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여, 인상이 서글서글하시구요, 대우자동차에 다니시잖아요. 대기업 대우자동차는 절대 안 망하니까요,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도파백화점 엘리베이터걸로 재직 중인 주현영은 X세대(통상 1970년대 초~1980년대 초 출생한 세대)가 사랑하는 프로그램, ‘사랑해 스튜디오’에 출연해 마음에 드는 남성으로 대우자동차 영업팀 직원 정상훈을 지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머지 출연자는 주식회사 쥬단학 경리팀 직원(정이랑), 조흥은행 주임(김민교), 대기업 임원 아버지를 둔 미국 유학생(김원훈), 자유롭게 연애하다 결혼할 것이라는 대학교 3학년생(김아영) 등. 이들은 나긋나긋한 서울 사투리로 ‘숭구리당당 숭당당’과 같은 ‘최신 유행어’를 쏟아낸다.

사회 트렌드를 프로그램에 바로 반영하는 SNL 코리아는 최근 90년대를 소재로 한 코너를 선보였다 . 사진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패션과 K팝에 이어 예능과 드라마도 1990년대와 본격적으로 사랑에 빠졌다. 취향과 관심사가 세분화된 요즘, 보기 드물게 찾아온 메가 트렌드다. 위에 소개된 상황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 예능 프로그램 SNL코리아의 다니엘 헤니 편(9월 16일 공개)의 한 장면이다. 원조 짝짓기 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1994~2001)를 패러디해 90년대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준다. 같은 회차에 나온 백쥐연(이수지)과 손서키(정성호) 진행 시사고발 프로그램, ‘선데이90: X세대 이대로는 안 된다’도 화제가 됐다.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를 골반 아래로 내려 입고 길바닥을 청소하고 다니는 현장,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노예팅을 하는 현장을 급습해 자기중심적인 X세대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 웃음 포인트다. 그 시절을 잘 살렸다는 평가와 함께 수많은 쇼츠와 밈(짤)을 양산하고 있다.
📂WHO: 2000년대생의 90년대 앓이
」90년대에 대한 향수는 패션에서 먼저 감지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번지기 전부터 ‘지금 보니 힙했던 X세대의 90년대 패션’과 같은 압구정동 멋쟁이를 소개하는 글과 동영상이 주목받았다. 과거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신세대 패션’ 리포트 등을 짧게 편집한 콘텐트도 인기를 모았다. 90년대 20대였던 현재의 40대들은 추억에 잠겨 반응했고, 2000년대생들은 부모 세대의 멋진 모습에 “지금 당장 입어도 힙(hip)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큰 주머니가 달린 카고 팬츠와 품이 넉넉한 조끼를 입고 반다나와 곱창밴드를 한 20대 여성들. 요즘 유행 아이템이 다 들어 있지만 이 사진은 1999년 9월 중앙일보가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앞에서 찍은 것이다. 중앙포토
X세대 패션에 대한 관심은 옛 브랜드의 ‘화려한 부활’로 이어졌다. 지난해 블랙핑크 제니가 사복으로 입어 화제가 된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는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19년 리론칭해 첫해는 고전했지만 이후 여성복으로 방향을 틀면서 지난해 연 매출 350억원을 기록하고 올해는 1000억원을 넘보고 있다. 이 브랜드의 판권을 확보해 운영하고 있는 레이어에 따르면 올해 오프라인 매장 50곳을 냈다. 마리떼와 함께 리(Lee), 스톰(Storm) 등 2000년대 초 자취를 감췄던 브랜드가 90년대 유행 속에서 핫한 브랜드로 신분이 바뀌었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지난해 말 2022년 10대 뉴스 중 하나로 ‘스타일의 시간여행, Y2K 패션’을 꼽으면서 “Y2K 패션은 기성세대에게는 그 시절 향수를 추억하게 하는 스타일이고, 젊은 세대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추억과 시대에 대한 향수로 느껴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2022년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대세였던 편안한 옷(컴포트웨어)의 자리를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유행한 세기말 패션이 차지한 해였다. Y2K 대표 브랜드인 미우미우는 크롭 셔츠(배 위로 올라오는 상의)와 로라이즈 플리츠 스커트(허리선이 낮은 주름치마)를 대유행시키면서 구찌를 제치고 ‘올해의 브랜드’ 자리에 올랐다. 여기에 프라다의 리나일론백, 펜디의 바게트백 등 추억의 백들이 다시 유행해 세기말 패션 트렌드를 실감케했다.

90년대 유행 브랜드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티셔츠를 입은 블랙핑크 제니. 사진 제니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