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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청년 비하 이어 청년 취업길마저 막아서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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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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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장 벽면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윤석열 정권이 삭감한 민생 예산 원상 복구!’ 민생 예산이라는 항목에 ‘청년 일자리 예산’을 포함해 새겨놨다. 한데 내년도 정부 예산을 다루는 민주당의 태도는 구호와 영 딴판이다.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는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청년의 취업 도우미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모조리 들어낸 청년 일자리 예산의 면면을 보면 기가 막힌다. 청년일경험지원사업(1663억원), 청년도전지원사업(425억원), 청년성장프로젝트(281억원), 청년친화강소기업선정사업(6억9000만원) 등이어서다. 하나같이 일터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청년에게 길을 터주기 위한 사업이다. 청년의 74%가 “제발 직무를 경험하고 익힐 기회를 달라”(중소기업중앙회 조사)고 호소하고 있다. 경력직 위주로 채용이 이뤄지다 보니 직무 경험이 없는 청년은 취업 문을 두드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게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중고 신입’이라는 신조어가 나왔겠는가. (중앙일보 10월 26일자 23면)

“일 경험 쌓게 해달라” 호소에도
야당, 청년취업예산 전액 삭감
NEET족 탈출 지원 예산도 없애
“고달픈 청년 현실 정치가 외면”

청년이 원한 정책, 민주당 폐기 압박

16일 민주당이 청년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국민의힘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16일 민주당이 청년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하자 국민의힘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이런 청년의 바람을 정책으로 담아낸 것이 ‘청년일경험지원사업’이다. 청년들의 일 경험 수요는 연간 14만2000명에 달한다. 정부 예산은 이 수요의 3분의 1 정도를 지원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무리한 예산 책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이걸 뿌리째 뽑으면서 ‘희망 고문’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청년의 호소를 정반대로 해석한 엉뚱한 프레임이다.

실제로 올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11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고, 1만6000명의 청년이 혜택을 보고 있다. 중간 모니터링 결과 청년 대부분이 만족했다. 기업 이해도가 높아지고, 직무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다. 기업 역시 우수한 미래 인재를 탐색할 유익한 기회로 삼고 있다.

청년도전지원사업과 청년성장프로젝트는 니트(NEET, 일할 의지도 없고, 교육·훈련 등에도 참여하지 않는 구직 단념자)족을 경제활동 현장으로 탈출시키려는 사업이다. 고용통계에 따르면 ‘그냥 쉬었음’ 청년이 4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정부나 기업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선제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노동시장 이탈에 따른 이력 현상(파괴된 뒤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현상)과 고립·은둔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선진국 노조보다 못해” 비판 나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2일 최고위원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뒤에 청년 일자리 등 ‘민생 예산 복구’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2일 최고위원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뒤에 청년 일자리 등 ‘민생 예산 복구’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심지어 청년도전지원사업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도입돼 3년 차에 이른 정책이다. 그동안 6800여 명의 청년이 참여해 구직활동으로 발걸음 방향을 돌렸다. 겨우 기지개를 켜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이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청년성장프로젝트를 접목해서 정부 예산안이 편성됐다. 자신들이 집권할 때 기획한 정책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확산하려는데, 이것조차 민주당은 폐기토록 압박하는 꼴이다.

일본노총(렌고)은 2001년부터 NEET족을 위한 ‘일자리 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경영계와 정부가 동참해 국가 정책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이런 정책을 북돋우지는 못할망정 없애려 드니 “거대 정당이 선진국 노조보다 못하다”는 비판(경제단체 관계자)이 나오는 것이다.

맞춤형 고용서비스는 선진국에선 보편화했다. 한국에선 청년 고용정책의 방점을 인건비 지원과 같은 퍼주기에 찍은 탓에 맞춤형 고용 서비스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돈 뿌리기에 길들면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길을 여는 정책은 뒷전이었던 셈이다.

청년을 비하하는 총선용 플래카드를 내걸더니 이젠 청년의 취업 문까지 막으려 드는 행동을 민주당은 왜 하는 것일까. 여당은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사회적 경제법’ ‘청년내일채움공제 예산 증액’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청년 일자리 예산 전액 삭감으로 몽니를 부린다는 것이다.

문 정부조차 축소한 사업, 증액 고집

민주당이 요구한 사회적 기업 육성은 비리가 확산해 재편이 불가피한 정책으로 분류된 사업이다. 정부 조사 결과 2018~2022년 5년 동안 94개 사회적 기업이 부정하게 수령한 정부 지원금이 22억4500만원에 달했다. 근로자를 허위로 등록해 인건비를 받고, 당초 목적과 다르게 지원금을 유용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 사회적 기업 지원금은 ‘눈먼 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영 논리보다 정부 지원금에 기대 운영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노인 돌봄과 같은 복지나 각종 지역 사업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일을 수행할 사회적 기업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쪽으로 수정이 불가피하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제조·건설업종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1200만원의 목돈을 쥘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청년이 2년 동안 400만원을 적립하면 정부와 기업이 각각 400만원씩 보태서 마련해주는 방식이다. 한데 인구구조와 이직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해당 요건에 맞는 청년이 갈수록 줄었다. 이 때문에 문 정부 때인 2021년부터 지원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해왔다. 그런데 민주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공제 예산을 증액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요구대로 안 되자 취준생을 지원할 예산을 백지화하는 떼를 썼다.

정치권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채용 시장의 변방에서 좌절하는 청년이 많다. 이들의 고달픈 현실을 정치에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파하는 청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