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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아동이라는 사회적 약자

중앙일보

입력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비극이었다. 서이초 교사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주목받지도 못했을 죽음이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의정부 호원초 이영승 교사. 애초 단순 추락사로 보고됐으나, 최근 경기도교육청 조사 결과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부임 첫해인 2016년 수업 시간에 페트병을 자르다가 아이가 손등을 다친 게 악성 민원의 출발이었다. 교사의 입대 후에도 민원은 이어졌다. 학부모는 학교안전공제회로부터 200만원 치료비를 보상받았지만, 이 교사에게 한 달에 50만원씩 400만원을 받아냈다. 인터넷에는 학부모와 학생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 교사의 부친은 학부모에 대한 형사 고소를 검토하며 “영승이의 첫 제자에게 사적 제재란 있을 수 없다. 법에 맡겨 달라”고 했지만, 분노한 대중의 항의가 학부모 직장까지 빗발쳤다. 이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했던 또 다른 학부모는 장례식장을 찾아와 정말 사망한 게 맞느냐며 확인했다고 하니, 끔찍한 일이다.

교육 현실 무시한 ‘아동학대’ 낙인
보호받으면서 훈육받아야 할 아동
성역화한 절대약자 프레임은 문제

 드디어 교권 보호 4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초·중등교육법 등에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교사들의 목숨과 맞바꾼 결과다. 이달 초 4년간의 악성 민원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대전의 40대 여교사는 친구 얼굴을 때린 학생을 교장실에 보냈다가 아동학대로 고소당했는데, 아동권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정서적 학대라고 판단·자문한 것이 근거가 됐다. 교육적 특수성을 무시한 기계적 자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교사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아동학대처벌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하는 이유다.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지금의 교권 부재 상황에 보수·진보 모두의 직무유기를 질타하면서 상대적으로 인권 감수성이 높다는 진보가 어쩌다 교권을 외면하게 됐는지 흥미로운 칼럼을 썼다. 상당수 진보 교육감들이 교사 출신이고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며 학생 인권에는 관심이 많지만, 교육노동자인 교사의 권리에는 왜 별 관심이 없었는지 분석했다. 이씨는 “약자 옹호는 진보의 정체성”이고 “아동은 대표적 약자”인데, 정치적 올바름을 중시하는 “한국 진보의 패러다임에서 약자란 (각기 다른 구체적 개인들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집단(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아동이 특정한 경우에 폭력 행사의 주체이거나 상황의 지배자일 수 있음에 애써 눈감은 것”이라고 썼다. 교육 현장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약자인 아동도 잘못할 수 있는데 강력한 ‘아동=약자’ 프레임이 현실을 왜곡했다는 얘기다. 실제 교육적 상황의 복잡한 맥락은 제거한 채 ‘아동학대범’ 낙인을 남발한 배경이다.

 그런데 이씨에 따르면, 이런 ‘집단적 약자성’은 최근 세계적으로 흔들리는 추세다. 지난 6월 미국에서, 1960년대 소수인종의 대학입학에 혜택을 주기 위해 제정했던 ‘소수자 우대법(affirmative action)’이 위헌 결정을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저소득층 백인 학생보다 부유한 흑인 학생을 소수자로 우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흑인은 하나의 집단으로 여전히 약자인가 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백인이라고 모두 부자가 아니듯 흑인이라고 모두 가난하지도 않다. 개인차가 있을 뿐이다). 결과는 이른바 ‘PC(정치적 올바름)주의’의 균열이다. 도그마가 돼버린 ‘PC 과잉’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보수·진보가 한목소리로 ‘교권 회복’ ‘교권 수호’를 외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성역화된 ‘아동=절대 약자’ 프레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PC 흐름이 거셌던 우리 사회에 의미심장한 변화다. 어쨌든 아동은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자 동시에 훈육의 대상이고, 교사가 절대적 권력자로 군림하던 시대도 끝났다. 교권을 보장받는 교사로부터 제대로 교육받는 게 아동 인권에도 좋은 일이고 말이다.

글=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림=윤지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