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미의 수학자 둘이 한국을 방문했다. 카페에서 만난 그들은 언제나처럼 유쾌했다. 그럼에도 오랜 비행의 피로도 얼굴에 역력했다. 잘 지냈어? 비행은 어땠어? 두세 마디 상투적 대화와 잠깐의 어색함. 그리고 이어지는 진짜 인사. “그때 그 함수가 미분가능하려면…”
지난 프랑스 학회 이후 연결되는 대화이다. 비로소 생기가 도는 눈빛. 대화는 이런저런 아이디어와 반론의 반복이다. 우리 앞 장애물은 생각보다 크고 견고했다. 긴 오후 풍경의 대부분은 침묵으로 채워졌다. 친구 하나는 얼굴을 팔에 묻은 채 엎드려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천장을 보며 양손을 휘이휘이 젓고 있다. 나는 벽을 향해 앉아 수염만 하나하나 뽑고 있다.
멍한 표정의 우리 셋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상상만큼 적합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한자로는 ‘생각 상(想)’에 ‘그림 상(像)’. 영어로는 “혼자서 그림을 그린다”는 어원의 ‘imagination’.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원하는 그림을 찾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성장했지만, 수학이라는 보편적 언어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동일한 그림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상상놀이는 즐거웠다. 친구와 함께 뒤집어쓴 이불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불은 잠수함이 되어 바닷속으로 떠나거나, 우주선이 되어 은하계 너머로 날아갔다. 눈을 감지 않아도 우리 앞에는 총천연색의 그림이 펼쳐졌다.
어른이 된 지금도 노력한다면, 마음의 눈으로 깊은 바다와 암흑 속 우주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아이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려운 문제의 돌파구를 상상으로 찾을 수도 있다. 규칙과 편견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해법이 상상 속에서 드러나곤 한다. 난제 해결의 기반이 상상임은 수학사의 수많은 위인이 반복해서 지적하는 바이다. 상상은 강력하다. 그리고 행복하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