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 작가가 2년 만에 돌아왔다. 그의 스타일을 제대로 담은 생존 투쟁 복수극 ‘7인의 탈출’(SBS)을 들고서다. 전작 ‘펜트하우스’에서 호흡을 맞춰 대박을 낸 주동민 감독과 다시 손을 잡았다. ‘막장 드라마’ 장르의 대가답게 시청률은 7%대로 순항 중이다. 하지만, ‘화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넷플릭스·디즈니 등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장르물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순옥은 다시 시청률의 왕좌에 오를까.
휘몰아치는 막장 전개에 최고 시청률 8.7%
지난 15일 첫 방송을 시작한 ‘7인의 탈출’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수많은 거짓말과 욕망이 뒤엉켜 사라진 한 소녀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악인의 생존 투쟁과 그들을 향한 피의 응징을 그린 피카레스크 복수극.’ 이번에도 어김없이 악인, 욕망, 거짓말, 복수의 ‘마라맛’ 조합이다. 휘몰아치는 전개 속 4회 시청률은 전국 기준 7.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8.7%까지 치솟았다. 1회 6.1%로 시작한 시청률은 2회 6.1%, 3회 6.7%로 소폭 상승 중이다. 덕분에 SBS 드라마는 단숨에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섰다. 초반 반응으로 이미 내년 3월 시즌2 방영이 확정됐다.
아직 극 초반인데, ‘마라맛’ 전개는 벌써 걱정스러울 정도로 맵다. 전작 ‘펜트하우스’도 출생의 비밀, 치정, 살인 등 자극적인 요소가 많았지만, ‘7인의 탈출’은 첫 화부터 미성년자의 원조교제와 교내 출산, 극심한 가정 폭력, 인분 고문 등 “불쾌하다”는 평이 나온다. 왜 이럴까 싶을 정도의 설정이 곳곳에 포진해있다. 엄마는 딸의 살인을 사주하고, 아버지는 입양해 지극정성으로 키운 딸과 연인 관계였다는 누명을 쓴다. 아무리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끊임없는 악행의 퍼레이드가 펼쳐져 시청자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4회 만에 등장인물 3명이 사망한 것으로 비치는데, 김순옥 작가 스타일상 누가 먼저 살아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대중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순옥적 허용’ 하에 김순옥의 막장 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는 쪽과 자극만 좇는 드라마에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쪽이다. 아직은 후자가 더 많은 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7인의 탈출’ 내용과 관련해 8건의 항의 민원이 접수됐다. 전작인 ‘펜트하우스’ 역시 아파트 추락사, 불륜, 폭력 등의 장면으로 방심위에 민원이 접수돼 법정 제재 처분을 받았다.
황당한 설정에도 ‘자유로움’ 만끽 위해 시청
김순옥은 임성한 작가와 함께 막장 드라마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2008년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을 시작으로 2009년 ‘천사의 유혹’ 2014년 ‘왔다!장보리’, 2015~16년 ‘내 딸, 금사월’, 2018~19년 ‘황후의 품격’ 그리고 가장 최근 2020~2021년 ‘펜트하우스’로 시청률을 30% 가까이 달성했다. 임성한 작가는 2002년 ‘인어 아가씨’로 막장 드라마라는 용어를 국내에 처음 유행시켰다.
막장 드라마는 보통 개연성이 떨어진다.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으로 구성된다. 김순옥 작가의 출세작 ‘아내의 유혹’에서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배우 장서희)이 얼굴에 점을 찍고 나타나자 남편이 다른 사람인 줄 알고 또다시 결혼하는 설정은 지금까지도 클래식으로 회자한다. ‘펜트하우스’에서도 배우 이지아가 성형으로 쌍둥이처럼 얼굴이 닮은 심수련과 나애교를 1인 2역으로 연기했다.
황당한 설정에도 막장 드라마가 흥행하는 이유는 현실 세계의 사회적, 도덕적 규범으로부터 탈피하는 자유로움과 함께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김봉현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2019년 발표한 논문에서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일상에서의 작은 일탈이나 호기심의 해소를 통해 자기만족의 자유로움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며 “물론 막장 드라마를 소비하면서 개개인들에게 재미, 즐거움, 감정이입 등의 개념도 분명 같이 존재하고 있으나 자유로움이라는 개념이 가장 중심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막장의 존재 이유 또다시 증명할까
그러나 김순옥 효과가 이번에도 발동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시청률 30%에 육박했던 ‘펜트하우스’ 시리즈보다 ‘7인의 탈출’의 시청률은 추이는 그리 높지 않다. 아직 초반이지만 9.1%로 출발했던 ‘펜트하우스 1’과 비교해도 낮다. 주제의식도 약해 흡입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펜트하우스’는 막 나가는 전개 속에서도 집값과 사교육 1번지로 내세워진 고급 아파트 주민의 속물근성과 허영을 비꼬는 풍자성이 있었다. ‘7인의 탈출’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드러나지 않는다. 가짜 뉴스의 폐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돈을 위해 살인을 불사하는 악인을 비판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7인의 탈출’의 성과는 지상파의 생존 전략을 결정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 종합편성채널, 케이블TV 드라마 활성화로 위기에 몰렸던 지상파는 펜데믹 이후로 급성장한 OTT로 또 한번의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성공을 거둔 ‘펜트하우스’는 막장 드라마 존재의 이유를 증명했다. 동시에 지상파표 드라마의 방향성을 부여한 것이다. ‘7인의 탈출’은 또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인지 곧 판가름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