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창극, 분장은 경극…‘패왕별희’ 대극장서 더 웅장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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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는 창극에 경극의 요소(의상·분장·안무)를 녹였다.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사진 국립극장]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는 창극에 경극의 요소(의상·분장·안무)를 녹였다.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았다. [사진 국립극장]

“산을 뽑을 힘이 무슨 소용인가, 사랑하는 이 한 명도 지키지 못하거늘….” 숨이 꺼져 가는 우희를 끌어안은 항우가 울부짖는다. ‘전쟁의 신’ 항우도 전세가 기울었음을 직감한 우희의 자결은 막지 못했다. 경극 ‘패왕별희’의 제목은 바로 이 장면에서 나왔다. 패왕(항우)이 우희와 이별한다는 뜻이다.

경극과 창극의 만남으로 초연부터 호평받았던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가 돌아왔다. 2019년 4월 초연, 같은 해 11월 재연 이후 4년 만이다. 50년 경력의 경극 배우이자 대만 당대전기극장 대표인 우싱궈가 연출을, 소리꾼 이자람이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아, 춘추전국시대 초-한 전쟁 및 초패왕 항우와 연인 우희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렸다. 의상·분장·안무 등은 경극의 매력을 살렸고 소리·대사·음악 등은 창극의 문법을 썼다.

총 7장인 공연에서 하이라이트는 단연 6장 ‘패왕별희’다. 항우(정보권)는 전세가 기울자 한탄하며 우희(김준수)와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고, 우희는 항우의 검을 뽑아 자결한다. “화살 만 개가 꽂힌 것 같다”며 울부짖는 항우 목소리를 들고 있자니, 슬픔을 표현하는 데 창(唱)보다 효과적인 방식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희의 쌍검무 장면에서는 관객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준수는 초연 당시 섬세한 손짓 연기와 고난도 검무로 “중국의 전설적인 경극 배우 메이란팡을 떠올리게 한다”(우싱궈)는 찬사를 받았다. 경극 전통에 따라 남자 배우가 우희 역을 맡았다. 정보권도 호방한 항우를 안정적으로 연기했다. 세상을 호령하는 우렁찬 소리와 언뜻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경극 특유의 손짓 몸짓을 자연스럽게 섞었다. 전쟁의 허무함을 노래하는 맹인 노파(김금미), 유방의 책사 장량(유태평양) 등 조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대극장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큰 무대 덕분에 극도 한층 웅장해졌다. 초·한 양국 병사들의 화려한 깃발 군무와 전투 장면을 보강했고, 비파와 철현금 대신 생황과 태평소·대아쟁 등을 편성했다. 타악기 구성에도 변화를 줘 완성도를 높였다.

공연 첫날인 11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자람 음악감독은 “평소에는 작창할 때 빈틈없이 채워서 하는 편인데, ‘패왕별희’는 경극 특유의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노래와 노래 사이를 조금씩 띄웠다”며 “귀로는 창극의 매력을, 눈으로는 경극의 매력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퓨전 느낌을 빼고 정통 판소리로만 승부를 본 장면도 있다. 이 감독은 “2장 홍문연 잔치는 판소리 위주로 연출했다”며 “판소리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느낌을 보여드리고 싶어 일부러 악기도 힘을 뺐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무대 의상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의상디자인을 맡은 예진텐은 영화 ‘와호장룡’으로 제73회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디자이너다. 중국 특유의 화려한 색감에 한복의 고운 선이 녹아든 독특한 의상을 선보였다. 극본을 쓴 린슈웨이는 경극 ‘패왕별희’ 대본 위에 장수 한신 이야기 등을 추가해 역사를 잘 몰라도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쉽게 각색했다. 18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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