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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가을 텃밭과 작은 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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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가을색이 확연하다. 앞집 무화과나무 밭에는 무화과나무의 일이 다했다. 열매를 모두 딴 밭에는 잎사귀가 떨어져 뒹굴고 무화과나무 아래 드리워져 있던, 무성하던 그늘도 구름처럼 다 흩어졌다. 내 기억에는 아직도 푸른 잎사귀를 매달고 있던, 무화과가 익어가던 여름날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말이다.

잎 지는 것 보며 꽃 피던 때 생각
거두고, 또 씨 뿌리는 가을의 일
생명은 제 목소리 찾아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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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미국의 시인 루이즈 글릭이 시 ‘입구’에서 표현했듯이 ‘첫 꽃이/ 피기 직전의 순간, 그 어떤 것도/ 아직 과거가 되지 않은 그 순간’을 기억으로부터 소환하는 일일 것이며, 당시에 있었던 ‘임박한 힘’을 아직 느끼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실로 나는 잎사귀를 떨구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바라보면서도 무화과나무의 성장과 그 성장의 정점을 떠올리고 있으니 시간의 흘러감과 계절의 바뀜은 매우 신속하다고 할 것이다.

나는 졸시 ‘시월’을 통해서 이즈음의 정취를 노래한 적이 있다. ‘수풀은 매일매일 말라가요 풀벌레 소리도 야위어가요 나뭇잎은 물들어요 마지막 매미는 나무 아래에 떨어져요 나는 그것을 주워들어요 이별은 부서져요 속울음을 울어요 빛의 반지를 벗어놓고서’라고 써서 가을의 그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해가는 시간의 빠른 이동을 노래했다.

집터에 딸린 텃밭에도 가을이 왔다. 어제는 오이와 토마토의 마른 덩굴을 걷어냈다. 노란 오이꽃이 피던 때와 아침마다 오이를 따던 날이 있었고, 붉고 둥근 토마토를 소반에 한가득 따던 날의 소소한 행복이 있었다. 그런 날들은 마치 백화(百花)가 가득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올해 마지막으로 두 개의 가지를 더 땄고, 부추를 베어 툇마루에 앉아 다듬었다. 그러곤 호미를 들고 다시 텃밭에 가서 당근을 캤다. 땅속에 묻혀 있던 당근은 모두 손가락 세 마디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당근의 씨를 뿌릴 때 간격을 두지 않고 너무 많이 뿌린 탓이었다. 물론 그 후에 솎아내기를 해줬지만. 뽑아온 당근을 보고 식구들이 웃었다. 내년에는 당근 농사를 훨씬 잘 지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나도 속웃음을 웃었다.

오이와 토마토와 가지와 당근이 자라던 곳에 고랑을 새로이 내고 배추 모종을 심고, 파 모종을 심었다. 무 씨앗도 뿌렸다. 배추 모종을 심고 무 씨앗을 뿌리기엔 너무 늦지 않았나 싶었지만, 옆집 할머니가 제주에선 지금 해도 늦지 않는다셨기에 그렇게 했다. 텃밭에는 오이와 토마토와 가지와 당근의 일이 끝나고, 배추와 파와 무의 일이 시작되었다.

작은 정원에도 가을꽃이 만개했다. 오일장에 가서 월동이 가능한 야생화 화분을 사 오기도 했다. 오일장에는 국화 화분과 구절초 화분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절초의 향을 맡고 있는 내게 꽃 화분을 파는 가게 주인은 “가을에는 국화가 제일이지요”라며 화분을 사서 가길 권했다. 나는 “작년에 여기서 국화 화분을 사서 마당의 꽃밭에 심었더니 꽃이 막 피고 있어요”라고 말하곤 국화 화분 대신 바늘꽃 화분을 두 개 샀다.

그제는 해바라기를 뽑아 씨앗을 받았다. 검게 그을린 얼굴을 아래로 푹 숙이고 선 해바라기는 마치 비탄에 잠긴 듯했다. 여름날 작열하는 태양을 사모하던 그 낯빛은 온데간데없었다. 받아둔 씨앗은 내년에 파종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씨앗으로부터 싹이 움트고 줄기가 서고 꽃이 피어 또 태양을 사모하게 될 것이다.

텃밭과 정원을 가꾸며 살다 보면 이 좁은 땅에서도 생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식물은 조금씩 말라가고, 어떤 식물은 싹이 움트고, 또 어떤 식물은 땅속에서 발아를 꿈꾼다. 앞서 인용한 시인 루이즈 글릭은 시 ‘야생 붓꽃’에서 이렇게 또 읊었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그대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걸/ 나 기억하고 있다고.//(……)// 끔찍해, 어두운 대지에 파묻힌/ 의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건.//(……)// 다른 세상에서 오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는 너,/ 네게 말하네, 나 다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망각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찾으러 돌아오는 거라고:“

야생 붓꽃의 음성을 빌려 말하는 시인은 모든 고통에는 끝이 있고, 고통의 출구가 있고, 죽음과도 같은 그 고통의 어두운 대지에서 야생 붓꽃이든 어떤 식물이든 어떤 생명이든 다시 움트고 탄생하는 것은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이고, 또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가을 텃밭과 작은 정원에도 생명이 있으니, 그곳에는 많은 말과 목소리가 있는 것일 테다. 설령 우리가 가을을 조락의 계절이라고 대개는 생각하더라도 자세히 듣고 보면 목소리가 붐비고 있고, 또 미세하게 목소리가 태어나고 있는 것일 테다. 이점을 가을 텃밭과 작은 정원으로부터 배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