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 등줄기 넘어 단풍숲…산꾼들만 아는 비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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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진우석의 Wild Korea ⑧ 영남알프스

가을철 영남알프스를 찾는 등산객 대부분은 사자평, 간월재 같은 억새 군락지로 향한다. 그러나 의외로 멋진 단풍 코스도 많다. 밀양시 백운산이 대표적이다. 백운산(891m)은 높지 않지만 영남알프스를 조망하기 좋고, 인적 뜸한 계곡은 단풍도 아름답다.

가을철 영남알프스를 찾는 등산객 대부분은 사자평, 간월재 같은 억새 군락지로 향한다. 그러나 의외로 멋진 단풍 코스도 많다. 밀양시 백운산이 대표적이다. 백운산(891m)은 높지 않지만 영남알프스를 조망하기 좋고, 인적 뜸한 계곡은 단풍도 아름답다.

영남알프스는 경상도의 힘이다. 경북 청도군·경주시, 경남 밀양·양산시와 울산시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군을 영남알프스라고 부른다. 가을철 영남알프스 트레킹은 신불평전, 사자평, 간월재 등 억새 코스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억새 말고도 11월 중순까지 단풍을 즐기기 좋은 계곡이 많고, 조망이 멋진 암봉도 있다. 영남알프스의 전망대라 일컫는 백운산(891m)과 쇠점골을 연결해 코스를 짰다. 백호바위, 구룡소폭포, 호박소(시례호박소), 오천평반석 등 절경을 두루 엮은 제법 멋진 코스다. 등산 초보도 암릉 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가지산 남서쪽, 봉곳 솟은 전망대

백운산 쇠점골의 오천평반석. 수백명이 앉을 만한 너른 바위에 단풍이 쫙 깔렸다.

백운산 쇠점골의 오천평반석. 수백명이 앉을 만한 너른 바위에 단풍이 쫙 깔렸다.

백운산은 가지산(1240m) 남서쪽에 봉곳 솟은 영남알프스의 명산이다. 거대한 화강암 ‘백호바위’가 흰 구름 같다 해서 백운산(白雲山)이다. 트레킹은 호박소유원지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바로 백연사 가는 숲길에 들어선다. 단풍과 편백이 어우러져 분위기가 호젓하다. 백연사를 지나 호박소 쪽으로 빠지면 안 된다. 백운산 등산로는 백연사 직전, 왼쪽 대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내판이 없기에 주의해야 한다.

대숲을 통과해 조금 오르면 느닷없이 도로가 나타난다. 가지산 허리에 걸린 ‘산내로’다. 길 건너편으로 초록색 리본이 매달린 걸 볼 수 있다. 다시 등산로를 만난다. 제법 가파른 돌길을 20분쯤 오르면 바위에 수석처럼 자란 소나무가 나타난다. 소나무 앞에서 조망이 열린다. 건너편 천황산 방향으로 케이블카와 얼음골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백호바위에서도 사진 명소로 통하는 백호꼬리.

백호바위에서도 사진 명소로 통하는 백호꼬리.

이제 백운산의 명물인 백호바위 지대로 들어선다. 백호바위는 거대한 바위 전체를 일컫는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20분쯤 걸린다. 날카롭게 허공으로 튀어나온 바위를 ‘백호 꼬리’라고 한다. 기념사진을 찍을 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로프를 잡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 제법 큰 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탕탕 철계단을 밟고 오르자 탄성이 터지면서 가지산의 드넓은 품이 펼쳐진다.

영남알프스를 20년 넘게 다녔다는 산악회 대장 출신 부산 산꾼을 만났다. “지가 영남알프스 구석구석 다녔다 아입니꺼. 주암골과 쇠점골이 좋은데예. 그래도 전 백운산이 젤 좋다 아입니꺼. 매년 이맘때면 여길 꼭 오지예.” 그 말을 들으니 흐뭇했다.

이제 백호의 등줄기를 밟고 간다. 잠시 숲길이 이어지다가 백운산 꼭대기에 닿는다. 큰 정상석이 있고, 앞쪽으로 운문산에서 가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가지산까지는 걸어서 2시간. 멀찍이서 바라보는 맛도 괜찮다. 반대편으로는 능동산~천황산 능선 너머로 영남알프스의 명봉들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정상 일대가 둥그렇게 보이는 영축산, 그 옆 뾰족한 봉우리는 신불산이다. 천황산 옆으로 재약산이 아스라하다.

붉게 빛나는 너른 바위

하산할 때 주의해야 할 삼거리. 국립등산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좋다.

하산할 때 주의해야 할 삼거리. 국립등산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는 게 좋다.

정상 조망을 실컷 즐겼으면 하산이다. 길은 가지산 방향을 따른다. 15분쯤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지도에 표시된 길인데 ‘위험 등산로 폐쇄’ 안내판이 붙어있다. 길이 있긴 하지만, 매우 험하니 가지 않는 게 좋다. 삼거리에서 ‘국립등산학교’ 푯말을 따른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여기가 백운산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다. 단풍나무가 많아 길이 온통 붉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발이 푹푹 빠진다. 서걱서걱,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런 길이 구룡소폭포까지 이어진다.

구룡소폭포는 까마득한 벼랑을 거느린 장대한 폭포인데 지금은 수량이 적다. 폭포 상단 반질반질한 바위에 앉아 한숨 돌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낙엽은 비처럼 떨어진다. 폭포를 내려오면 공사 중인 등산학교를 만난다. 강원도 속초에 이어 두 번째로 생기는 국립등산학교가 내년에 문을 연다.

얼음골의 절경인 호박소. 밀양의 영험한 기우처였다.

얼음골의 절경인 호박소. 밀양의 영험한 기우처였다.

국립등산학교 앞에서 다시 도로를 만났다. 올라가면서 만났던 산내로다. 도로를 100m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계곡 내려가는 길이 있다. 계곡으로 들어서자 호젓한 오솔길이 나온다. 물소리 들리는 낙엽 가득한 길이 운치 있다. 15분쯤 내려오면 밀양의 자랑인 호박소를 만난다. 물줄기가 돌에 떨어져 약 30m 깊이로 움푹 파인 곳이다. 호박은 방앗간에서 쓰던 절구(臼)의 경상도 사투리다. 호박소는 예부터 밀양의 영험한 기우처였다.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은 이무기가 사는데, 가뭄 때 범의 머리를 넣으면 물이 뿜어져 나와 비로 내린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붉게 물든 단풍잎.

붉게 물든 단풍잎.

호박소를 내려오면 출발점인 호박소유원지주차장이 지척이다. 하지만 쇠점골 단풍 구경을 놓칠 수 없다. 빨간 다리를 건너면 쇠점골이다. 쇠점골은 석남터널 근처까지 약 4㎞쯤 이어진 계곡이다. 찾는 사람이 의외로 적어 호젓하게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 20분쯤 가면 오천평반석이 나온다.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너른 반석이 단풍으로 붉게 빛난다. 등산화를 벗고 흐르는 물을 맨발로 밟으며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여행정보=경남 밀양 백운산과 쇠점골 코스는 호박소유원지 주차장~백호바위~국립등산학교(공사중)~구룡소폭포~호박소~쇠점골(오천평반석)~호박소유원지 주차장, 원점회귀로 거리는 약 8㎞, 4시간쯤 걸린다. 호박소유원지 주차장 이용은 무료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밀양 버스터미널에서 얼음골 가는 버스(하루 6회 운행)를 탄다.

진우석

진우석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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