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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장비 이상” 사흘 만에 밝혀진 원인…무색해진 ‘디지털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초유의 정부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가 일어나게 된 원인은 공무원 인증시스템(GPKI) 일부 네트워크 장비 이상에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전 세계 디지털정부를 선도한다’고 보도자료까지 낸 행정안전부는 사고 난 지 53시간이 돼서야 원인을 발표했다. 원인파악이 늦어지면서 복구도 더뎠다. 일상·생업과 연결된 민원서류 발급이 중단되면서 애꿎은 시민들만 큰 불편과 혼란을 겪었다. 정부의 관리‧대처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장인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정상화 관련 브리핑에 앞서 사과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대책본부장인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정상화 관련 브리핑에 앞서 사과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초유의 행정망 ‘먹통’ 원인은

19일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오전 8시40분쯤 전국 지방자치단체(지자체) 공무원이 사용하는 행정전산망 ‘새올’이 일제히 마비됐다. 공무원이 새올을 쓰려면 정부인증서(GPKI) 시스템에 접속해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장애가 발생한 것이다. 공무원은 주민등록증 발급 등 민감한 정보를 다룬다. GPKI 인증은 이 업무처리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관문’인 셈이다. 온라인 민원업무 처리 플랫폼인 ‘정부24’도 같이 먹통이 됐다. 새올과 정부24 운영 서버와 장비는 행안부 산하 기관인 대전 소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두고 있다.

19일 대전에 위치한 행정안전부 산하 정부 통합 데이터센터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비상이 걸려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9일 대전에 위치한 행정안전부 산하 정부 통합 데이터센터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비상이 걸려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는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등을 정보관리원에 투입, 복구 과정에서 ‘네트워크 장비 이상’을 파악했다. 구체적으로 GPKI 시스템과 연결된 ‘L4 스위치’에 이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IT업계‧학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제가 발생한 L4 스위치는 행정전산망 시스템 내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을 여러 서버로 분산 배분해준다. 쉽게 말해 시스템에 있는 여러 장소(서버)로 정보들이 올바른 목적지에 갈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이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이 장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시스템과 연관된 여러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이 사용하는 정부24의 경우도 GPKI 인증시스템과 연결된 주민등록증 발급 등 기능이 되지 않았다. 업계‧학계는 ‘L4 스위치’ 오류가 앞서 지난 16일 정보관리원이 행정전산망 관련 서버의 보안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측한다. 행안부는 현재까지 ‘해킹’ 징후는 없다고 봤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상황실에 설치된 무인민원 발급 기기가 정상 작동하고 있다.  전날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 '세올'에서 발생한 전산 오류로 지자체 업무와 함께 행정복지센터 민원 업무 처리도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이날 오전 9시부로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 '정부24'가 복구돼 서비스를 재개했으며, 구청 등에 설치된 무인민원 발급 기기도 정상 작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뉴스1

지난 18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상황실에 설치된 무인민원 발급 기기가 정상 작동하고 있다. 전날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전산망 '세올'에서 발생한 전산 오류로 지자체 업무와 함께 행정복지센터 민원 업무 처리도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이날 오전 9시부로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 '정부24'가 복구돼 서비스를 재개했으며, 구청 등에 설치된 무인민원 발급 기기도 정상 작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뉴스1

②디지털정부, 왜 복구 늦었나

행안부는 행정전산망에 장애가 있음을 인지한 17일 오전부터 원인 규명 및 복구를 시도했다. 이날 정오쯤 한 차례 새올 시스템이 복구됐으나 오후 1시 이후 다시 장애가 이어졌다. 이후 오후 6시 일과 시간이 끝날 때까지 업무 정상화는 실패했다. IT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출발점’에 닿는 것조차 상당히 늦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스템 복구는 다음 날(18일) 새벽 네트워크 장비 교체를 시작으로 정부24 서비스 임시 재개로 이어졌다. 행안부는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비상용 ‘L4 스위치’ 장비를 두고 있는데, 행정망 장애 첫날인 17일 본장비와 비상용 장비 두 개 모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해당 장비가 어떤 이유로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여전히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후 새 ‘L4 스위치’로 교체한 이후 행정망이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복구가 더뎌진 이유와 관련해 행안부는 ‘검증을 거듭하느라 시간이 소요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은 “네트워크 장비가 연결된 시스템에 (장비) 교체에 따른 문제가 새로 발생하지 않는지, 다수의 사용자가 사용할 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지 등을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 관련 복구 상황 등을 점검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3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정부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 관련 복구 상황 등을 점검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초유의 먹통 사태...대처도 미숙

일련의 과정에서 행안부의 대처가 미숙했단 비판도 있다. 사태 당일 행안부는 재난문자 발송 등을 통해 국민에게 시스템 장애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15일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로 ‘카카오톡’ 등 카카오가 운영하는 서비스 전반이 먹통이 됐을 때 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3차례 재난문자를 발송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전입신고나 관공서 업무 등을 보려던 시민 여럿이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복구가 늦어지면서 나온 대처 방안은 손으로 직접 써서 민원을 접수하는 ‘수기’(手記)였다. 나중에 복구 이후 해당 민원업무 처리를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수기 방식’이란 대응 방식 자체에 의아해하는 반응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찾아 지방행정전산서비스인 새올지방행정정보시스템, 주민등록시스템, 행복이음 등에 대한 정상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뉴스1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를 찾아 지방행정전산서비스인 새올지방행정정보시스템, 주민등록시스템, 행복이음 등에 대한 정상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뉴스1

④‘사용량↑’ 평일에도 괜찮을까

관건은 평일인 오는 20일이다. 행안부는 ‘완전히 복구됐다’고 했지만, 주말보다 사용량이 많이 늘어나는 평일에도 해당 시스템이 문제없이 가동하는지가 핵심 과제다. 행안부는 상황실을 운영하고, 이상이 있다면 즉각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그간 정부가 내세운 ‘디지털 정부’ 위상이 실추된 건 피할 수 없게 됐단 평가가 나온다. 행정서비스의 기본이 되는 ‘민원’과 관련해 발생한 기술적 문제를 적시에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IT업체 대표 A씨는 “먹통 사태가 지난주 금요일에 발생해 주말에라도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만약 월요일에 사태가 발생했다면 민원이 폭주해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디지털 정부와 공공행정을 선도한다’며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가, 예정보다 하루 빠른 18일에 급거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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