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 야생버섯찌개, 장금이도 감탄할 ‘자연의 감칠맛’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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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김범수(오른쪽)·이두남씨 부부. [사진 이택희]

김범수(오른쪽)·이두남씨 부부. [사진 이택희]

가을 버섯 철이 막바지다. 대개 백로(9월 8일)부터 한로(10월 8일)까지 한 달을 절정기로 본다. 빠르게는 8월부터 나오기도 하고, 가지버섯이나 서리버섯은 11월에 채취하기도 한다. 주요 산지 소식을 들어보면 올해는 버섯 사정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여름엔 너무 가물고 날이 뜨거워 포자가 상하거나 휴면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또 9월 중순까지 낮 기온이 30도에 이르는 늦더위로 버섯 발생 여건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가을장마가 겹쳐 겨우 올라온 어린 버섯들이 녹아 버렸다.

산림조합에서 공판을 해 전국 통계가 나오는 송이버섯도 예년보다 생산량이 줄어 추석을 앞두고 역대 최고 가격을 경신했다. 산림조합중앙회 ‘송이 공판현황’을 보면, 9월 21일 양양 송이 1등급 1㎏ 공판가격은 156만2000원이었다. 최고기록이다. 이날 전국 평균은 96만9594원. 여기에 공판 수수료 10%와 판매상의 이문이 붙어 소비자가격이 정해진다. 추석 지나고 한로가 되자 가격은 3분의1로 주저앉았다. 평소 가격이 가장 센 양양이 53만6300원, 전국 평균 32만1132원이었다.

산속 사정이 들쑥날쑥해 기대 반 걱정 반 심정으로 버섯 음식을 하는 산꾼의 음식점을 찾아갔다. 그는 9~10월에는 매일 오전 일찍 산에 갔다가 오후 3~4시에 돌아온다고 했다. 시간을 맞춰 지난달 15일 서울에서 길을 나섰다. 비가 종일 오락가락했다. 날이 궂은데도 산에 갔을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강원도 양구 중앙시장에 도착했다. 마침 오일장 날이었다. 목적지인 음식점 ‘장금이식당’은 오일장 노점구역(평소엔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배꼽야시장’ 상가에 있었다. 노점을 돌아보니 야생버섯을 파는 좌판은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뿐이다. 싸리버섯, 밤버섯, 느릅나무버섯을 내놨다. 그분은 여름에 날이 가물어서 버섯이 많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식당 주인 김범수(71)·이두남(69)씨 부부는 부부유별(夫婦有別)이 분명하게 산다. 남편은 무척 큰 농사를 지으면서 철마다 휴전선이 멀지 않은 산에 올라가 산나물·버섯·약초와 꿀(석청·목청)을 채취해온다. 식당 옆에 부인 고향 이름을 붙인 잡화점 ‘경북상회’를 차려 놓고 산에서 채취한 꿀·버섯·나물과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다. 부인은 남편이 산에서 해오는 버섯과 농사지은 채소·양념으로 음식을 요리해 식당을 운영하면서 직접 키운 시래기와 수박·옥수수 같은 걸 팔기도 한다. 송이·능이버섯은 산에서 내려오는 대로 거래처에 택배로 부친다.

지켜보니 유별하지 않은 건 돈주머니인 듯하다. 남편이 농사일하고 산에 가 있는 동안 부인이 식당과 상회를 관리하고, 택배로 보내는 물건 값도 부인이 다 결정해 수금한다. 결산을 누가 하는지 몰라도 거래는 대부분 부인 손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양구 ‘장금이식당’ 야생버섯찌개. [사진 이택희]

양구 ‘장금이식당’ 야생버섯찌개. [사진 이택희]

이날 산에서 따온 송이 약 1㎏과 여러 가지 버섯을 정리한 부인은 오후 5시 무렵 화구에 물을 올리면서 남편에게 칼국수를 사 오라고 부탁했다. 오일장 노점구역 파장 무렵이다. 물이 끓는 사이 식당 앞 좌판 아주머니 몇 분을 불렀다. 커다란 웍(중화요리용 철 냄비)에 그득하게 버섯칼국수를 끓여 내왔다. 잡버섯 몇 가지는 국수와 함께 끓이고, 다 끓은 다음에 작은 못난이 송이 두 개를 잘게 찢어서 올렸다. 체면 살피지 않고 한 자리 끼어 앉아 한 대접 얻어먹었다. 수증기에 섞여 올라오는 송이 향이 몽롱하고 국수의 감칠맛은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농사지은 배추와 양념들로 담가 알맞게 익은 포기김치도 맛이 일품이다. 배추가 맛없는 계절인데 줄기는 아삭하고 억지 단맛 없는 양념은 시원하면서 칼칼하다. 이 집 음식에 기대 이상의 믿음이 갔다. 다만, 이 칼국수는 파는 메뉴가 아니다.

다음에 대표 메뉴 ‘능이 송이 잡버섯찌개’를 주문했다. 냄비에 10가지 버섯을 동그랗게 담아 나왔다. 들어간 버섯은 막싸리버섯, 솔버섯(황금비단그물버섯), 느릅나무버섯, 먹버섯(까치버섯), 참싸리버섯, 능이, 송이, 밀버섯, 갓버섯과 갈버섯 등 10가지다. 버섯 종류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송이와 능이는 꼭 들어간다. 통북어·뒤포리·표고 우린 물에 직접 따온 버섯, 두부, 나박 썬 무, 애호박, 양파, 대파만 넣고 끓였다 한다. 국물 색이 검은 건 능이 물이 우러나 그렇다. 마늘과 매운 고추는 버섯 향을 저해하기 때문에 넣지 않는다.

맛의 핵심은 버섯 자체에서 우러나는 자연의 감칠맛이다. 거기에 ‘대지의 체취’라고 표현하고 싶은 야생버섯 특유의 향과 졸깃한 질감이 어울려 그윽하고 오묘한 음식 맛을 엮어낸다. 산이 깊은 지역을 찾아가지 않고는 만나기 어려운 별미다. 개인적으로는 이 맛을 못 잊어 해마다 9~10월이면 마음이 전국 버섯 산지를 서성인다.

장금이식당 버섯찌개는 9~12월 계절 메뉴로 했으나(메뉴판에 현재도 그렇게 표시) 앞으로는 사계절 할 예정이다. 제철에 채취해 1년 동안 쓰려고 버섯을 냉동·염장하고 있다. 값은 얼마 전까지 1인분에 1만5000원이었으나, 남는 게 없어 이번 계절부터 2만원으로 올렸다. 대신 버섯을 더 넣고, 송이·능이를 전보다 표 나게 올린다.

식당은 테이블 4~5개로 좁아 손님이 몰리면 대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현지인보다 수도권 손님이 많다. 농사일 바쁘면 열지 않거나 일찍 닫을 수도 있다. 멀리서 갈 때는 전화 확인이 필요하다. 택배는 2인분 이상 가능하며, 3인분 이상은 택배비를 따로 받지 않는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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