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적에 또 지고도 손 번쩍 축하했다…金보다 빛난 유도 이하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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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패배 후 상대의 손을 들어 축하하는 이하림. 뉴스1

결승전 패배 후 상대의 손을 들어 축하하는 이하림. 뉴스1

바라던 '금빛 엔딩'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스포츠맨십은 금메달보다 값졌다.

한국 유도 경량급 간판 이하림(26·세계랭킹 3위)은 2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린푸 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60㎏급 결승에서 타이완의 양융웨이(26·세계 7위)에 절반패를 당해 은메달을 땄다. 경기 시작 후 1분 35초에 지도(반칙) 1개씩을 주고받은 이하림은 경기 종료 30초를 남기고 업어치기에 당해 절반을 내줬다. 양융웨이는 2020 도쿄올림픽 은메달리스트다. 이날까지 이하림과 4번 맞붙어 모두 이긴 '천적'이다.

 그래도 이하림의 은메달은 금메달 못지않게 값지다. 결승에서 패한 이하림은 상처 투성이 얼굴에도 양융웨이의 손을 번쩍 들어 승리를 축하했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친 선수의 품격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5년 전 메달 색도 바꿨다. 그는 21세의 나이로 출전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동메달을 땄다. 이하림은 "한국 유도에 첫 금을 안기고 싶었는데 아쉽다"면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방귀만 대표팀 코치는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제자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천적'에 아쉽게 패한 이하림(오른쪽). 연합뉴스

'천적'에 아쉽게 패한 이하림(오른쪽). 연합뉴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당시 이하림은 '2% 부족한 선수'로 불렸다. 경쟁자들처럼 타고난 힘도,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태극마크는 달아도 국제무대 결승에 오르는 건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슬럼프까지 찾아왔다. 그는 경쟁에 밀려 국가대표 2진이 됐고, 2020 도쿄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그가 다시 도약한 건 도쿄올림픽 직후 황희태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다. 현역 시절 '탱크'로 불렸던 황 감독은 강한 체력 훈련을 선호했다. 새벽과 아침, 오후, 야간까지 하루 네 차례에 걸쳐 지옥훈련을 했다. 이하림은 이 지옥훈련을 '업그레이드 기회'로 삼았다. 모든 훈련이 끝난 뒤엔 홀로 체육관에 남아 고무줄 당기기 200회를 추가로 했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근력이 강해지면서 힘이 붙은 이하림은 대표팀 내 '체력왕'을 차지했다. 산(3㎞ 20분)을 달려도, 인터벌(2000m 5분20초 이내) 훈련을 해도 항상 그가 1등이었다. 이때부터 같은 체급 경쟁자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필살기는 없다. 하지만 강철 체력을 앞세워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후반엔 지쳐서 방어가 허술해진 상대의 도복 깃을 잡고 오른손 업어치기, 왼손 업어치기, 안다리걸기 등 연속 기술을 쏟아냈다.

포기하지 않고 동메달을 따낸 안바울. 연합뉴스

포기하지 않고 동메달을 따낸 안바울. 연합뉴스

그는 지난해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 생애 첫 국제 대회 결승 진출에 이어 우승까지 차지했다. 같은 해 이스라엘 마스터스까지 석권하며 세계 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지난 7월엔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방귀만 코치는 "이하림은 완벽한 기술은 없지만, 다채로운 공격을 쉬지 않고 시도해 상대를 제압하는 일명 '더티(dirty) 유도'를 완성했다. 복싱으로 따지면 '아웃복싱'과 같은 변칙 스타일인데,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한 덕분"이라며 은메달을 목에 건 제자를 대견해 했다.

이하림의 도전은 계속된다. 그는 "내가 남들보다 유일하게 앞선 건 '성실함'이었다. 부족한 힘과 기술은 땀(체력)으로 메우면 된다. 내년 파리올림픽에선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한국 유도는 이날 2개의 동메달을 추가했다. 안바울(29)은 남자 66㎏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오비드 제보프(타지키스탄)를 업어치기 절반으로 물리쳤다. 디펜딩 챔피언 안바울은 준결승에서 패해 대회 2연패가 좌절됐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여자 52㎏급 정예린(27)도 동메달 결정전에서 갈리야 틴바예바(카자흐스탄)를 허벅다리걸기 절반으로 누르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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