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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승욱의 시시각각

대표님! 침대축구로 되겠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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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디렉터

서승욱 정치디렉터

징크스일 수도, 마음 다스리기일 수도 있다. 1996년 입사 이후 줄곧 '물 먹은 날이 기회'라고 믿고 살았다. 경쟁지가 특종하면 기자는 "물을 먹었다"고 표현한다. 매일매일의 승부에서 남의 행복은 곧 나의 불행이다. 불행이 찾아온 날 만회를 위해 이를 악물고 한 발이라도 더 뛰게 된다. '물 먹었던' 타지 특종보다 더 큰 특종을 다음 날 신문에 보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은 지옥이지만 내일은 천국, 실제로 그런 일이 수두룩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지켜본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위기 다음엔 찬스, 찬스 다음엔 위기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지지율 바닥에서 노무현이 던졌던 정몽준과의 단일화, 호남에 갇힐 뻔했던 김대중의 반전카드 DJP 연합이 생생한 증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접견실에 열린 사전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접견실에 열린 사전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17.15%포인트 차로 여당이 대패한 강서구청장 선거 이후 27일이 지났다. 총선 6개월 전 터진 참사에 국민의힘은 불난 호떡집이 됐다. '푸른 눈의 한국인'을 앞세워 싫든 좋든 변화의 길에 나섰다. 물론 탄탄대로는 아니다. 첫 작품이었던 '대사면'은 코미디로 끝났다. 이준석·홍준표 등 주연급의 반발에 친윤계 김재원 전 의원의 총선 출마 길만 터주는 결과로 끝났다. 전광훈 목사와 5·18 망언의 대화를 나눠 중징계를 받았던 그를 5·18 광주 방문을 앞두고 사면하겠다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 '윤핵관'들에게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강요한 두 번째 카드가 던져졌다.

강서구청장 참패 뒤 달라진 여권
스타일 바꾼 대통령이 변화 주도
정권심판론만 믿는 야당 앞길은

솔직히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무슨 말을 하든 필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혁신의 진짜 주인공이자 추진체는 그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혁신의 성패, 여당의 진정한 변화는 모두 윤 대통령에게 달렸다. 그런데 지난주 국회를 방문한 그는 완전히 딴사람으로 보였다. 범죄 피의자란 이유로 상대도 하지 않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손과 눈을 맞췄다. 야당 의원들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들의 쓴소리를 경청했다.

용산 소식에 밝은 여권 인사는 지난주 이런 얘기를 했다. "강서구청장 선거 전 '윤핵관'들과 마주한 윤 대통령이 '현재 지역구 대신 수도권에서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A의원이 먼저 '알겠습니다' 했다. 이어 B의원과 C의원은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했고, D의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응했고 거부했고는 중요치 않다. 오래전부터 대통령 마음속에 '윤핵관의 희생'이 각인돼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그에게 총선 패배는 곧바로 레임덕을 의미한다. 가장 필사적인 사람은 윤 대통령이다. 뭐든 할 준비가 돼 있다."

윤 대통령이 결심한 혁신의 깊이와 강도는 인 위원장의 머릿속 구상을 이미 뛰어넘었을 수 있다. 지지율 하락을 불렀던 홍범도 논란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이 "국민들이 싫어한다면 앞으로 이념 얘기는 정말로 한마디도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메트로폴리탄 서울'이나 '공매도 금지' 외에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궁무진하다. 또 선거만 이길 수 있다면 화끈한 햇볕정책으로 어느 날 갑자기 비윤계를 포용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선은 변화하지 않는 민주당에 쏠린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를 보고 할 수 없이 윤 대통령을 찍었다'는 민심이 분명히 존재했다. 산더미 같은 사법리스크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한계가 뚜렷한 '이재명 체제'로 총선에 임한다. 그나마 얼마전까지 거론됐던 '비대위 체제' 역시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뒤엔 쑥 들어갔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과 악수한 다음 날 "국민을 원숭이로 여기냐"라고 했고, 당은 "장관 탄핵"을 외친다. 여론조사상 '국정 안정론'보다 우세한 '정권 심판론'이 유일한 선거 전략이자 희망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드라마는 늘 전화위복과 새옹지마의 파란이 끊이지 않았다. 과연 이 대표와 민주당은 '정권 심판론'에만 기대는 침대축구로 이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