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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미 채권시장 불안 신호 두 가지: 가격 급락, 수요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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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글로벌 금리의 사실상 기준인 미국 10년 만기 국채의 금리(만기 수익률)가 연 4.8% 선까지 치솟았다. 조만간 5% 선을 넘을 듯했다. 그런데 최근엔 4.6% 수준까지 내려왔다(국채 시세 반등). 글로벌 머니가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을 계기로 미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몰린 탓이다. 금리만을 보면 고금리 압박이 일단 진정된 셈이다.

그런데 금리가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부인 미 국채시장을 거울처럼 보여주는지는 늘 논란거리다. 금리는 채권을 파는 쪽(미 정부)의 부담을 보여주는 지표다. 반면에 채권을 사는 쪽, 달리 말해 돈을 빌려주는 쪽(채권자)의 심리나 자금사정 등은 잘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에 대해 물가 등 경제지표 문제점을 지적해온 폴 도노번 UBS에셋매니지먼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채권 가격이 아니라 금리를 온도계로 삼아온 오랜 관행이 낳은 착시”라고 꼬집었다.

미 국채 30년물 경매수요 줄어
18% 안 팔려 도매상이 떠안아
최근 금리하락은 일시적 현상
시장발 긴축 본격화할 가능성

도노번이 말한 착시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주 발생했다. 이달 12일 미 재무부가 30년 만기 국채 200억 달러(약 27조원)를 경매(발행)에 내놓았다. 이 경매시장엔 참여자가 제한돼 있다. 주요 시중은행 등 ‘프라이머리 딜러(PD)’로 불리는 선수들만이 거래할 수 있다. PD들은 채권 펀드 등의 선주문을 받은 뒤 경매에 참여한다.

그런데 이날 경매에서는 안전자산 수요가 늘었는데도 선주문이 부족했다. 재무부가 내놓은 200억 달러의 18%인 36억 달러어치 국채가 팔리지 않아 도매상(PD) 창고에 남았다. 재고 비율은 평균(9~10%)보다 상당히 높다. 그 바람에 재닛 옐런 재무장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옐런이 국채를 팔아 뭉칫돈을 조달하기 때문이다.

채권 투자 손실은 이미 눈덩이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국채 발행을 늘리고 있는데, 수요가 시원찮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 국채 발행을 늘리고 있는데, 수요가 시원찮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블룸버그]

미 국채 선주문(수요)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투자자의 손실 급증이다. 이는 금리 변동으론 쉽게 알기 어렵다. 그래서 월가 사람들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운용하는 미 국채 ETF(상장지수펀드) 가격을 주시한다. 미 국채 투자 수익이나 손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서다.

만기가 7~10년 뒤에 도달하는 미 국채 가격의 등락을 따라가도록 설정된 iShares ETF을 보면 투자자들은 고점인 2020년 7월 기준으로 24%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 손실의 대부분이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난해 3월 이후 발생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그런데 만기가 20년 이상 남은 미 국채의 투자 손실은 더 크다. 미 국채 가운데 만기가 20년 이상 남은 채권 가격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설계된 iShares ETF의 가격은 고점인 2020년 7월 26일에서 46.5% 정도 추락했다(그래프 참조). 이 ETF를 산 사람은 투자 원금 가운데 절반 가까이 날린 셈이다. 이런 투자손실은 채권시장 금리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주식 등 위험자산의 투자손실이 단기간에 20% 이상 되는 일이 드물다. 월가 사람들이 주가가 고점에서 20% 이상 떨어지면 ‘침체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반면에 미 국채는 안전자산의 대명사다. 이런 자산의 투자 손실이 위험자산인 주식을 기준으로 분류한 침체장에 해당할 만큼 불어난 셈이다. 그 바람에 월가 일부에선 요즘 미 국채를 닷컴주에 비유하기도 한다. 닷컴 주가가 추락했을 때 평균 손실이 49% 정도였는데, 미 장기채(20년 이상) 투자 손실이 46% 수준이어서다.

최대 피해자는 미국 시중은행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시중은행과 채권형 펀드, 보험회사, 연기금, 해외 정부 등이다. 이 가운데 채권 투자 손실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바로 시중은행이다. 미 시중은행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분기별로 손실을 보고한다. FDIC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올해 2분기 ‘미실현 손실(unrealized losses)’이 5580억 달러(약 754조원)에 이른다. 미실현 손실은 채권가격 변동을 하루하루 반영하는 탓에 나타난 장부상 손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미 존스홉킨스대 스티브 행키 교수(경제학)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최근 발생한 미 국채가격 하락은 2분기 데이터에 반영되지 않았다”며 “미 시중은행의 미실현 손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Fed가 물가가 한참 오른 뒤 뒤늦게 허겁지겁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국채 가격이 급락해 시중은행이 궁지에 몰렸다”고 지적했다.

행키 교수가 지적한 시중은행 피해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Fed 긴축 이후 국채 가격 하락이 낳은 손실이다. 두 번째는 금리상승 때문에 발생한 예금 이탈이다. 제로금리 시대에 예치한 돈이 고금리 시대가 열리자 대거 빠져나갔다. 씨티와 JP모건, BofA, 웰스파고 등 미 4대 은행에서 최근 1년 새에 빠져나간 예금이 2600억 달러에 이른다. 중소 시중은행에선 더 많은 돈이 빠져나갔다.

이제는 시장발 긴축을 주목해야

미 시중은행의 손실이 더 늘어나고 예금이 빠져나갈수록 국채 수요는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는 곧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Fed가 시작한 긴축이 금융 메커니즘을 거치면서 시장발 긴축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물론 월가 일부는 국채 가격 하락이 새로운 투자 수요를 불어 금리 상승이 억제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가격이 급락하면 투자 의욕이 꺾이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Fed가 월가의 예상대로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정도 더 올리면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 흐름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로 내려간 미 국채금리에 안도하기는 아직 이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