개선되면서 다양한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탈북자 북송 문제를 시진핑 주석과 대화로 풀어낸 비화도 있다.
2014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기 직전인 10월 31일, 중국에서 라오스로 국경을 넘으려던 탈북자 11명이 중국 원난성 쿤밍에서 붙잡혔다. 체포된 탈북자 중에는 7살 아동도 있었는데 이대로는 북송 당할 위기였다. 어린아이까지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진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문제는 시 주석과 이번 기회에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1월 10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나는 시 주석에게 “잠깐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한다”고 알렸다. 그 후 중국 측에서 마련해 준 별도의 방에서 시 주석에게 탈북자 이야기를 꺼냈다.
“탈북자 11명이 지금 중국에 억류돼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가족이고, 심지어 7살 난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이들이 이대로 북송되면 대체 어떤 일을 당하겠습니까.”
탈북자 문제는 북한과의 관계도 걸려 있는 예민한 사안이었지만 시 주석은 진지하게 나의 말을 들은 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회담 이후 중국 정부는 탈북자 전원을 석방해 한국으로 인도했다. 그간 탈북자 북송 문제로 마음 한편이 늘 편치 않았는데 석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안도했다.
핵실험 움직임 속 北-中 균열…전승절 참석 결심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민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내가 2015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일일 것이다. 당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기 때문에 세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한국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승절 기념행사를 앞두고 중국 측은 몇 달 전부터 “박 대통령이 꼭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고 수차례 요청했다. 나는 신중히 고심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특별했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경제 및 북핵 문제에서 협력을 이어 나갈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중국과 북한의 사이가 점차 멀어지면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북한이 4차 핵실험 움직임을 보이고, 한국을 상대로 잇따른 포격 도발 등을 벌이며 긴장 사태를 조성하자 중국 내부에서도 “북한 같은 불량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또한 당시 G20이나 APEC 같은 국제 행사의 주요 일원이었던 중국 입장에서는 국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북한의 도발이 달가울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