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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벽루·촉석루와 조선 3대 명루...밀양 영남루 60년 만에 국보 재승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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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영남루. 백종현 기자

밀양 영남루. 백종현 기자

평양 부벽루(浮碧樓), 진주 촉석루(矗石樓)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명루로 꼽혔던 밀양 ‘영남루’가 60여 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밀양 영남루와 강원 삼척 죽서루를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31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두 문화유산은 영남과 강원 지역 대표적인 누각으로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방문해 시문을 남기는 등 학술 가치도 높다”고 평가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 의견 수렴을 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영남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조선 시대 3대 명루로 꼽혔다. 팔작지붕 아래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누각인 밀양 영남루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현판에 걸맞게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했다. 경사지를 이용해 건물을 적절히 배치한 영남루는 건물 자체 조형미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모습은 다른 누각과 정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영남루는 통일신라 때 세운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에 있던 금벽루(金璧樓) 혹은 소루(小樓), 죽루(竹樓)라 불리는 작은 누각에서 시작됐다. 이후 고려 때 절은 폐사되고 누각만 남아 있던 것을 1365년(공민왕 14)에 밀양 부사 김주(1339∼1404)가 중창하고 영남루(嶺南樓)라 불렀다.

진주 촉석루 모습. 백종현 기자

진주 촉석루 모습. 백종현 기자

평양 부벽루. 중앙DB

평양 부벽루. 중앙DB

이후 수많은 명사가 경관을 감상하며 시문을 남겨 영남루에 걸린 시판이 300여 개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화재와 전쟁으로 몇 차례 소실됐다가 1844년 중건되면서 현재 남은 시판은 12개 정도다.

영남루는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1955년 국보로 승격됐다. 그런데 1962년에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정부가 이 법에 근거해 문화재를 재평가, 다시 보물로 내려앉았다.

밀양시는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 국보 승격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부터 다시 총력전을 펼쳤다. 지난해 밀양시의회는 ‘영남루 국보 승격 대정부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국회와 문화재청 등에 보냈다. 올해 들어서도 밀양시와 밀양문화원,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영남루 국보 승격을 염원하는 시민 대토론회를 개최해 영남루의 역사·건축학·인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등 국보 승격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영남루 모습. 백종현 기자

영남루 모습. 백종현 기자

밀양 영남루가 국보로 지정되면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양산 통도사 대웅전·금강계단, 통영 세병관에 이어 경남 네 번째 목조건축물 국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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