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사전 전기 사용 신청 상당수가 실제 운영이 아닌 부동산 개발을 목적으로 한 허수 신청인 것으로 드러났다. 3일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데이터센터 전기 공급 실태 특별감사에 착수한 결과, 2020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기 사용 예정 통지 1001건 중 67.7%인 678건이 실수요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고객 한 명이 28군데에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신청하거나, 한 군데에서 6명이 동시에 신청하는 등의 사례가 나타났다. 전력공급 승인을 받고도 1년이 지났는데도 전기사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경우도 33건이 발각됐다. 애당초 데이터센터로 활용할 계획이 없는 허수 신청이었던 것이다.
거짓으로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통지하는 것은 부동산 투기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관련 계획을 마련해 한전에 전기사용 예정통지를 한 뒤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아야 한다. 이후 사업자는 해당 토지와 건축물 소유자 동의를 받아 정식으로 전기 사용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런데 현행 규정상 ‘예정 통지’ 단계까지는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이같은 허점을 이용해 일부 개발업자들이 전력 공급이 확정된 부지로 개발이익을 취하기 위해 신청을 남발하는 것이다.
허수 신청이 많을수록 정작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실수요자들이 제때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5000㎾(킬로와트) 이상의 대용량 전력이 필요한 시설인 만큼 전력 수요가 과다하게 측정되면 설비 시설 과투자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과잉 수요 예측으로 발전소가 필요 이상으로 지어지면 가동률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전기요금으로 전가된다”며 “결국 국민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전 감사실은 재발 방지를 위해 전기 사용 예정 통지 단계부터 토지·건축물 소유자 동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신설하고, 실수요 목적이 아닌 고객의 예정 통지를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장기간 공급 용량을 선점하는 데이터센터의 경우 전기 사용 신청을 반려하고, 사용 계약을 해지하도록 했다.
중장기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향후 2029년까지 지어지는 732개의 신규 데이터센터 가운데 82.1%인 601개가 수도권이 몰려 있다. 하지만 601개 센터 중 전력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곳은 40개(6.7%)에 불과하다. 송배전망 등 수도권까지 이어지는 전력계통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숫자만 늘어나면 전력 대란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