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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개혁 3인의 총잡이, 극우파에 ‘토사구팽’ 당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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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12면

매카시 퇴출, 미 공화당 무슨 일이

미국 공화당 영 건스 3인방이 퇴장했다. 왼쪽부터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에릭 캔터 전 하원원내대표. [로이터·AP·UPI=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영 건스 3인방이 퇴장했다. 왼쪽부터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에릭 캔터 전 하원원내대표. [로이터·AP·UPI=연합뉴스]

냉전의 시대를 뒤로하고 1993년 출범한 클린턴 미 행정부는 집권 8년 내내 여론정치에 골몰했다. 국민들에게 인기만 있으면 좌·우 가리지 않고 정책으로 채택하는 바람에 나중엔 그가 민주당 대통령인지 공화당 대통령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민주당은 이념적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내외의 비판에 직면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후에도 민주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당 내부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때 개혁의 깃발을 날리며 혜성같이 등장한 이가 하워드 딘이다. 딘은 2004년 대통령 민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개혁의 태풍을 불러 일으켰다. 당의 주류인 존 케리에게 후보자리를 내줬지만 민주당 개혁의 중심을 휘어잡았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대선후보가 된 것은 허물어진 당의 울타리가 복원됐다는 의미였다.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 대통령은 개혁을 완수한 당의 지도자로 출발했다.

3인 당 지도부 파격 발탁, 개혁 이끌어

9·11테러로 인해 집권 내내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전쟁에 시달린 부시 행정부의 주도권은 네오콘이라 불린 신보수주의 권력이었다. 네오콘 집단을 참모로 둔 딕 체니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국정 운영의 중심이었다. 집권당으로서 정책을 만들어 내야 할 공화당은 오히려 뒷전이었다. 더구나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텍사스 출신의 톰 딜레이 당 대표가 부패 스캔들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사건에 이르렀다. 개혁의 길에 들어선 민주당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의 자리를 획득했다. 미 의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으로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가 등장했다. 상대 당의 신선한 변화를 바라보면서 방향을 잃어버린 자기 당의 상황에 개탄하는 3명의 공화당 소장 의원이 의기투합했다.

2007년 4월 초 어느 날 오후에 그 3인이 얼굴을 마주했다. 의사당 주변에 벚꽃이 막 피어날 때다. 이미 4선에 이른 위스콘신 출신의 폴 라이언, 2000년 선거에서 하원에 입성한 리치먼드 출신의 에릭 캔터, 그리고 연방의원으로 막 워싱턴에 진입한 캘리포니아 출신의 케빈 매카시였다. 그들은 노후화된 공화당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에 대해 토론하고 역할을 나누기로 했다. 캔터가 자금을, 매카시가 조직을, 라이언이 정책을 나눠 맡아 우선 ‘공화당의 방향과 과제’에 대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 유명한 『영 건스(Young Guns)』다. 3인의 총잡이가 쓴 책은 공화당 개혁의 교과서가 됐다.

2008년 미니애폴리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당시 당 1인자인 존 뵈너 대표는 캔터를 원내총무로, 라이언을 예산위원장으로, 초선의 매카시를 공화당 운영위원으로 발탁해 당의 강령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지금 공화당의 노선을 규정하는 강령이 바로 이때 매카시가 만든 작품이다. 공화당은 2008년 대선에서 패했지만 이들 3인의 총잡이를 지도부에 파격적으로 발탁해 개혁의 틀을 만들어 냈다. 민주당이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란 샴페인을 터뜨리며 과도한 개혁을 밀어붙이는 동안 이들 총잡이들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젊은 보수주의자들을 물색해 끌어들였다. 조직을 담당한 매카시는 이미 20여 년 동안 전국 공화당 청년위원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사람 찾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리치먼드의 유대계들이 전략적으로 키워낸 캔터는 정통 유대계답게 자금 소스가 무한정이었다. 당시 캔터는 40여명의 유대계 연방하원 중 유일한 공화당 소속이었다. 유대인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는 캔터에게 유대계 자본가들이 몰린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2008년 5월 캔터는 워싱턴을 방문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의회로 초청해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의 분쟁은 지속적인 아픔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위대함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가 미국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아랍권과도 친밀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발언을 할 때였다. 1970년생으로 3명 중 가장 어린 라이언은 1996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밥 돌 상원의원의 재정·예산 보좌관을 지낸 경력에서 보듯 후보를 상대로 한 정책교육엔 천재적 재능이 있었다.

3인의 총잡이들은 2010년 오바마의 첫 중간선거에서 60여명의 공화당 후보를 연방하원으로 당선시켰다. 매카시가 후보를 찾아내면 라이언이 교육을 시키고 캔터는 자금을 지원했다. 이들은 불과 2년 만에 워싱턴을 거대한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만들었다. 당 서열상으로는 온건한 리더십의 뵈너 의장이 1인자였지만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하는 이들은 영 건스 3인이었다.

공화당 내 영 건스가 젊은 보수주의를 내세우는 동안 흑인 대통령 탄생의 역풍으로 생겨난 대중조직 티파티(Tea Party)는 백인 인종주의가 깔려있는 극우파들이 득세했다. 백인 우파 조직들은 누가 더 강경한 우파인지를 경쟁하면서 공화당 내로 대거 진입했다. 그 구심점은 2008년 존 맥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새라 페일린이었다. 2014년 리치먼드 지역구에서 원내대표인 캔터가 우파로서의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는 티파티의 거센 공격에 밀려 예비경선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원내대표가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미 의회 역사상 최초의 사례로 국가대표가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셈이었다. 자신이 당의 세력으로 끌어들인 티파티로부터 축출당한 것이다.

소수 극우파가 다수 온건파의 길 막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정책수석.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정책수석. [AFP=연합뉴스]

바로 그 2014년 선거에서 티파티를 기반으로 하는 극우 강경 보수주의자들이 대거 연방하원에 입성했다. 현재 하원의 트럼프 친위대인 ‘프리덤 코커스’는 그때 출발했다. 당내 극우파 의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2015년 5월 뵈너가 의장직을 사임하고 아예 의원직까지 내놓았다. 캔터가 밀려난 뒤 남은 두 명의 영 건스 중에 라이언이 45세로 미 역사상 최연소 의장에 취임했다. 매카시는 하원 입성 이래 역사상 최단기간(7년 6개월)에 원내대표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라이언 의장-매카시 원내대표 체제하에서 당 내부는 누가 더 강경한 우파인가의 경쟁이 펼쳐졌다. 극우파 의원들의 결속체인 프리덤 코커스는 매사에 지도부의 발목을 잡았다. 캔터의 탈락에 잔뜩 긴장한 라이언과 매카시는 극우파 의원들과 점점 더 타협하고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트럼프가 뛰어들었다. 정치권 외곽의 극우 시민들이 트럼프를 앞세워서 선거판을 휘어잡았다. 미국 남부와 중서부의 침묵하던 절대 다수의 백인들이 트럼프의 선동에 이끌려 끝도 없이 밀려 나왔다.

2016년 트럼프가 공화당을 접수해 대통령에 올랐다. 공화당 개혁의 교과서인 영 건스는 온데간데없이 의장과 원내대표 완장만 찬 2명이 덩그란히 남았다. 2018년 라이언 의장도 결국 트럼프 권력에 밀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매카시만 꼭대기에 홀로 남았다. 그는 점점 더 극우파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타협했다. 바이든에게 패하는 트럼프의 2020년 대선전에서도 그는 점점 더 우파의 길을 갔다. 자신은 트럼프 세력을 활용한다는 계산이었겠지만 트럼프를 쫓는 극우파 의원들의 득세에 다수의 온건한 중도 보수주의 의원들이 늘 양보를 해야 했다. 매카시는 의장직에 오르기만 하면 당을 정상으로 평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했지만 역사상 가장 적은 의석차이였고 매우 불안한 다수당이 되었다. 공화당 222석, 민주당 212석으로 공화당 의원 4명 이상이 이탈하면 다수당 대표이면서도 의장이 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매카시는 올해 1월 15번의 투표 끝에 겨우 의장직에 올랐는데 이 과정에서 트럼프 휘하에 있는 극우파 의원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20여명의 극우파 의원들이 200여명의 정상적인 의원들의 길을 막아선 것이다.

202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는 또다시 공화당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16년 트럼프를 대통령에 오르게 한 뒤 일등공신으로 백악관 정책수석을 지낸 스티브 배넌이 이번 선거전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극우파 의원조직인 프리덤 코커스를 조종한다. 배넌은 워싱턴 의사당의 공화당 클럽에서 한 블럭 떨어진 개인주택 지하실을 임대해 유튜브 방송을 운영 중인데 수백만 명의 우파 청취자들이 그의 방송을 듣고 그의 요청에 응한다. 매카시를 의장직에서 쫓아낸 8명의 트럼프 휘하 극우파 의원들이 이 방송의 단골들이다. 배넌의 방송에 출연하면 하루에 소액으로 수십만 달러가 선거자금으로 들어온다. 하원에서 바이든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일도, 예산안에 반대해 정부의 문을 닫도록 하는 것도 그랬고, 극우파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상원 예산안에 합의한 매카시를 축출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신선하고 야심차게 공화당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섰던 영 건스 3인방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원칙 없이 타협하여 끌어들인 세력이 오히려 그들에게 부메랑이 되었다. 당대표까지 올랐던 캔터는 로비회사의 고액연봉자가 되었고 부통령 후보이자 최연소 하원의장이란 기록을 쓴 라이언은 폭스방송 네트워크 소유주인 폭스 코퍼레이션 이사로 재직하며 명문대 경제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의장직에서 막 퇴출당한 매카시는 의원직까지 사임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임기는 채울 것 같다. 못내 아쉬운 것은 공화당 내 한국계 영 김의원의 가장 든든한 정치적 후견인이 매카시였다는 점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강원 춘천 출신.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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