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만 보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카네기홀 서는 발달장애 합창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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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 뒷줄 최문영·한준용·최형준·김동우·우성준·정연재. 앞줄 김유진·봉수연.(왼쪽부터) [사진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 뒷줄 최문영·한준용·최형준·김동우·우성준·정연재. 앞줄 김유진·봉수연.(왼쪽부터) [사진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

“가운데에 잘 서세요.” “지휘하지 말고.” “춤 너무 추지 마세요!”

지난달 서울 군자동의 미라클 아트홀. 8명의 합창 단원이 연습을 시작하자 김은정 음악감독이 바빠졌다. 이탈리아 노래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부르는 이들은 발달 장애인으로 이뤄진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이다.

단원들은 노래를 부르며 종종 몸을 흔들고, 갑자기 지휘 동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만큼은 우렁차고, 각각의 얼굴은 기쁨에 차 있었다. 2018년에 정식 활동을 시작해 5년 동안 함께 노래한 합창단의 밝은 기운이 뻗어 나왔다.

“원래는 각각 노래를 배우고 연습했어요. 그러다가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모이게 된 거죠.” 앙상블을 만든 윤혁진 보컬 코치(바리톤)의 말이다. 그는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2012년 귀국한 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정연재(29)씨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씨의 어머니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경험을 키워주기 위해 시작한 노래였다. 이후 다른 발달장애인들까지 합류하면서 이들은 함께 노래하는 앙상블이 됐다. 고등학생부터 20대 후반까지 8명이다.

이들은 모두 무대에 서서 노래하게 될 줄 몰랐다지만 매년 정기 연주회를 열었고, 최근에는 거의 매주 크고 작은 무대에 서는 합창단으로 성장했다. 이달 말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선다. 31일 오후 8시(현지시간) 카네기홀의 와일 리사이틀홀에서 ‘디스 이즈 미(This is Me)’라는 제목으로 공연한다.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다. 정연재씨의 어머니는 혼자서 그림 그리는 것만 좋아했던 아들이 남과 함께 노래할 수 있는 날을 꿈꿨다. “처음 왔던 노래 선생님이 하루 만에 잠적해 연락이 안 되더라”고 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렇게 10년 후 아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능숙히 함께 노래한다. 정씨는 “노래를 하면 마음이 편하고 어렵지만 기분이 좋다”고 했다. 또 지적 장애가 있는 김동우(28)씨의 어머니는 “늘 땅만 보고 다니던 아이였는데 노래를 하면서부터 고개를 들어 앞을 보고 걷는다”고 전했다. 발성을 위해 앞을 보고 힘차게 소리 내는 법을 늘 훈련한 덕분이다. 김씨는 “노래할 때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참 좋다”며 웃었다.

이들은 완벽한 노래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윤혁진 보컬 코치는 “비장애인 앙상블과 똑같이 하려거나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 단원들은 악보를 못 본다. 대신 소리로 듣고 음과 가사를 외운다. 턱을 내리고 소리를 멀리 보내는 법, 옆의 사람과 다른 음을 부르면서 화음을 만드는 법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윤 코치는 “이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면 그동안의 고된 시간까지 전달이 된다”며 “바로 그 과정이 청중을 감동하게 한다”고 했다. 전 세계에도 그 울림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뉴욕 공연을 준비했다. “포기하고 도망갔던 단원도 많았다. 그런 과정을 견딘 앙상블이기 때문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나의 콘텐트가 됐다고 자부한다.” 미라클 보이스 앙상블은 카네기홀에서 한국 가곡과 이탈리아 노래 등 15곡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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