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게임이론으로 본 세상
경제학 이론에 ‘선형도시모형’(Linear City Model)이라고 하는 유명한 모형이 있다. 이 모형에서는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선 도시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4㎞의 도로가 있고, 그 도로 주변으로 사람이 거주한다는 생각이다. 그 일직선의 도로에는 자동차는 다닐 수가 없고 모든 시민은 걸어서 오갈 수밖에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이 도시의 시민이 식료품과 일상용품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철수네 상점과 영수네 상점 두 곳뿐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두 상점이 판매하는 상품의 종류와 품질이 비슷하다면 시민은 자기의 집에서 가까운 가게로 가게 될 것이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먼 길을 다니려면 너무 수고스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편의를 고려했을 때 철수와 영수는 어느 위치에 가게를 세우는 것이 좋을까? 답은 철수는 서쪽 끝에서 1㎞ 떨어진 지점에, 영수는 동쪽 끝에서 1㎞ 떨어진 곳에 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시민이라도 최대 1㎞만 걸어가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선형도시모형’ 닮은 극한 대립 정치권
우리의 정치 지형에 이 선형도시모형을 적용해 보면 재미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동서로 일직선상에 놓인 도시를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치 성향이며 철수와 영수의 두 가게는 이런 국민들의 정치 성향을 대표할 두 정당으로 볼 수 있다. 서쪽과 동쪽의 끝에 거주하는 시민은 ‘극좌’와 ‘극우’ 성향의 국민으로 간주하고 중간 지점의 시민들은 중도 성향의 국민으로 간주할 수 있다.
선형도시모형의 시민이 자기 집에서 가까운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듯이 대한민국의 국민은 자신의 정치 성향과 가까운 정당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선형 도시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점의 위치가 서쪽에서 4분의 1 지점과 동쪽에서 4분의 1 지점이 이듯 정당도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의 성향을 가지는 것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에 가장 이상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현실의 세계에서 철수와 영수는 각각 서쪽과 동쪽에서 4분의 1 지점에 가게를 위치시키지 않을 것이다. 우선 철수가 더 많은 고객에게 자신의 상품을 팔고자 한다면 가게 위치를 영수의 가게와 가까운 동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좋다. 어차피 현재 철수의 가게보다 서쪽에 위치한 고객은 철수의 가게가 좀 멀어져도 철수의 가게에서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수의 가게는 철수의 가게보다 더 멀리 위치하기 때문이다. 반면 철수의 가게가 영수의 가게와 가까운 동쪽으로 이동하면 기존 영수의 가게에 다니던 고객들을 뺏어 올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고객에게 자신의 상품을 팔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수도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므로 결국 철수와 영수 모두 4㎞인 도시의 딱 중간인 서쪽과 동쪽 끝에서 2㎞ 떨어진 중간 지점에 가게를 나란히 위치시킬 것이라는 말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 [중앙포토]](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309/16/29d8f273-27d8-4f81-ad68-a3c3715a3353.jpg)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 [중앙포토]
정당도 더 많은 표를 얻어야 당선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중도 성향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극좌나 극우 성향의 정책을 모두 포기하고 중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공약을 내걸게 되는데 바로 이런 원리이다. 대통령 선거 시기가 되면 정책만 보고서는 어느 쪽이 좌측이고 어느 쪽이 우측인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런 중도 성향 수렴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소위 진보 정당은 더욱 좌측으로 달려가고 있고, 보수 정당은 더욱 우측으로 달려가면서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정치 상황 역시 선형도시 모형으로 잘 설명될 수 있다. 경제학의 선형도시모형에서 철수와 영수의 가게가 궁극적으로 위치할 지점을 계산해 보면 철수는 서쪽 맨 끝 지점이고, 영수는 동쪽 맨 끝 지점이라는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철수나 영수의 입장에서 보다 많은 고객을 확보한다면 나쁘지 않겠지만, 고객의 숫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윤이다. 철수와 영수의 가게가 도시의 중간 지점에 나란히 위치하게 되면 고객의 확보에는 유리하겠지만, 원가 수준의 낮은 가격에 물건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철수와 영수의 가게가 동일한 위치인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에 이 도시의 시민 입장에서는 어차피 철수의 가게나 영수의 가게 모두 똑같은 거리에 위치하는 셈이다. 만일 철수의 가게가 1㎞ 거리인데 영수의 가게가 3㎞ 거리라면 철수의 가게가 조금 비싸게 상품을 판다고 해도 영수의 가게까지 걸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다시 돌아오는 수고를 절약하기 위해 철수의 가게에서 다소 높은 가격을 주고라도 상품을 구입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철수와 영수의 가게가 동일한 거리에 있다면 이 시민은 당연히 한 푼이라도 싼 가게에 가서 상품을 구입할 것이므로 철수와 영수는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격 경쟁으로 거의 원가 수준에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면 많은 고객을 확보하더라도 두 가게의 이윤은 아주 낮아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고려한 철수와 영수는 결국 각각 경쟁자인 상대방의 가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서쪽 끝과 동쪽 끝에 가게를 위치시킨다는 것이 선형도시모형의 예측이다. 그리고 가격을 원가보다 훨씬 높게 매긴 후에 우리 가격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면 4㎞ 떨어진 다른 가게에 가서 장을 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는 것이다. 시민은 철수네 가게 상품이 비싸더라도 영수네 가게까지 먼 길을 다녀올 수고가 두려워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철수에 가게에서 상품을 구입할 것이다. 영수와 가까운 위치에 사는 시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서로 간의 거리를 가장 멀리하는 전략을 통해서 철수와 영수는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상품을 팔게 되면 이윤을 최대화 시킬 수 있다.
대선은 다수 품어야 해 중도 공약 많아
정치도 마찬가지다. 두 정당이 모두 중도 성향의 비슷한 위치에 있다면 국민은 두 정당의 정치 성향이 같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정치인들의 청렴도를 따지기 시작할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자기 돈처럼 아끼는지, 불미스러운 행동은 하지 않는지, 부정부패의 의심되는 점이 없는지를 꼼꼼히 따질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치인으로 살려면 아주 갑갑할 것이다. 어렵게 정치인이 되어서 선거에 이겨도 모든 국민들이 눈을 부라리고 청렴도를 체크할 것이니 피곤하고 힘든 생활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정당도 자신의 위치를 중도로 정하지 않고 극단적인 극우와 극좌로 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좌측 성향의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극좌에 위치한 정당의 정치인들이 다소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고 이런 정치인을 비난하고 배척하면 유일하게 남는 다른 정당이 저 멀리 맨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너무 멀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중도 우파도 아닌 극우 성향의 정치인에게 권력을 넘기느니 너무도 부족하고 오염된 정치인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왼쪽에 위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 용서하는 것이다. 이는 우측 성향의 국민이 극우에 위치한 정치인들의 행동이 못 마땅하더라도 극좌의 정치인이 싫어서 지지를 철회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이렇게 웬만한 잘못과 비리를 유권자들이 눈감아 준다면 정치인으로서는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두 정당은 암묵적 합의 하에 극좌와 극우로 달려 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과거에는 정치인이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는 시늉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인은 거의 노골적으로 자신들이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정치인임을 당당하게 나타내는 느낌이다.
선형도시모형의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생계를 우선시 하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이윤이 최대화되도록 극좌와 극우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필요한 이유는 평상시의 삶에 바쁜 국민들이 자신을 대신해서 정치를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권리를 위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국민을 대신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본분을 저버리고 자신의 생계형 이윤 최대화만 정치인들이 추구한다면 정치인이라는 직업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이 맞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중요한 정책 결정이 있을 때 전 시민이 모여서 투표를 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했다. 하지만 수만 명의 시민을 모으는 것은 가능해도 수천만 명의 국민이 자주 모여서 투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간접 민주주의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제 모든 국민이 손에 든 핸드폰으로 10초면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방법이 생겼으니 직접 민주주의는 다시 가능한 세상이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정치인이 과연 필요한 존재인지 국민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임이론의 권위자로 『경제학 비타민』 『인생을 바꾸는 게임의 법칙』 등의 저서가 있다