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복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달리던 차량 90% 세운 ‘손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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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13일 오후 2시께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신촌로터리의 한 무신호 횡단보도. 70대 노인이 도로 왼편을 살피며 손을 살짝 들자 우회전하려던 승용차가 이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멈춰섰다. 이 차량은 노인이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넌 뒤 우회전했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무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달려오는 차량에 손을 들어 길을 건너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횡단보도 손짓’ 캠페인이 상당히 효과적인 것으로 재확인됐다.

2년 연속 '횡단보도 손짓' 실험해보니

2년 연속 '횡단보도 손짓' 실험해보니

17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 8월 31일 서울역 부근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손짓 실험’을 한 결과, 손짓을 했을 때 차량 일시 정지비율이 89.5%로 조사됐다. 57차례 실험했더니 51번 차량이 멈춰 선 것이다. 손짓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친 경우는 6건(10.5%)이었다.

횡단보도에서 손을 가볍게 올려 횡단 의사를 표시하면 달리던 차량 10대 중 9대는 멈춰선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 8월 말과 9월 초 동일한 장소에서 실험했을 때의 차량 일시 정지비율(88%)보다 1.5%p가량 증가한 수치다.

반면 횡단보도에서 손짓하지 않았을 경우 일시 정지하는 차량 비율은 28.3%에 불과했다. 10대 가운데 3대만 보행자를 위해 차를 멈췄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해 실험 때 수치(34%)보다 5.7%p 하락한 수준이다.

도로교통공단이 ‘횡단보도 손짓’ 캠페인을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보행자 보호의무를 대폭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그해 7월부터 시행된 게 계기였다. 당시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 때에도 자동차에 일시정지 의무를 부여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 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위해 양보하는 차량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운전자 입장에서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는 의사가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도 한 이유였다. 이 때문에 보행자가 달려오는 차량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횡단 의사를 표시하면 안전하게 길을 건너는 데 유용할 거라는 판단에서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는 게 공단 측 설명이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시행해본 2차 손짓 실험에서도 그 효과가 다시 입증됐다. 공단 안전교육부의 정의석 교수는 “보행자의 가벼운 손짓은 운전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게 하는 일종의 넛지(Nudge)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2차 실험에서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결과도 나왔다. 지난 8월 31일과 9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역 교차로 및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보행자 3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85.3%가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손짓’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또 ‘손짓’ 경험자 중 83%는 “운전자를 향해 손짓을 하면 더욱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횡단보도 손짓’이 보행 안전에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도로교통공단에서 벌이는 ‘횡단보도 손짓’ 캠페인을 접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54%에 그친 것은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주민 공단 이사장은 “이번 2차 실험 결과를 통해 손짓 캠페인의 효과와 반응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보행자와 운전자가 보다 많이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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