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열린 제78회 유엔총회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북·러 정상이 합의한 데 따라 다음 달 평양에서 협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영 통신사인 타스와 리아 노보스티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이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합의한 대로 우리는 평양에서 협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다음 달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두 정상이 정상회담 이후 우리의 협력 분야에 대해 분명하게 밝혔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방북 목적이 지난 13일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 성격이란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유엔총회에 불참하면서, 라브로프 장관은 러시아 대표단을 이끌고 있다. 러시아가 주요 서방국 대표들이 모인 유엔총회장에서 보란 듯이 방북 일정을 밝히며 북·러 간 밀착을 강조한 것이라는 평이 나온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이번 북·러 간 회동은 라브로프 외교장관-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외교 라인이 주도하게 된다. 이번 방북을 통해 양측은 일단 러시아가 시급한 북한의 재고 포탄 확보와 포탄의 추가 생산 여부 등을 논의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반대급부를 우선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는 전장에 곧바로 투입이 가능한 북한의 122㎜ 방사포(다연장로켓포)를 요청한 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밀가루 등 식량 지원과 에너지 공급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북한경제 전문가인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외에도 러시아는 전쟁으로 부족해진 노동력 공급을 북한에 요청하고, 북한은 러시아를 통해 재래식 무기의 현대화를 시도하는 등 보다 포괄적인 차원에서 경제·정치적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 제재의 선을 고강도로 넘지 않는 북한 유학생 교류와 같은 협력도 가능하다”고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회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의 ‘답방 일정표’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쾌히 수락했다”고 발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도 정상회담 관련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이 초대를 감사히 수락했다”며 “추가 협의는 외교 채널로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4년 전인 2019년 4월 북·러 정상회담 때는 북측이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초청했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러시아 측에선 답방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번엔 러시아가 보다 적극적인 모양새다.
올 하반기 들어 북·러 양국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방북(7월)과 북·러 정상회담 성사(9월)에 이어 다음 달 라브로프 장관 방북 등 거의 매달 고위급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다음 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도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만남이 북·중·러 3국 정상회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북·러의 ‘위험한 거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 정면 위반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는 대북제재 결의안을 주도한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이란 점에서 “북한과 손을 잡는 건 자기 모순적”이란 지적이 국제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라브로프 장관은 지난 13일 국영 언론 인터뷰에서 “2017년 결의안 등 과거 대북제재는 전혀 다른 지정학적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등 대북제재를 희석시키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서방은 정치적 노선에 따라 안보리가 추구하는 인도주의적 지원 약속을 어겼고, 중국과 북한은 물론 러시아도 속였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