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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 덩치 큰 형" 감독 봉준호 탄생시킨 '노란문' 빛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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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넷플릭스를 통해 출시된 다큐멘터리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를 연출한 이혁래 감독을 2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출시된 다큐멘터리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를 연출한 이혁래 감독을 2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넷플릭스

2000년대 초 세계무대에서 한국영화는 ‘사건’처럼 등장했다. 유수 국제영화제에서 각광받는 한국 감독들이 쏟아져 나왔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했다. ‘도대체 한국영화에 무슨 일이 있었나.’ 외신들이 물을 때마다 그는 연세대 시절 활동한 영화연구소 ‘노란문’을 언급했다. “우리가 시네필 첫 세대다. 영화 공부하고 감독이 된 시네필들이 영화산업에 진출한 최초 사례”라면서다. 지난 27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에서 그는 이런 발언을 덧붙인다. “이렇게 말해주면 기사 정리하기가 쉬운가 봐….”
 다큐에서 노란문과 1990년대 초 시네필 문화를 조명한 이혁래 감독은 24일 인터뷰에서 “내가 이 영화를 만들 때 가졌던 태도가 봉 감독의 마지막 말에 있다”며 “지금의 한국영화가 이룬 것들에 대해 각자 나름의 원인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게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건 위험하다. 많은 우연과 여러 조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연구소 노란문이 좋았던 건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잊힐 수 있었던 당시의 사소한 경험을 모으다 보니까 30년 만에 가치를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27일 출시 넷플릭스 다큐 '노란문' #봉준호 대학시절 활동한 영화연구소 #멤버 이혁래 감독 90년대 시네필 주목

봉준호 배출 노란문 잊힐뻔…30년 만에 빛 봐

“연출 분과라곤 하지만 (장비가 없어) 콘티만 그리다 말았”고, 보고 싶은 작품을 어렵게 복제해 구한 노란문 비디오 목록을 집착에 가깝게 관리하며, ‘대부’ 같은 걸작들을 장면별 해부했던 “곱슬머리 덩치 큰 형” 봉준호가 오늘에 이른 것처럼 말이다. 이 감독이 1992년 서울대 미학과 1학년 때, 서울 마포구 서교동 노란문 공간에 찾아갔을 때 전지에 자로 잰 듯 가지런한 선을 긋고 있던 대학생 봉준호가 이러더란다. "볼펜으로 선을 긋다가 계속 엄지손가락 냄새를 킁킁 맡더니 이러더군요. ‘왜 손톱 밑에서 똥냄새가 나지?’ 인상적이고도 기괴했어요.”

이런 봉 감독의 영화 첫걸음에 대한 관심에서, 뉴욕타임스‧인디와이어‧할리우드리포터 등 외신들도 다큐를 주목했다. 그러나 다큐의 주인공은 봉 감독보단 저화질 비디오를 경전처럼 돌려봤던 90년대 시네필들이다. 이 감독은 서울대에도 영화 집단 ‘얄라셩’이 있었지만, “주로 시위 나가서 촬영하고 사회 운동 차원에서 접근하는 이미지가 컸다”고 돌아봤다. “주류 영화산업 바깥의 20대 영화학도들이 뭉친 독립 영화 단체 ‘장산곶매’는 온 나라를 뒤흔든 영화 ‘파업전야’(1990)를 선보인 슈퍼스타였다. ‘해피엔드’ ‘4등’ 등을 만든 정지우 감독 역시 90년대 대학가 스타였다. “장산곶매가 ‘프리미어리그’고 정지우가 있던 ‘청년’이 분데스리가라면 노란문은 조기축구회였죠.” 봉 감독의 회고다.

영화과 대학원생이 등록금 빼서 만든 영화연구소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는 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였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의 회원들이 30년 만에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을 되짚었다. 사진은 1992년. 사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는 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였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의 회원들이 30년 만에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을 되짚었다. 사진은 1992년. 사진 넷플릭스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생 최종태씨가 16㎜ 카메라 작동법조차 가르치지 않는 수업에 실망해 가족 몰래 4학기 등록금을 쏟아부어 영화 자료들을 모으면서 노란문 영화연구소를 시작했다.
이 감독은 “정지우 감독을 비롯해 90년대 중반 ‘청년’에서 만든 단편들은 수준을 빼어났다. 김성수 감독의 단편 ‘비명도시’의 기술 수준도 충격이었다”고 돌이키며 “어떤 영화를 튼다, 소문을 돌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찾아다녔다”고 했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 이야기만 하고 싶었던 그 시절 노란문이 그런 곳이었다”고 했다.
“87년 6월 항쟁이 끝난 이후, 너무 버거운 짐을 지고 있던 20대가 그 짐을 탁 내려놨을 때였죠. 후련하기보다 뭘 해야 하지, 갈피를 못 잡던 시기죠. 87년 이후로 많은 개방이 이뤄지잖아요.”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는 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였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의 회원들이 30년 만에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을 되짚었다. 사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는 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였던 ‘노란문 영화 연구소’의 회원들이 30년 만에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 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을 되짚었다. 사진 넷플릭스

그는 “공식적으로 들을 수 없었던 핑크플로이드의 ‘더 월’ 같은 앨범을 들을 수 있게 되고 ‘지옥의 묵시록’(1979) ‘택시 드라이버’(1976) 등 막혔던 영화 개봉이 80년대 말 풀렸다. 갈 곳 몰라 하던 젊은이들 눈앞에 문화의 바다가 펼쳐졌는데, 누릴 수 있는 조건은 열악해서 괴리가 있었다”고 했다. 해외 걸작의 정식 출시가 더뎌 몰래 반입한 비디오를 두세번 복사해 보느라 화면 색이 바래 흑백이 되고, 자막도 없었다. 배우 얼굴 화질이 뭉개져 캐릭터 구분도 못 한 채 영화를 봤다. 그런데도 직접 목격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대학가에 영화제가 유행했어요. 연대 노문과 영화모임에서 92년 했던 ‘성과 파시즘 영화제’가 가장 흥행했죠.”

민주항쟁 내려놓은 20대, 문화 개방 세례

다큐에도 나온 영화평론가 김홍준(한국영상자료원장)‧정성일 등 1세대 시네필이 프랑스‧독일 문화원이 상영하는 고전 걸작을 흡수했다면, 90년대 초엔 비디오 데크로 원하는 장면을 원하는 만큼 돌려보며 직접 찍어보려는 세대가 나타났다. 제작 현장을 알게 해줄 자료가 드물었던 때라 알아서 논쟁하고 직접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감독은 “그때 헤매는 과정에서 뛰어난 감독이 많이 생겨났다. 정규 과정을 거쳐 공부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영화들이 나왔을 것”이라 했다.

다큐를 위해 30년만에 화상 통화로 재회한 노란방 멤버들. 1990년대 초까지 활동할 당시 이들은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장뤼크 고다르 등 세계적 거장의 대표작뿐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본 애니메이션, 황인뢰 연출‧주찬옥 작가의 92년 베스트극장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TV 드라마에도 빠져들었다.

다큐를 위해 30년만에 화상 통화로 재회한 노란방 멤버들. 1990년대 초까지 활동할 당시 이들은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 장뤼크 고다르 등 세계적 거장의 대표작뿐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본 애니메이션, 황인뢰 연출‧주찬옥 작가의 92년 베스트극장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TV 드라마에도 빠져들었다.

92년 노란문 송년회 때 공개한 봉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Looking for Paradise’(룩킹 포 파라다이스)는 그런 잡식성 속에서 탄생했다. 직접 과외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캠코더가 유일한 장비였다. 더러운 지하실에 갇힌 원숭이가 똥에서 나온 애벌레에게 쫓기며 지상낙원을 찾아가는 22분 길이 단편이다. 점토 애벌레와 원숭이 인형을 조금씩 움직여 촬영했다.

노란문과 가까웠던 배우 안내상‧우현 등 당시 관객은 10명 남짓. 이후 DVD로만 묻혀있던 이 작품은 노란문에서 처음 대중에게 공개됐다. 봉 감독의 연출 데뷔 시점을 지금껏 알려진 단편 ‘백색인’(1994)보다 2년 앞당겼다. 노란문은 93년 잡지 형태의 연구자료집을 냈지만 제1호가 마지막 호가 됐다.

"봉준호 미끼로 30년 전 시네필 끌어올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에서 노란문 사무실을 처음 열때 고사 장면. 실제 돼지머리 대신 봉준호 감독이 그린 그림을 올렸다. 사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에서 노란문 사무실을 처음 열때 고사 장면. 실제 돼지머리 대신 봉준호 감독이 그린 그림을 올렸다. 사진 넷플릭스

노란문은 30년 만에 멤버들이 다시 만난 자리에서 영화화가 추진됐다. 이달 초 부산국제영화제 최초 상영 때는 다큐 속 노란문 멤버 12명이 대부분 참석했다. SF 영화 ‘미키17’ 촬영차 미국 체류 중인 봉 감독을 포함해 최종태(감독)‧김형옥(제작자) 등 4명이 영화를 만들며 살아간다. 이 감독은 영화 조감독‧편집일을 주로 하다 지난해 개봉한 다큐 ‘미싱타는 여자들’에 이어 ‘노란문’이 두 번째 장편이다.
이 감독은 "다큐를 미리 본 봉 감독이 ‘우리끼리만 보고 좋아할 영화가 될까봐 걱정했는데 완성된 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재미 있어 하겠다’더라”고 했다. “무언가를 몹시 좋아해서 주변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죠.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인생에 아무 도움 안 되지만 목적의식 없이 진정으로 즐기는 일은 30년 전만이 아니라 지금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에선 봉준호 감독이 1990년대 단 10여명 관객앞에 선보인 첫 단편 애니메이션 '룩킹 포 파라다이스'도 공개한다. 사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감독 이혁래)에선 봉준호 감독이 1990년대 단 10여명 관객앞에 선보인 첫 단편 애니메이션 '룩킹 포 파라다이스'도 공개한다.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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