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한해 248억개…"하루 만에 지옥 됐다" 친환경 업자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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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시내 한 식당 테이블에 종이컵이 높이 쌓아올려져 있다. 뉴스1

7일 서울 시내 한 식당 테이블에 종이컵이 높이 쌓아올려져 있다. 뉴스1

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 테이블마다 셀프 주문 기기와 함께 10여 개의 1회용 종이컵이 쌓여 있었다. 손님들은 직원이 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문을 하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최근 문을 연 이 식당의 주인 A씨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홀에서 일하는 사람을 최대한 적게 쓰려다 보니 1회용 종이컵을 쓰고 있다”며 “앞으로도 종이컵 규제를 하지 않는다고 하니 계속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248억 개. 1년 동안 국내에서 사용하는 종이컵 개수다. 당초 24일부터 식당이나 커피전문점에서 사용을 금지해 이 수치가 줄어들 예정이었지만, 시행 보름을 앞두고 없던 일이 됐다. 환경부는 7일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1회용품 규제 대상에서 종이컵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2019년부터 추진된 종이컵 규제는 4년 만에 시행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무산됐다.

종이컵, 플라스틱컵보다 5배 더 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한국은 1회용 종이컵 사용량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크기에 따라 자판기부터 식당, 커피전문점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환경부의 ‘폐기물 직매립 제로화를 위한 1회용품 사용억제 로드맵 마련’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종이컵 사용량(2018년 기준)은 인스턴트 커피나 물을 따라 마실 때 주로 쓰는 작은 크기의 저평량 종이컵이 209억 개, 커피 전문점에서 쓰는 고평량 종이컵은 38억 개로 추산된다. 플라스틱컵 사용량(46억 개)보다 5배 이상 많다. 한 사람이 일주일에 쓰는 종이컵 개수도 4.84개에 이른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위생과 인건비 등을 이유로 1회용 종이컵을 쓰는 식당이 늘면서 종이컵 사용량도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플라스틱컵의 경우 규제가 점차 강화된 것과 달리 종이컵은 감축한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 별다른 규제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앞으로도) 플라스틱컵만 단속을 하게 되면 카페 입장에서는 매장 내에서 다회용컵을 쓰는 대신 1회용 종이컵을 쓰는 등 풍선효과가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자동차 6만2000대 탄소 배출…재활용도 거의 안 돼

서울 시내 한 거리에서 시민이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모습. 뉴스1

서울 시내 한 거리에서 시민이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모습. 뉴스1

문제는 1회용 종이컵이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데다가 재활용도 어렵다는 것이다. 1회용 종이컵은 음료를 담기 위해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에틸렌(PE)으로 내·외부를 코팅 처리한다. 엄밀히 말하면 ‘플라스틱 코팅 종이컵’인 셈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생산부터 폐기까지 종이컵의 전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결과, 1년에 1억 6724만㎏(CO2-Eq)의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는 “이는 자동차 6만 2201대가 배출하는 탄소배출량과 맞먹는 양”이라고 설명했다.

종이컵은 회수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일반 쓰레기와 같이 소각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분리 배출하더라도 재활용 과정에서 플라스틱 코팅을 벗겨내야 하는 등 일반 제지보다 공정이 까다롭다. 환경부는 종이컵의 재활용률을 13%로 추산했다. 하지만, 재활용 업계 관계자는 “생산 과정에서 남는 짜투리 종이를 재활용하는 경우가 재활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며 “실제 종이컵 재활용률은 훨씬 낮다”고 주장했다.

“아무 종이컵 써도 되면 누가 친환경 종이컵 쓰나”

임상준 환경부 환경부 차관이 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오는 24일 일회용품 사용제한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일회용품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임상준 환경부 환경부 차관이 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오는 24일 일회용품 사용제한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일회용품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재활용이 쉬운 친환경 종이컵을 개발해도 규제와 비용 등에 막혀 시장 진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1회용품 규제 강화에 맞춰 친환경 종이컵 등을 준비해 온 업체들은 환경부의 발표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종이컵 업체 대표인 천경유 씨는 “전날 산업부의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어렵게 재활용이 가능한 신소재 종이컵에 대한 판매 승인을 받았는데 하루 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라며 “아무 종이컵이나 써도 된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더 비싼 친환경 종이컵을 누가 쓰겠느냐”고 말했다.

환경부는 “종이컵은 별도로 모아 분리 배출하는 등 정교한 시스템을 마련해 종이컵 재활용률을 높이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종이컵 사용량을 줄이거나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분리수거가 잘 안 되고, 분리수거를 해도 일반 쓰레기로 처리되는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재활용 문제뿐 아니라 종이컵의 생산량 자체를 줄이지 못하면 1회용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재사용 시스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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