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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실크로드 화물 열차’ 공허한 기적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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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지금 이 시각, 중앙아시아의 어느 초원에는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을 터다. 중국과 유럽의 주요 도시를 잇는 ‘중국-유럽 화물 열차’다. 낙타가 오가던 실크로드를 열차가 달리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8641회가 오갔다.(중국 국가철도국 발표) 하루 47회꼴이다. 이들이 실어 나른 컨테이너 숫자만도 93만6000개에 달했다. 지난해 대비 약 29% 늘어난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실크로드’는 활기를 띠고 있다. 열차는 유럽 25개 나라, 216개 도시에 뻗친다. 덕택에 중국은 2020년 미국을 제치고 EU(유럽연합)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유럽 화물열차야말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정책의 최대 성과’라고 중국 언론은 치켜세운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이우(義烏)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를 향해 출발하는 ‘중국-유럽 화물열차’. [신화뉴스]

중국 저장성(浙江省) 이우(義烏)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를 향해 출발하는 ‘중국-유럽 화물열차’. [신화뉴스]

일대일로 10주년이다. 베이징에서는 17일 ‘제3회 일대일로 정상 포럼’이 열린다. 중국의 올해 최고 외교 이벤트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주재한다. 그런데 유럽 대표가 없다. 2019년 제2회 포럼에는 정부 대표단을 파견했던 유럽 각국이 이번에는 발을 빼는 모습이다. G7(서방선진 7개국)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남았던 이탈리아마저 탈퇴 수순을 밟는다.

열차는 활발하게 오가지만, 정치적 교류는 끊기는 이유가 뭘까. 일대일로에 숨겨진 중국의 의도를 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미래 문제의 해법을 과거에서 찾곤 한다. 일대일로가 그렇다. 실크로드가 만들어진 건 한나라(漢·BC206~220) 때다. 그 길을 타고 동서양 문물이 가장 왕성하게 오간 건 당(唐·618~907) 시기였다. 한나라는 강국이었고, 당나라는 흥성했다(强漢盛唐). 세계 최강의 그 역사를 오늘 재연하겠다는 게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중국몽(中國夢)’이다. 일대일로는 그 실현 방안이었던 셈이다.

“중국몽은 글로벌 패권에 대한 도전이다. 일대일로는 이를 위한 ‘차이나 벨트’ 만들기에 불과하다.” 서방 국가의 생각이 그렇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저개발국가의 부채만 늘렸다는 문제도 여러 곳에서 제기됐다. 이번 3회 포럼이 2회 때보다 덜 주목받는 이유다.

10년 전 시 주석은 일대일로를 주창하면서 ‘허쭤공잉(合作共嬴)!’을 강조했다. ‘협력으로 상생하자’는 외침이다. 그러나 지금 일대일로는 “상생은 사라지고 중국의 경제 이익, 지정학적 노림수만 남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 목소리에 중앙아시아 초원을 가르는 기적 소리마저 공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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