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 있었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소인국에 간) 걸리버처럼 수천 개의 작은 줄에 묶여 눕혀진 채 규제 하나에 한 번씩 우리는 자유를 잃고 있다.”

‘악동’ 일론 머스크가 지난주 옛 트위터인 X에 올린 글이다. 머스크는 인공지능(AI) 규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부 규제에 반대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나온 머스크의 행보는 ‘그래도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을 “웃기는 경찰”이라고 조롱하는가 하면,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우주국을 향해서는 “근본적으로 망한 조직”이라고 직격했다. 주가 조작 혐의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티격태격할 때는 “SEC의 중간 글자 E가 일론이냐”고 썼다. 자신을 조사하는 것 말고는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는 비아냥거림이다.

정부 규제 대놓고 비판하고 조롱
중국이었다면 뼈도 못 추렸을 것
한국서도 혁신가 나오기 힘들어

요즘 머스크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로 언론은 몇 가지를 거론했다. 테슬라는 미국 고용평등기회위원회로부터 소송을 당했고, 스페이스X의 초대형 로켓 스타십 발사는 연방항공청의 보완 요구로 향후 발사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미국 어류·야생동물국은 스페이스X 발사대의 환경 문제를 조사 중이고, 경쟁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 조사도 받고 있다. 규제 당국의 조사가 문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틈만 나면 ‘관종’처럼 트윗을 올리고 심지어 생방송에서 대마초까지 피우는 그의 무책임한 돌출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가 많다.

머스크의 독선적인 경영 스타일도 자주 도마에 오른다. 과도하게 능력주의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무시되곤 한다. 지난해 트위터를 인수하고 일주일 만에 직원 절반을 예고 없이 해고해 논란이 일었다. 복잡한 사생활에 무책임한 언행이 너무 잦아 글로벌 SNS 세계에서 욕도 많이 듣는다. 오로지 중국에 대해선 아부성 멘트를 이어간다. 테슬라의 중국 사업을 위해서다.

머스크 스스로도 자신의 악동 기질을 잘 아는 것 같다. 자신 때문에 감정이 상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했고 지금은 사람들을 로켓에 태워 화성으로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친구일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언론인 월터 아이작슨은 최근 출간된 머스크 전기에서 “때때로 위대한 혁신가들은 배변 훈련을 거부하고 리스크를 자청하는 어른아이일 수 있다”고 썼다.

옳든 그르든 사회적 발언을 이어가는 머스크를 보면서 미국 사회에서 기업인이 누리는 자유를 절감한다. ‘글로벌 밉상’일지는 몰라도 미국에선 성공한 사업가이자 혁신의 아이콘이다. 그가 시진핑 독재 치하의 중국 기업가였다면 아마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중국 금융 당국과 맞섰다가 한동안 조용히 사라졌던 알리바바의 마윈처럼 말이다. 그는 요즘 일본 도쿄대 객원교수로 있다.

한국에서 정부 규제를 대놓고 비판하는 기업인은 드물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지금 생각해도 명언인데 말이다. 얼토당토않은 규제에 그나마 할 말을 했던 기업인으로 이재웅 전 타다 대표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머스크가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정부 규제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니까. 무엇보다 정권의 심기를 살피는 게 중요하니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의 기류에 온통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뛰고, 한경협으로 탈바꿈한 전경련에 힘을 보탤 것이다.

그런데 머스크 같은 혁신가가 한국에서 나올 수는 있는 건가. 타다 같은 혁신 서비스는 좌절됐고, 리걸테크 로톡 등 혁신 플랫폼은 이익집단의 반대와 정부의 방치로 고사 직전까지 몰렸거나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원은 수틀리면 “카카오 들어오라고 하세요”같이 여의도 초대장을 보낸다. 이런 분위기에선 머스크 같은 악동 CEO는 한국에서 나오기조차 힘들다. 괜한 걱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