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총리회담을 지켜보고/이상우 서강대교수·정치학(논단)

중앙일보

입력 1990.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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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랑」은 「미움」을 이겨낸다/서둘지 말고 인내로 설득 필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상대와 더불어 합의해야 이룰 수 있는 일에 있어서는 나 혼자 애태우고 서둘러야 일이 성취되지 않는다. 남녀가 뜻이 맞아야 혼인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쪽이 억지를 부린다고 원만한 혼인이 이루어 지겠는가.
제3차 남북한 총리회담은 「합의」를 이루지 못한채 끝났다. 남측이 제시한 「남북관계개선 기본합의서」와 북측이 제시한 「북남불가침과 화해협력에 관한 선언안」은 모두 구구절절이 옳은 내용들인데도 왜 서로 받아주지 못하는가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각각의 안이 담고 있는 뜻은 너무나 거리가 멀어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통일을 왜 원하는가. 우리 민족성원이 겪고 있는 분단의 고통을 해소해 주고 북에 사는 동포에게도 자기발전의 기회를 마련해 주자는 동포애에서 우리는 통일을 염원한다. 통일은 우리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 서독이 동독을 통합해 겪는 부담과 고통 이상을 우리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통일을 추구한다. 민족성원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한국이 내놓은 제안은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기본협정),교류를 높여 급한 고통을 해소하고 양측 사이의 체제상응성을 높여 순리대로 정부통합의 길로 가자는 우리 뜻을 담은 것이다.
북측에서는 남측의 「피압박대중」을 해방시키는데 통일의 목적을 두고 있다. 남측의 지배계층에 대한 미움이 통일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우선 정치통일로 남측을 묶어놓고 미운자를 「국내정치」를 통해 제거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이 정치통일 우선의 북한측 제의가 담고 있는 뜻이다. 이번 회의에서의 성과라면 양측이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남북한 관계를 동서독관계에 굳이 비견하자면 우리의 1990년은 독일의 1970년에 해당된다. 독일은 1970년에 총리회담을 가졌고 1972년 5월에 「교통조약」,그해 12월에 「기본조약」을 체결한 후 다음해인 1973년에 동서독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앞으로 두해안에 「남북한 관계개선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다시 두해 지나서 서울과 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할 수 있다면 대체로 우리는 독일을 20년 뒤에서 쫓아가는 셈이다.
서독의 통일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인내와 고통,자기희생을 감수하고 동서독간의 체제상응성을 높이기 위해 뼈를 깍는 노력을 했다. 서독은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철저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고 소외계층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해 동독 사회주의체제를 선호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스스로의 체제를 가다듬었다. 그 결과로 오늘의 통독을 성취했다. 우리는 아직 이런 노력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우리는 진정한 통일 노력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내부의 계층갈등도 해소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남북사회를 하나로 하겠다는 것인가.
동독의 노력도 무시할 수 없다. 동독은 서독과의 「민족적 인식」을 동질화하기 위해 서독방송을 들을 수 있도록 사회를 열어 놓았으며 심지어는 서독 연방헌법 제23조에 의한 손쉬운 통일을 위해 스스로의 지방자치단위를 분단 이전의 5개 지분방으로 도로 고쳐 놓았다.
남북통일이 가능해지려면 우리의 노력과 북한의 현실감각 회복의 두가지가 어느정도 성숙되어야 한다. 이번 회담에서는 아직 그 수준의 성숙성을 양측 모두가 갖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할 통일노력이 무엇인가를 잘 밝혀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비가시적인 수확이다.
북한의 자세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기대할 수 있다. 세계적인 개방추세도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 내부의 어려움이다. 경제가 어렵다. 1970년 이래 나빠져온 주민의 살림살이 수준은 이제 중국보다 못하고 몽골보다 못할 정도로 악화되어 있다. 북한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지원을 구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자기체제의 생존을 위해서도 최소한 남쪽과 「잠정적 공존」을 수락할 가능성이 있다. 열세를 만회한 후 재차 남반부 해방을 시도하기 위해서도 우선은 남쪽과 평화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북한 당국을 곤혹스럽게 몰아 붙여서는 안된다. 북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미 처형해서 만날 수 없게된 이산가족을 모두 만나게 해달라고 윽박질러도 안되고 비참해 보여줄 수 없는 평양 이외의 지역에 고향방문을 하게 해달라고 압박하지도 말아야 한다. 북은 부분적 대외개방으로 우선 경제위기를 모면하면서 정치체제를 더욱 강화해 남쪽에 대한 승세를 마련하려고 한다. 북의 사정을 보아가며 협력과 교류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북의 간교한 남한 내부 교란책동을 모두 묵인해 주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대북한 자세를 선명히,떳떳하게 밝혀두고 무엇이 허용되는지,무엇이 허용될 수 없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북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1970년 이후에만 해도 우리는 북한과 1백56차례 회담을 가졌었다. 회담의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계속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의 자세와 뜻을 당당히 펼쳐보인,그러면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강영훈 총리 이하 우리측 대표단의 믿음직스러운 행동에 찬사를 보낸다.
「사랑」에 바탕을 둔 통일은 「미움」에 바탕을 둔 통일을 이겨내고야 말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북한을 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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