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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동의 최초의 질문

노벨상 수상 연구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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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10여년 전쯤 한 기업의 임원진과 기술 챔피언 기업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흥미진진한 논의를 해가면서 그 기업의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 것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새로운 최고경영자가 부임하고 나서였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이 최우선 목표가 되면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이 기술개발과 관련된 조직이었다. 비용만 들어가고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쉬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고, 비용은 실제로 절감되었다.

임원진과 진행하던 논의도 당연히 중단되었다. 경기가 좋아지고 새롭게 등장한 최고경영자는 다시금 기술중심 기업을 선언하고 연구개발투자를 쏟아붓겠다고 나섰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저렇게 해서는 기업의 기술역량이 축적될 리가 없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과학기술 핵심은 투자 연속성
위기서 버틴 기업들의 공통점
내년 연구개발 예산 축소 우려
국가 혁신생태계 무너질 수도

투자 총량보다 투자 지속성이 중요

이종호 과학기술정 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 세대 위한 R&D 예산 관련 연구현장 소통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종호 과학기술정 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 세대 위한 R&D 예산 관련 연구현장 소통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직감은 좋은 연구문제의 씨앗이 된다. 곧바로 해당 분야 전 세계의 천 개가 넘는 기업에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의 수년간 성과 데이터를 모았다. 질문은 단순했다. 위기 이후에 다시 살아나는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위기 이전에 기술개발에 많이 투자하던 기업이 위기 이후에도 잘 살아나는 것 아닐까였다.

그러나 통계 분석의 결과는 기대와 딴판으로, 기술개발 투자 총량과 위기 탈출 여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숨은 비밀은 기술개발 투자의 총량이 아니라 투자의 지속성에 있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한 해 기분 내서 왕창 투자했다가 다음 해에는 전혀 투자하지 않는 퐁당퐁당식 기업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하게 투자한 기업이 결과적으로 기술 역량도 더 높았고, 위기 이후에도 더 잘 살아났다. 기계는 샀다가 팔았다가 하면 생산량이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지만, 사람과 조직의 기억으로 체화하는 기술 역량의 축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사실은 매일 30분이라도 꾸준하게 피아노를 연습하는 아이와 기분 좋은 날 몇 시간 연습하다가 기분 나지 않은 날 쳐다보지도 않는 두 아이의 실력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새로운 기술은 단번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시행착오를 쌓으면서 축적되어 나간다. 연구원들이 장비를 사고, 시행착오를 축적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던 중에 갑자기 절반을 내보내면, 절반 줄어든 든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 흐름 자체가 와해하거나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다시 연구원을 고용하라고 갑작스럽게 투자를 늘려도 문제다. 원래의 축적되었던 수준만큼 회복하는 데만 한 세월이 걸린다. 결론적으로 기술개발에서는 투자의 변동성이 커지게 되면, 기술은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에 쌓아온 축적기반마저 소실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멀리 둘러볼 것도 없이 내년도 국가연구개발 예산이 갑작스럽게 대폭 삭감된 경우를 보면 된다. 이 급격한 변화는 연구개발 투자의 변동성을 높여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린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수년간 한국 혁신생태계의 축적 기반을 취약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2015년 노벨생리학상 받은 중국인

그 가운데 장기적인 기초연구와 이를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 것은 더 아픈 부분이다. 평생 개똥쑥 연구를 한 끝에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중국의 투유유(屠呦呦)는 박사학위도, 해외유학 경험도 없었다. 게다가 과학원이나 공정원 원사도 아닌 ‘3무(無)’ 연구자였다. 하지만, 이래저래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mRNA 연구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 교수도 희망 없는 연구를 한다는 비판에 교수직에서 쫓겨났지만, 그나마 연구원 자리를 유지하면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고, 그 결과 인류를 구원한 코로나19 백신 기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기초연구에 몸담은 이들이 도전적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축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한 국가적 투자가 없었다면 노벨상을 꿈꿀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지금 국가적으로 전략기술에 대한 전략이 화두이지만, 선진국 수준에 이른 한국이 소망하는 전략기술은 장기적인 기초연구의 기반이 없이는 달성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장기적 안목의 기초연구,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사람, 특히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 없이는 국가전략기술도 토대 없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단기적 상대평가의 위험성

또 한 가지 치명적인 부분은 상대평가로 성과없는 과제를 주기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정책 방향이다. 머신러닝의 창시자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얀 레쿤·요슈아 벤지오는 2004년 캐나다고등연구원(CIFAR)으로부터 향후 10년간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인공지능의 겨울이었고, 누가 보더라도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예상한 대로 몇 년간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2012년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에서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압도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인공지능의 새로운 봄을 열었다.

반면 한국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온 과거 관행처럼, 인공지능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전략을 만드느라 지금도 바쁘다. 그간 정부 연구개발 투자와 관련해서 지나친 과제 세분화나, 전략성 미비, 부정 사용과 윤리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됐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혁신과 과학기술계 내부의 자정 노력은 더 치열하고 뼈아프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투자 총량의 급격한 변동, 기초기술과 사람에 대한 투자 축소, 상대평가의 도입은 다른 문제다. 이들이 한국의 혁신 생태계의 축적을 무너뜨리고 다시 추격 시대로 퇴행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